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학 이야기/동의학 학습방 : 장중경과 상한론

<상한론>의 독특한 이론체계

지운이 2026. 2. 28. 16:39

胡希恕가 논한 <상한론>의 독특한 이론체계

胡希恕论《伤寒论》的独特理论体系

  /《/胡希恕讲伤寒杂病论》에서 발췌

 

* 胡希恕가 보는 <상한론>의 이론체계는 대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 육경은 경락이 아니라 '팔강'이다 (六经即八纲). 수천 년간 주석가들은 《상한론》의 육경(삼음 삼양)을 인체의 '경락' 흐름으로 설명하려 하였으나, 胡希恕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육경이란 병의 위치(표, 리, 반표반리)와 성질(음, 양)을 조합한 팔강(八綱)의 분류 체계라고 정의한다. 예컨대 태양병 = 표(위치) + 양(성질) = 표양증과 같은 접근이라 할 수 있다. 

2. 《상한론》은 《내경》과 계통이 다르다 (伤寒非出内经). 대부분의 의가들은 《상한론》이 《황제내경》의 이론을 바탕으로 쓰였다고 믿었으나, 胡希恕는 이를 "잘못된 고정관념"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상한론》이 고대의 실전 처방집인 《탕액경(湯液經)》 계통에서 발전한 경험 의학이며, 이론보다 임상적 유효성을 우선시하는 체계라고 주장한다.

3. 변증시치의 핵심은 '방증(方證)'이다 (방증대응, 方证对应) 결론적으로 胡希恕는, 병의 원인을 추상적으로 찾는 것보다, 특정 처방을 써야 할 명확한 증거(증상들의 조합)를 찾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즉, "이러이러한 증상들이 모여 있으면, 반드시 이 처방을 쓴다"는 방증(方證)의 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하 胡希恕가 보는 <상한론>의 이론체계에 대해 《胡希恕讲伤寒杂病论》에서 정리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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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의학이 병명(病)을 구분하기보다 증상(證)을 변별하여 치료(辨證)하는 방식인 이유는 그 발전 역사와 떼어놓을 수 없다. 중의학의 발전은 수천 년 전 고대에 이루어졌으며, 당시에는 진보된 과학적 근거도, 정밀한 기구의 활용도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 서양의학처럼 질병의 실질적인 병변이나 치명적인 요인을 직접 마주하여 진단과 치료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직 인간의 자연적인 감각 기관을 통해 환자의 신체에 나타나는 증상 반응에 의지하여 치료법과 경험을 탐색할 뿐이었다. 실천에 실천을 거듭하며 사진(四診, 네 가지 진찰법)의 진보, 약성의 이해, 처방 조제의 발달을 촉진했을 뿐만 아니라, 변화무쌍한 질병들 속에서도 마침내 일반적인 반응 규칙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반적인 규칙 반응의 토대 위에서 일반적인 질병들을 통괄하여 다스리는 여러 험방(驗方, 효험이 검증된 처방)을 성공적으로 시험해 냈다.

 

이른바 《이윤탕액경(伊尹湯液經)》이 바로 이러한 검증된 처방을 모은 최초의 전적이다. 다만 이것 역시 《신농본초경》이나 《황제내경》과 마찬가지로, 본래 수많은 민중이 기나긴 질병과의 투쟁 속에서 얻어낸 풍성한 성과임에도 불구하고 제왕이나 정승들의 공적 장부에 기록되었을 뿐이다. 《탕액경》은 《한서·예문지》에 기록되어 있으며, 진나라의 황보밀은 《갑을경·서문》에서 “중경(仲景)이 《이윤탕액》을 논하고 넓혀(論廣) 수십 권으로 만들었는데, 사용해 보니 효험이 많았다”고 했다. 이를 통해 중경의 저작 대부분이 《탕액경》에서 소재를 취했음을 알 수 있다. ‘논하고 넓혔다’는 것은 장중경 개인의 학식과 경험을 더했거나, 혹은 여기저기서 널리 채택하여 보충한 부분이 있어 후대 사람들이 사용했을 때 효험이 많았음을 말해 준다. 하지만 《탕액경》이 실전(失傳)되면서, 많은 이들이 이를 장중경의 독창적인 44ㄷ 오해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방제의 시조(方劑之祖)’, ‘의중지성(醫中之聖, 의학계의 성인)’이라는 근거 없는 과찬의 추앙이 생겨났다.

