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학 이야기/과학적 침구

신경학적 관점으로 본 경락

지운이 2018. 2. 1. 17:48

신경해부학적 관점으로 본 경락

 

*이하의 글은 신경해부학적인 관점에서 경락을 이해해 보려는 시론의 하나이다. 엄밀하지 않은 것들도 있으므로 전체적인 맥락으로 글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코너의 다른 글들도 함께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잘못된 부분은 적극 의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옛날.. 피부 상에 통증을 느끼는 곳에 침을 찌르는 것으로 침구의 역사는 시작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이러한 원리에 의거해 진단도 하고 치료도 한다. 이러한 부위는 환자 자신이 아프다고 가리키는 곳이기도 하지만, 촉진을 통해 함하 융기 경결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단 여기서 경락/경혈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보면 그 부위란 피부 속, 피부 아래에 실존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점을 전제해 두고 시작하자.

 

통상 침 시술을 하게 되면 인체에 침향이 형성되는데, 상당히 넓은 범위에 걸쳐 나타난다. 그런데 동일한 자리에 통증을 호소하여 같은 자리에 침을 자침하면서 그 침향이 유사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알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또 이러한 경험이 누적되면서 무언가 인과관계를 인지하기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나아가 반응하는 점들 간에 연관성을 보게 되고 이것을 연결하는 선을 상정해 보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경락이라는 선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출현하였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과정은 감각에 기초한 경험적 과정, 곧 경험적 학문이라 할 수 있는 바, 이는 사실 자연현상을 연구하는 근대적 과학방법과 그리 다르지 않다.

 

한편 이러한 경험적 인식이 당시의 삶을 지배하던 생활관념, 삶의 철학과 결합되는 프로세스로 이어지는 것 역시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특정한 곳에 침을 자침하자 또 다른 부위로 반응이 이어지는 자극-반응의 이 신묘한 과정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여기에 ‘눈으로 볼 수 없는 무언가의 힘’이 작용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무언가의 힘’이 당대 자연과 삼라만상의 존재원리를 설명하는 음양의 철학, 오행의 철학, 그리고 그에 기반한 ‘氣’라는 개념으로 확정되었을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물론 음양오행의 철학이 삶의 철학으로 보편화되는 과정 역시 복잡한 역사가 존재하며, 따라서 처음부터 氣의 철학 및 음양오행설의 철학으로 확정된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氣-理를 둘러싸고도 지속적인 논쟁이 전개되기도 하지만, 고대 동의학은 이 氣철학의 입론과 결합되며 ‘氣一元論’的 세계관과 친화성이 높은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할 것이다. 황제내경과 난경의 입론을 거치며 동의학의 기본체계가 구성되고, 이러한 바탕 위에서 경혈학 경락학 장상학 진단치료학 등이 완성된다. 이러한 과정에는 불교가 전래되며 나타난 영향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로 제쳐 두고..).

 

그리고 이렇게 구축된 동의학의 틀은 점차 공고화되어 이후 세계관의 일정한 변용과 변천에도 불구하고, 특히 근대화과정에서 나타나는 종두법의 등장, 해부학적 지식의 발전, 세균의 발견과 항생제 개발 등 일련의 의학지식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근대의학이라는 범주에서 배제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지만, 그런 속에서도 면면히 유지되며 존속되어 왔다. 특히 근자에 와서는 보완/대체요법이라는 이름을 덮어쓰긴 했지만 그 유용성에 대한 재평가가 폭넓게 이루어지는 한편, 그 종주지역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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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관점을 달리하여 규칙성 있는 자극-반응에 대한 이러한 감각의 경험을 현대의학적 관점에서(주로 신경해부학적 관점) 조심스럽게나마 재해석해 보고자 한다. 동의학은 이 자극-반응의 객관적인 현실을 두고 인체 내에 그 보이지 않는 氣가 흘러다니는 경로, 즉 경락을 상정하고 있다. 즉 인체 내에 그러한 감각과 통하는 조직의 존재를 상정하는 셈이다.

