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학 이야기/古醫書 해제

진양신방 (晋陽神方)

지운이 2020. 5. 9. 19:34

진양신방 (晋陽神方)

晋陽神方 / 許郢(朝鮮), 許鄢(朝鮮) 共著 [發行地不明] : [發行處不明], [發行年不明] 1冊(113張) : 界線, 12行23字, 無魚尾; 26.0 x 19.0 cm


�진양신방(晉陽神方)�은 허영(許郢), 허언(許鄢) 형제가 자신들의 의약경험을 정리한 의방서이다.


�진양신방�의 저자 허영, 허언 형제의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산청지역에서 활동하던 명의들이다. 두 형제는 지금의 산청군 단성면 자양리에서 허존(許存)의 아들로 태어났다. 형인 허영(許郢, 1751-1812)의 자는 초객(楚客)이고 호는 문포(文圃)로 약 처방에 능하였고, 아우 허언(許鄢, 1754-1809)의 자는 초삼(楚三)이고 호는 호은(湖隱)으로 침술이 뛰어났다. 그들은 일찍이 과업(科業)을 포기하고 함께 의학에 뜻을 두고 공부하였다. 초삼의 아들 제(濟) 역시 의술이 뛰어났다고 한다. 해제본에는 없으나 이종(異種)의 필사본에 있는 서문에는 “여러 방서에서 가려 뽑고 몇 년을 읽고 나니(중략) 노경에 이르러 숙련된 지 오랜 지라. 여러 가지 많은 경험방과 보고 들은 치방이 있는 까닭에 이미 경험한 방제를 모두 모아 1책으로 묶어 엮어내니 ‘진주신방(晋州神方)’이라 이름 붙였다.[是以摭取諸方, 讀之數年, (中略) 至於老境則鍊熟久矣. 頗多經驗之方, 又有見聞之力, … 故集我以往經驗之劑, 草成一冊, 名 之曰晉州神方]”라고 되어 있다.

 

이를 통해 �진양신방�이 기존 의방서의 처방을 자신의 의약경험에 따라 수 정하고, 여기에 다시 새로운 경험 처방들을 추가하여 저술된 저자들의 말년 저작임을 알 수 있다. 또 ‘진 양신방’에 등장하는 ‘진양’은 ‘진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진주의 옛 지명인 진양(晉陽)을 서명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저자가 산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는 것과 관련이 깊은 부분이다.


현재 �진양신방�은 대부분 1책의 필사본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으며 간본은 없다. 이종 사본들은 병증 위주의 목차 배열이 동일한 편이다. 해제본의 경우 ‘진양신방(晉陽神方)’이라고 표제되어 있으며, 속표지 하단에 소장자로 보이는 ‘김용식(金容植)’이라는 이름이 인장으로 찍혀 있다. 서문은 없으며 목차를 실어 책 전체의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책은 90여개의 병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병증에는 치료 처방들이 기록되어 있다. 병증들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중풍(中風), 유중풍(類中風), 상한(傷寒), 중한(中寒), 온역(瘟疫), 중서(中暑), 중습(中濕), 화증(火症), 내상(內傷), 울증(鬱症), 담음(痰飮), 해수(咳嗽), 천급(喘急), 효병(哮病), 학질(瘧疾). 이질(痢疾), 설사 (泄瀉), 번위(翻胃), 해역(咳逆), 조잡(嘈雜), 탄산(呑酸), 곽란(霍亂), 구토(嘔吐), 제기(諸氣), 비만(痞 滿), 수종(水腫), 고창(鼓脹), 적취(積聚), 황달(黃疸), 반진급마진(斑疹及麻疹), 발열(發熱), 보익(補益), 제혈(諸血), 한증(汗症), 현훈(眩暈), 마목(麻木), 전간(癲癎), 허번(虛煩), 탁증(濁症), 유정(遺精), 제림(諸淋), 소변(小便), 대변(大便), 두통(頭痛), 면병(面病), 이병(耳病), 비병(鼻病), 구설(口舌), 치통(齒 痛), 안목(眼目), 인후(咽喉), 나력급결핵(瘰癧及結核), 심통(心痛), 복통(腹痛), 요통(腰痛), 협통(脇痛), 비통(臂痛), 배통(背痛), 통풍(痛風), 각기(脚氣), 산기(疝氣), 위증(痿症), 소갈(消渴), 치병(痓病), 질박손 상(跌撲損傷), 전음(前陰), 옹저(癰疽), 부인(婦人), 월경(月經), 붕루(崩漏), 대하(帶下), 허로(虛勞), 임부 (妊婦), 산후(産後), 소아(小兒), 탈항(脫肛), 치루(痔漏), 피부(皮膚), 흉협(胸脇), 보유(補遺), 제상(諸 傷), 해독(解毒), 통치제병(統治諸病), 혈(血), 성(聲), 충(䖝).


본문은 병증에 대한 설명은 없으며, 치료 처방들만 나열되어 있다. 하나의 처방은 처방명, 주치증상, 처 방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은 기존 의서를 통해 알려진 것들이지만 저자들이 창방한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처방들도 적지 않다.


�진양신방�에는 산청과 진주를 중심으로 지리산 동남부권 일대 지역의학의 특색이 담겨 있다. 우선 책의 저자인 허영 ·허언 형제가 산청의 명의로 알려져 있으며 이 일대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본서에는 이 지역의 지역적 특색이 많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책에 병증 설명 등 저자의 의학적 견해나 환자 에 대한 치험례 등 구체적인 치료 정황이 담겨있지는 않지만, 책에 수록된 다양한 처방들은 적어도 저자 가 활동하던 시기 진주 일대에 약재 수급이 매우 원활하였음을 보여준다.


조선 중후기에 쓰인 경험방서들에는 향약이나 단방을 위주로 한 처방들이 많이 실려 있다. 이것은 민간 에서의 활용성을 염두에 둔 때문이기도 하지만, 약재를 구하기 어려웠던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양신방�에는 관찬의서 못지않게 다양한 처방들이 담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처방 속에서 여러 가지 약재들이 자유롭게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다른 경험방서들에 비해 향약이나 단방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런 특성은 지리산이라는 지형적 여건에 힘입은 바 크다고 생각된다. 허영 ·허언 형제는 진주 일대에서 활약하면서 지리산에서 생산된 다양한 약재들을 임상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진양신방�에서는 호발 질환에 대한 인식도 기존 의서들과 달리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옹저(癰疽), 마진(麻疹) 등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던 질환들이었다. 그러나 �진양신방�에서는 다양한 옹저 질환에 대한 구분 없이 5개의 처방만을 실어 놓았다. 부인의 대하(帶下) 치료에 4개의 처방을 제시한 것과 비교해 보면 옹저의 비중이 크게 축소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소아(小兒)의 질환을 보면, 탈항(脫肛), 치루(痔漏), 피부(皮膚), 흉협(胸脇)의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전통적으로 소아 질환에 주요 관심사였던 발열(發熱) 질환이나 두창(痘瘡)에 대한 논의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변화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호발하는 질환도 달랐으며, 이를 대처하는 의사들의 관심 역시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이처럼 �진양신방�은 진주 일대의 지역의학의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인 동시에, 한국 전통의학 서 적들의 저작 연대와 지역을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되는 서적이다. (오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