동의학 이야기/조선의 동의학

조선시대 질병과 치료, 그리고 의사③

지운이 2020. 1. 9. 17:30

조선시대 질병과 치료, 그리고 의사③

   김 성 수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2. 그들은 어떻게 치료했는가?


 

1) 아프기 전에 조심하자, 양생(養生)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조선시대에는 질병에 걸린다면 치료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며, 당시에는 이를 양생이라고 하였는데 오늘날의 예방의학과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전통의학에서 말하는 병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치료한다는 개념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였다.1 그런데 조선시대 양생의 방법으로 가장 우선되었던 것은 욕심을 억제하는 것, 욕심의 근원이 되는 마음을 수련하는 일이었다.


이른 시기에 전래되었던 주권(朱權)의 『활인심방(活人心方)』이 마음의 수양과 관련하여 널리 이용되었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계기는 바로 퇴계 이황(李滉)이 『활인심방』을 통해 건강을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활인심방』에서 언급한 것이 주로 도인법(導引法)이지만, 그 근본은 마음의 수양이었다. 홍귀달(洪貴達, 1438~1504)은 1472년(성종3) 호남에 있는 고산(高山)의 옥중에서 병을 앓다가 당시 현의 수령이었던 남정(南鼎)에게서 태화탕(太和湯)이라는 처방을 받았다고 소개하였는데 바로 『활인심방』의 중화탕(中和湯)이었다.2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지혜를 부리니 어찌 몸을 상함이 없겠는가? 병들어 종전의 일들을 후회하고 나서야 무아의 경지를 배우네. 30가지의 약재를 내가 가지고 있으니, 이제부터 헤아려 태화탕을 복용하네.【사무사(思無邪) 행호사(行好事) 막기심(莫欺心) 행방편(行方便) 수본분(守本分) 막질투(莫嫉妬) 제교사(除狡詐) 무성실(務誠實) 순천도(順天道) 지명한(知命限) 청심(淸心) 과욕(寡慾) 인내(忍耐) 유순(柔順) 겸화(謙和) 지족(知足) 염근(廉謹) 존인(存仁) 절검(節儉) 처중(處中) 계살(戒殺) 계노(戒怒) 계폭(戒暴) 계탐(戒貪) 신독(愼獨) 지기(知機) 보애(保愛) 념퇴(恬退) 수정(守靜) 음즐(陰騭) 이 30가지의 약재를 씹어 가루로 만들어 심화(心火) 1근과 신수(腎水) 2사발에 약한 불로 끓여 절반이 되게 하여 날씨에 관계없이 따뜻하게 하여 복용한다.】3


심화(心火)와 신수(腎水)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중화탕에서는 자신의 본분을 지키면서 마음의 안정을 꾀하며, 일체의 욕구를 절제하도록 하는 마음의 수련을 말하고 있었다. 즉 중화탕에 들어가는 30가지의 약재는 바로 마음의 수련에 필요한 경구들이었다.


마음의 수련을 통한 양생을 강조한 것은 유성룡(柳成龍)의 경우도 있다.4 그는 양생계(養生戒)에서 음식을 조절하여 오장(五臟)을 화평하게 하고 또 색욕(色慾)을 탐하지 않음으로써 진기(眞氣)를 기르는 방법을 거론하였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양심(養心)으로써 양생을 하는 것이며 양심의 방법은 과욕(寡慾)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하였다.5 더 나아가 과욕을 지극하게 함으로써 무욕(無慾)의 단계에 이르게 되면 굳이 구구한 양생의 방법을 찾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때 제시한 양생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수양일 뿐만 아니라, 천지조화의 이치를 파악할 수 있으며 나아가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방도를 찾을 수 있다는 성리학적 수양으로 확대되었다.6


양생의 방법은 단순히 정신의 수양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서도 고찰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16세기 전반 정유인(鄭維仁)의 『이생록(頤生錄)』이었다. 어려서부터 질병으로 고생하였던 정유인이 여러 가지 의서들을 읽으면서 양생의 방법을 정리한 것이었는데, 그 핵심은 양심신(養心神)-양정원(養精元)-양비위(養脾胃)였다.