 

그런대 자극-반응의 과정에 존재하는 감각이란 상식적으로(현대의학적으로) 뇌의 인지, 즉 뇌에 의한 의식활동을 전제하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는다. 자극에 따른 흥분이 뇌에 전달되는 것이 그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인체를 뒤덮고 있는 피부는 물론 체내의 모든 장기도 신경조직에 의해 각기 대응하는 뇌세포에 연결되어 있다. 체성신경이든 자율신경이든 말초신경으로부터 일어나는 신경흥분이 신경절을 거쳐 척수로 들어가고 다시 뇌로 상행하여 시상에서 통증을 느끼고 또 대뇌로 연결되어 압박 접촉 온도 등을 의식하게 된다. 또 그 감각이 어느 부위에서 일어났는지를 구별하게 된다. 요컨대 자극으로부터 통각을 느끼는 경로란 바로 이 신경을 매개로 존재한다. 말초신경-척수-시상-대뇌로 이어지는 신경계의 연결이 정보전달의 경로임은 자명한 것이다. 다만 이들 신경의 연결은 대체로 척수 시상에서 시냅스를 거치게 되는데, 여기서 자극이 증폭되기도 하고 완화되기도 하며 또 다른 정보가 혼입되어 전달되기도 한다. 즉 인근 시냅스로 정보가 혼입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의 혼입은 체성신경과 자율신경의 서로 혼재된 정보 전달로 나타나며, 내장에서의 자극(병변)이 체성신경으로 전달되어 체표의 일정한 부위에 통증을 낳는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척수분절에 대응한 피부 반응구역을 나타낸 이른바 '헤드씨대'(Head's zone)라는 것도 이에 따른 것이다.

 

흥미롭게도 척수는 분절을 형성하여 각 분절마다 연결되는 고유한 신체부위(사지말단 및 장기)가 존재한다. 각기 구심성/원심성 신경경로에 의해 내장이나 사지말단을 포함하여 모든 말초기관을 신경지배한다. 그리고 각각의 분절은 척추 내의 척수를 따라 흐르는 기간섬유속으로 縱으로 연결되어 있다. 체성신경은 이 척수 측방으로 흐르는 기간섬유속에 직접 연결되고 자율신경은 척추 외측을 따라 흐르는 자율신경절의 자율신경 줄기(신경간)로 연결된 다음 척수로 들어가 기간섬유속에 연결된다. 이것이 이른바 방광경락이 갖는 독특한 신경해부학적 성격이다. 척수분절 각각은 橫으로 각기 고유한 사지말단과 관련 장기를 지배하는 한편, 척추 내에서는 척수신경 다발을 이루어 縱으로 하나인 것처럼 존재한다. 배부에 존재하는 방광경의 경혈은 각각의 척수분절에 상응하는 관련 장부명으로 그 이름이 표시되는가 하면, 각 척수분절에서 지배하는 장기의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척수라는 하나의 신경의 다발에 의해 종으로 이어져 하나의 경락을 이루고 있다. 이는 동의학에서 말하는 독맥이기도 하고 방광경락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여타 모든 경락도 이 신경연결를 매개로 성립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력이 흘러다니는 중추의 전도계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동의학과 서양의학을 이어주는 가교가 될 수 있는 만큼 주목할 대목이다.

 

이처럼 우리 인체의 신경지배망은 사지말단의 모든 신체부위를 연결하며 일체의 장기도 연결한다(체성신경 및 자율신경). 물론 뇌에서 직접 분기하여 두부의 제기관을 연결하거나(뇌신경) 체강의 각종 장기를 연결하는(미주신경) 말초신경도 존재한다. 이렇게 인체의 모든 부위는 신경지배 하에 있으며 그에 상응한 척수 및 뇌로 연결되어 그 기능을 발휘하는 셈이다.