 

묻건대,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 변화무쌍한 질병의 증후 반응 위에서 질병 일반의 발전 법칙과 치료 준칙을 탐구하고, 백발백중의 처방들을 제정하는 것이 어찌 가능했겠는가? 만약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인체 위에서 천만 번의 반복적인 시험과 관찰, 실천을 거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토록 정교한 결론을 완성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이윤이나 장중경 그 누구도 이러한 기적 같은 발명을 혼자 해낼 수는 없다. 이는 오직 광범위한 노동 대중이 끊임없는 질병과의 투쟁 실천 속에서 점진적으로 쌓아 올린 위대한 성과일 뿐이다. 긴 역사의 발전 과정이 있었던 것이지, 결코 어느 한 시대, 하물며 어느 한 개인에 의해 창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탕액경》의 출현은 곧 변증시치(辨證施治) 방법의 성숙을 상징한다. 그러나 《탕액경》 역시 아득한 상나라 시대에 나온 것이 아니며, 이윤과 연결될 수도 없다. 장중경에 관해서라면, 그는 《탕액경》의 걸출한 전승자에 불과하다. 《탕액경》은 지금은  얻을 수 없으나 중경의 책이 남아있어 변증시치의 법칙과 다양한 검증 처방들이 다행히 전해지게 되었으니, 이것 또한 중경의 공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본래 중경의 저서는 《황제내경》과는 상관이 없다. 다만 중경의 서문에 “《소문》 9권을 찬용하여…”라는 구절이 있어, 주석가들이 대부분 《내경》에 억지로 갖다 붙이는(附會) 미궁에 빠지게 되었고 후대에 미친 영향이 매우 컸다. 사실 그 서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코 한 사람의 솜씨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식견 있는 이들은 대개 진(晉)나라 사람이 위조한 것이라 의심해 왔으며, 근세의 양소이(楊紹伊)가 이를 특히 정교하게 가려냈기에 이제 그 요점을 선택하여 아래에 소개함으로써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양소이는 그의 저서 《이윤탕액경》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알 만한 사람은 이 서문을 읽을 때, 그 전반부를 보면 운율이 비록 높지는 않으나 맑고, 가락이 아주 예스럽지는 않으나 우아하며, 변려문(4·6조의 화려한 문체)도 산문도 아닌 것이 딱 건안 시대(장중경의 시대)의 문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천포오행(天布五行)’과 ‘성질문병(省疾问病)’으로 시작하는 두 단락은 필치와 문장의 법칙, 마디와 울림이 모두 진(晉)나라 시대의 풍조(왕숙화의 시대)에 속한다. 《상한례(傷寒例)》 중의 문구들과 대조하여 '피를 섞어 검사(滴血验之)'해 본다면, 이들이 한 집안 골육(같은 저자의 글)임을 즉각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문법적 격식(文律)으로 따져보자. “옛 가르침을 부지런히 구하고 여러 처방을 널리 수집했다(勤求古训,博采众方)”는 표현은 문법상 일반적인 요약(혼설)이다. 반면 “《소문》 9권 등을 찬용하여...”라고 나열한 다섯 구절은 구체적인 열거(상거)이다. 무릇 문법에서 요약하는 자는 구체적으로 열거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자는 요약하지 않는 법이다.

원래의 문장은마당땅히 이러했을 것이다:

 

“지난날 친척들이 죽어 나감을 슬퍼하고, 젊은 나이에 요절함을 구제하지 못함을 가슴 아프게 여겨, 이에 옛 가르침을 구하고 여러 처방을 널리 수집하여 《상한잡병론》 합 16권을 지었다.”

 

이것만으로도 뜻이 충분하고 문체도 간결하다. 만약 구체적으로 열거하고자 했다면 “이에 《소문》 9권, 《81난》, 《음양대론》, 《태로약록》 및 《평맥변증》을 찬용하여 《상한잡병론》 합 16권을 지었다”라고 했어야지, 요약된 표현을 쓰고 나서 뒤에 다시 구체적인 서적들을 열거해서는 안 된다. 또한 《소문》 9권, 《81난》, 《음양대론》 이 세 권의 책은 정작 본문인 삼양삼음(육경) 편에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는다. 또한 ‘답왈(答曰)’, ‘사왈(師曰)’과 같은 문답 형식의 맥법(辨脈, 平脈) 역시 중경의 자작이 아니다. 《상한례》 한 편은 왕숙화의 저작임이 글 속에 명백히 밝혀져 있는데, 이 《상한례》가 바로 첫머리에 《음양대론》을 인용하고 있으며 그 내용들이 모두 앞서 말한 세 권의 책에서 나왔다. 즉, 이 책들은 왕숙화가 인용한 책이지 장중경이 수집한 책이 아니다.

다시 왕숙화가 편집한 순서를 증거로 삼아보자. 왕숙화가 편찬한 편 중에 《평맥법》이 있는데, 여기에 인용한 서적 중 《평맥변증》이라는 종류가 있다. 이 인용된 《평맥변증》은 바로 《평맥법》의 출처를 밝히는 주석과 같으므로, 《평맥법》이 《평맥변증》에서 나왔다면 《평맥변증》은 결코 중경이 널리 수집한 책이 아니다.