정유인은 『이생록』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과거의 몸을 치료하는 방법들을 두루 열람하여 이에 이생양성(頤生養性)의 방법을 이해하였다. 생각을 적게 하여 심신(心神)을 기르고, 색욕(色慾)을 경계하여 정원(精元)을 기르며, 음식을 적절히 하여 비위(脾胃)를 기르는 것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섭생(攝生)의 요강(要綱)이다.7


이 때 정유인이 언급한 심신, 정원, 비위는 100여년 뒤에 편찬되는 『동의보감』에서 중시하였던 인체 생리의 핵심인 정(精), 기(氣), 신(神)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동의보감』은 의서인 관계로 주로 의학적인 관점에서 말하였지만, 정유인은 유학자였기 때문에 성리학적 시선에서 우선 순위가 뒤바뀐 점이었다.


이제까지의 양생법이 주로 욕심을 적게 하는 심리적인 측면이었다면, 외부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것은 대체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음식물이나 나쁜 기운을 조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앞서 언급되었던 유희춘이 남긴 기록에 자세하게 남아있다.


매년 원인(元日)에는 항상 마음을 기쁘게 해야 한다. 아침에는 화를 내지 말고 낮에는 잠을 자서 원기(元氣)를 손상해서는 안 된다. 앉거나 누울 때에는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을 피하여 일체 풍(風)․한(寒)․서(暑)․습(濕)을 맞아서는 안 된다.


앉고 누울 때에는 반드시 햇볕이 드는 곳으로 하고 음습(陰濕)한 곳에 거처하지 않는다. 앉는 곳은 반드시 넓은 곳으로 하고, 옷과 이불을 덮어서는 안 된다. 몸에서 땀이 나올 때에는 급히 닦도록 하고 부채질하여 바람을 맞아서는 안 된다.【목욕(沐浴)후에도 역시 그렇다】 의서(醫書)에서 말하기를 음식을 먹거나 노역(勞役)으로 땀이 날 때, 여러 가지 병이 따라서 생긴다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땀이 나면 풍사(風邪)가 몸에 들어오니 땀이 없으면 양기(陽氣)가 고밀(固密)하여 (피부를) 닫아 사기(邪氣)를 막고 (몸을) 상(傷)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음식을 먹는 것이 끝나면 온수(溫水)로 양치질을 하고 배를 문지르고 백보(百步)를 걷는다. 겨울에는 일찍부터 움직이지 않고, 여름에는 따뜻한 물을 마신다. 새벽에는 서리를 맞지 않으며, 추위를 무릅쓰고 일을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술을 마셔서 사기(邪氣)를 막는다. 해와 달을 바라보지 않으며 어유등(魚油燈)을 가까이 하지 않고, 등(燈)을 불어서 연기(煙氣)에 감촉(感觸)되지 않도록 한다. 독서하거나 글을 쓸 때에는 너무 과로하지 않으며, 40세 이후에는 항상 눈을 감아 잡물(雜物)을 보지 않는다.…집안에 열병(熱病)이 있으면, 음식을 자주 먹어 배부르게 하여 사기(邪氣)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다.8


그는 앞서 내상의 요인으로 식중독과 같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부패된 음식에 대해서 특히 신중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한편으로 외부적 요인으로써 특히 풍․한을 피할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기거(起居)를 가려서 하고 땀이 나면 바람을 피하고 겨울에 추위로 인한 질병을 피하기 위해서 술을 마시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 외에 양생의 방법으로 널리 사용된 것이 일종의 체조 내지 스트레칭인 도인법(導引法)인데, 『활인심방』에서 말한 것 외에 신수혈을 문지르는 방법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의서에서는 삼초(三焦)에 수기(水氣)가 있어서 그 기운이 치밀어 올라 음식을 먹지 못할 경우나 여자의 월경이 고르지 못할 경우 신수에 침구를 하라고 권하였던 방법으로,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자신이 저술한 『마과회통(麻科會通)』에서 아래와 같이 신수혈을 소개했다.


배꼽에 뜸을 뜨는 방법(煉臍法)은 세상에 널리 행하여지는 것이지만, 나는 이것 이외에 따로 한 가지 방법을 알고 있는데 연제법에 비교하여 더욱 신묘한 효과가 있다.