 

이 가운데서도 뇌-척수로 이어지는 縱방향의 축이 중심이다. 척수분절에 대응한 피부분절은 橫방향으로 연결되지만, 척수신경은 그 모든 것을 縱으로 잇는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생명력이 흘러다니는 중요한 전도계 역할을 한다. 동의학 경락론의 제경락은 기본적으로 縱으로 달리는 형태로 되어 있다. 예컨대 심/폐의 가슴에서 기시하여 팔로 종주하여 손끝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머리로 종주하였다가, 다시 체간을 거쳐 다리로 종주하여 발 끝에 이르며, 여기서 다시 가슴으로 종주 상행하는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 경락의 유주인데, 어느 경우에나 종주한다. 여기서 우리는 종주하는 경락의 흐름은 모두 척수를 경유하여 완성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가슴에서 기시한 경락이 손끝으로 이어지는 라인을 생각해 보자. 폐경, 심경, 심포경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세 개의 경락은 모두 가슴에서 기시하여 어깨를 거쳐 팔 그리고 손으로 흐른다. 이때 신경로의 관점에서 경락을 해당 장기로 연결해 보자면, 폐나 심장과 통하는 척수분절과 손에서 팔을 거쳐 경추부 및 상흉추부의 척수분절로 연결되는 신경의 연계를 상정함으로써 그 연결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또 손에서 올라와 머리로 이어지는 경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장경, 소장경, 삼초경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들 경락은 손에서 팔을 지나 어깨 목을 거쳐 머리로 흐른다. 이 세 개의 경락 역시 장기와 연계되기 위해서는 팔의 제신경과 척수로 연결되는 내장신경 사이의 정보흐름의 연계를 상정해 볼 수 있다. 다만 이들 경락은 후술하겠지만, 팔에서 경추부의 척수로 이어지는 신경과 대장 소장에서 척수로 이어지는 신경간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설명에 다소간 난점이 따른다.

 

다음 머리에서 기시하여 흉/배부를 거쳐 다리, 발로 이어지는 경락을 보자. 위경, 방광경, 담경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경락은 하나는 복부를, 또 하나는 측면의 협부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배부를 거쳐 다리로 내려가 발에 이르는데, 역시 경락의 정보를 장부와 연계하자면 척수를 거치는 신경로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발에서 기시하여 가슴으로 향하는 경락은 어떨까. 비경, 신경, 간경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들 경락은 발끝에서 다리(주로 내측)를 거쳐 복부를 통해 가슴으로 흘러 원래의 출발점으로 돌아간다. 이들 경락의 경로는 직접적으로 관련 장기가 있는 복부를 거치지만, 이 역시도 직접적인 신경연관은 존재할 수 없고 척수를 매개로 한 정보연관을 상정해야만 성립된다.

 

이상과 같이 경락의 라인과 장부의 연계는 척수에서의 신경연락을 거치며 완성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해부학적으로도 척수로부터 흘러나오고 들어가는 체성신경 및 내장신경의 실제 흐름에서 어느 정도는 유사한 정보연관이 존재한다는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약간의 편차는 존재한다.

 