꼬리뼈 위, 등뼈 마지막에 움푹 들어간 곳이 있는데 이곳이 신수혈(腎兪穴)이다. 안으로는 신경(腎經)과 응하는데 곧 명문이 있는 곳이다. 찬 기운을 만나 복통을 앓으면서 배가 차고 설사를 하거나, 혹 이질을 앓아 뒤가 무겁고 아랫배가 아프거나, 아니면 생식기가 차갑고 고환이 습한 증상에 매번 좋은 쑥을 사용하여 십여 장 뜸을 뜬다. 그렇게 하면 연제법처럼 잠깐 사이에 여러 통증이 모두 안정된다.(『麻科會通』 권6, 醫零, 雜說 2, 「腎兪穴」; 『與猶堂全書』 7집(醫學集))


신장이 허하여 병증이 나타날 때는 신수혈에 뜸을 함으로써 신장에 기혈을 보충하여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신장 외의 다른 수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서, 정약용은 자신의 경험 이외에 이폐양(李蔽陽)이라는 인물이 손을 문질러 따뜻하게 한 다음 비수혈(臂腧血)을 10여 차례 두드림으로써 건강을 유지했다는 사실도 언급하면서 수혈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됨을 다시 강조했다.

수(腧)는 경혈의 자리로, 인체의 경맥과 장부의 기가 중점적으로 모이는 곳이어서 병의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기도 하며, 이에 따라 침과 뜸을 실시하는 곳이기도 하다. 정약용이 언급한 신수혈은 배수혈(背兪穴)의 하나로, 척추를 가운데 두고 허리아래쪽 양 옆에 있는 자리였다.

 


주)

1. 『黃帝內經素問』 「四氣調神大論」, “聖人 不治已病 治未病”

2. 『虛白亭集』 續集 卷3, 詩, 在高山作 幷小序

3. 『虛白亭集』 續集 卷3, 詩, 在高山作 幷小序 “勞心役智豈無傷 病悔從前學坐忘 三十藥材吾自有 從今擬服太和湯【思無邪 行好事 莫欺心 行方便 守本分 三字缺 除狡詐 務誠實 順天道 知命限 淸心 寡慾 忍耐 柔順 謙和 知足 廉謹 存仁 節儉 處中 戒殺 戒怒 戒暴 戒貪 愼獨 知機 保愛 恬退 守靜 陰騭 右三十味 咬咀爲末 用心火一斤 腎水二椀 慢火煎至五分 不拘時候溫服】”

4. 유성룡에 대해서는 金昊鍾, 2004, 「西厓 柳成龍의 醫藥 分野에 대한 認識」 『歷史敎育論集』 33 참조.

5. 『西厓集』 別集 卷4, 雜著 養生戒

6. 『西厓集』 卷18, 跋, 書延壽書後, “披閱數過 其於養生 果不無有益者 然孟子曰 養心 莫善於寡欲 惟此一言 約而盡矣 苟能從事於此 寡之又寡 以至於無 則自可精住神住 天地造化之機 在吾手中矣 此區區者 又何足道哉”

7. 『頤生錄』 「頤生錄序」, “編閱古昔醫身之方 爰得頤養之術 則莫若少思□□以養心神 戒色慾以養精元 適飮食以養脾胃耳已 此實攝生之綱” 『이생록』에 대해서는 김성수, 2006, 「鄭惟仁의 『頤生錄』 연구 」 『慶熙史學』 24 참조.

8. 『眉岩集』 卷 4, 養生治生第三, “每歲元日 常宜怡悅 朝勿嗔恚 晝不可睡 損元氣 ○凡坐臥 急避隙風 一切風寒暑濕 皆勿受 坐臥 必於太陽處 勿於太深積陰之地 臥處須空曠 勿以衣衾培擁 ○凡身上汗出 急拭之 不可揮扇受風【沐浴後亦然】 醫書云 飮食勞役汗出時 諸病遂生 又曰 有汗則風邪客之 無汗則陽 氣固密 閉拒諸邪 不能傷也 食畢 必以溫水漱口 摩腹行百步 冬不早動 夏飮熱水 凡晨朝凌霧 觸寒行役 須先飮酒 以禦邪氣 勿向日月便溺 勿近魚油燈 勿吹燈以觸煙氣 讀書寫字 不可太勞 四十後 常閉目 不可雜視…家有熱病 頻食必飽 勿使邪氣得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