이들 가운데는 그 편차가 다소 커 보이는 것도 있다. 앞에 지적한대로 손끝에서 머리로 가는 세 개의 경락(대장경, 소장경, 삼초경)이 그러하다. 이들 라인의 신경(해부학적으로 요골신경 정중신경 척수신경)은 C5~T1 사이의 척수분절로 이어지는 신경과 연관되는데, 실재하는 장기로 보기 어려운 삼초는 별도로 치더라도 대장과 소장의 신경연락은 척수분절의 중하단부에 속해 정보연관상 거리가 멀어 설명에 다소 궁색함이 따른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는 혈자리가 있다. 6부하합혈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6부의 합혈 가운데 다리에 합혈이 있는 3개의 장기(위, 방광, 담)가 아닌, 팔로 경락이 흐르는 3개의 장기(대장 소장 삼초)에 대해 팔꿈치 부위에 존재하는 합혈 이외에 별도로 다리에 있는 다른 경락의 혈을 하합혈이라는 이름으로 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족삼양경의 경우는 위경의 족삼리, 방광경의 위중, 담경의 양릉천 등 원래의 합혈이 곧 하합혈이기도 하지만, 수삼양경은 원래의 합혈(대장경의 곡지, 소장경의 소해, 삼초경의 천정)이 팔의 주부에 위치하지만, 별도로 다리를 지나는 경락에서 (하)합혈을 두고 있다. 즉 대장경은 상거허(위경)를, 소장경은 하거허(위경)를, 삼초경은 위양(방광경)을 각각 하합혈로 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6개의 혈을 '6부 하합혈'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혈을 가지고 해당 장기(6부)의 치료에 활용한다. 하합혈을 6부의 기가 다리의 족삼양경과 합해진 경혈로 보기 때문일텐데, 이는 아마도 이들 장기(6부)와 해당 하합혈 간의 정보연관이 한결 가까워져(즉 척수를 매개로 장부와 정보연결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험적으로 반응이 잘 나타났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즉 수삼양경의 경우 손-팔-머리로 이어지는 경락 흐름상 대장 소장 삼초라는 장부와의 연계가 취약하다는 사실을 보완하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이 하합혈을 통해 척수를 매개로 한 정보연관이 완성될 수 있음을 반증해 주는 것이 아닐까..(수삼양경과 6부하합혈 참조)

 

이렇게 척수와 내장의 연결, 척수와 말초신경의 연결, 그리고 척수에서 이들 간의 정보연관을 통해 제장기와 말초신경 사이에 연결이 이루어지고, 이러한 연결이 피부 상에 표현되는 경혈, 그리고 연관되는 경혈을 이은 경락으로 실존하게 된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결로 인해 내장의 병변은 체표상의 압통점을 통해 외부로 드러나고 그 부위나 그와 연관된 말초신경라인에 자극을 주어(곧 침/뜸 자극) 내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침구의료에서 가질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함의는 여기서는 생략한다(추후에..).

 

사실 이러한 근대의학의 신경해부학적 접근은 척수분절 각각에 대응한 피부분절의 구성을 일찌기 해명한 바이지만, 그들 간의 縱的 연관에 대해서는 다소 소홀히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동의학은 척수 속의 상/하행 신경로와 척추를 따라 존재하는 자율신경 신경간의 존재로 확인되는 신경의 縱的 흐름을 주목하고 이를 매개로 한 정보흐름을 경락으로 파악하게 된 것이 아닐까 추론해 보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동의학은 매우 뛰어난 경험과학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우리는 피부나 그 속의 무언가(그 실체가 확인 불가한)에서 경혈과 경락을 그리려는 사고에서 벗어나 생명력이 흘러다니는 전도계로서의 신경조직에 주목하고자 하며, 이러한 입론을 통해 침구의 현대화에 한발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하는 조그마하나마 기대를 가져본다.

 

물론 경락을 단순히 정보전달자인 신경계통으로만 단순화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동의학적으로 경락 및 경혈이 기의 흐름을 조절하고 활성화하는 작용을 한다고 보면, 이는 신경흐름과 함께 존재하는 혈관(혈액) 및 림프의 흐름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혈액 및 림프는 체액과 더불어 또다른 정보전달자가 되기도 하고 신체의 각종 불균형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욱이 신경을 비롯한 혈관이나 림프절의 생리활성에는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 등 각종 생리활성물질의 작용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들 제 기구가 상호 연계하여 인체의 생리활성기구를 이루며, 이른바 인체 생리의 '항상성(Homeostasis)' 유지/관리를 도모한다. 인체 생리의 항상성이란, 동의학적으로 말하자면 곧 '막힘이 없이 균형 잡힌 기의 흐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요컨대 경혈/경락은 그 해부학적 실체를 규명하려는 대상으로 보려 하기 보다는, 그 작용의 관점에서 인체에 대한 현대의학의 생리/신경학적 해석과 결부지어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기해 보려 한다. 즉 동의학에 내재된 경험과학의 놀라운 성과를 현대의학적 개념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침구치료의 묘리를 보다 풍부히 하는 한편 의학 및 의술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면서..

(*芝雲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