또한 삼양삼음 편 중에서 왕숙화가 편집했음을 고찰할 수 있는 것은 ‘문왈 답왈’ 형식의 《변맥법》류와 ‘문왈 사왈’ 형식의 《평맥법》류 외에는 제3의 종류가 없다. 이때 인용된 서적은 《상한례》를 짓기 위해 쓰인 《소문》, 《81난》, 《음양대론》 세 권을 제외하면 오직 《태로약록》과 《평맥변증》 두 가지뿐이다. 《평맥법》의 ‘문왈 사왈’류가 이미 《평맥변증》에서 나왔다면, 《변맥법》의 ‘문왈 답왈’류는 의심할 바 없이 《태로약록》에서 나온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왕숙화가 위조를 한 실질적인 이유는 자신이 책을 엮을 때 사용한 서적들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문의 아래 두 단락은 (장중경의 말이 아니라) 왕숙화가 자신의 학문적 渊源(연원)이 어디서 왔는지를 스스로 서술한 것일 뿐이다.

 

중경(장중경)의 저서는 고문이 매우 깊고 오묘하여 본래 읽기가 어렵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독자들은 왕숙화의 위조된 서문에 현혹되어, 대부분 《내경(內經)》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책을 대했다. 이로 인해 중경의 저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해졌고, 결과적으로 중경서를 통해 '변증시치'의 방법 체계와 그 정신적 실체를 밝혀내는 일 또한 불가능하게 되었다.

 

7

중의학의 변증시치는 광범위한 노동 대중이 질병과의 투쟁 실천 속에서 요약해 낸 것이지, 나면서부터 아는 어떤 성인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실천에서 온 것이라면 당연히 객관적인 형식과 진리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형식이란 앞서 말한 '변증시치의 방법 체계'를 뜻하며, 진리란 '변증시치의 정신적 실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의 결산이 오늘날 오직 중경의 저서에서만 보인다면, 변증시치를 연구함에 있어 중경서를 버리고 또 어디에서 구하겠는가? 본 저서는 바로 중경서의 증치(證治) 정신을 꿰뚫어 보고, 임상 실천과 결합하여 깊이 있게 탐구하고자 한다.

 

중의학의 발전은 원래 침구(針灸)가 먼저였고 탕액(약물)이 나중이었다. 경락의 이름으로 병을 부르는 습관이 오래되었기에, 《상한론》이 이를 연용하여 편을 나눈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전 편에는 시종일관 '팔강변증(八綱辨證)'의 정신이 흐르고 있으며 그 대략적인 뜻은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경락이라는 명칭에만 매달려 놓아주질 않고, 이를 《내경》의 여러 학설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바람에 끝내 변증시치의 규칙 체계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 정신적 실체를 꿰뚫어 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육경(六經)이 곧 팔강(八綱)이므로 경락의 명칭은 본래 폐기해도 무방하다. 다만 본 저서는 중경서를 통해 이를 규명하고 독자들이 대조하며 연구하기 편하도록 하기 위해 이를 병존시킨다. 《상한론》은 육경마다 각각 개괄적인 강령(요약)을 두고 있는데, 이제 원문을 그대로 기록하고 간략하게 주석을 아래와 같이 덧붙인다.

 

(태양병은 표양증)

“太阳之为病,脉浮,头项强痛而恶寒。​”

“태양병(太陽病)이란 맥이 부(浮)하고, 머리와 목이 뻣뻣하고 아프며 추위를 타는 것이다.” 

해설: 태양병은 곧 표양증이다. 즉, 태양병은 맥이 뜨고(맥부), 머리와 목덜미가 뻣뻣하고 아프며(두항강통), 추위를 싫어하는(오한) 일련의 증후를 특징으로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어떤 병이든 맥이 부하고 머리와 목이 아프며 오한이 보인다면 곧바로 태양병증으로 확진할 수 있으며, 이는 틀림이 없다.

 

(양명병은 리양증)

“阳明之为病,胃家实是也。​”

해설 : 양명병은 곧 리양증이다. ‘위가실’이란 병의 사기가 위장관 내부에 가득 차서, 배를 눌렀을 때 단단하고 가득 차 있으며 저항감이나 압통이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대개 어떤 병이든 ‘위가실’의 상태라면 양명병으로 확진할 수 있다는 뜻이다.

 

“阳明外证云何?答曰:身热汗自出,不恶寒,反恶热也。​”

해설 : ‘위가실’이 양명병의 복부 증상(복증)이라면, 이 외에도 진단에 참고할 수 있는 양명병의 외부 증상(외증)이 있다. 몸에 열이 나고(신열), 저절로 땀이 나며(한자출), 추위를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더운 것을 싫어하는(오열) 일련의 증후가 바로 그 외증이다. 어떤 병이든 이러한 외증이 보인다면 또한 양명병으로 확진할 수 있다.

 

(소양병은 반표반리양증)

“少阳之为病,口苦,咽干,目眩也。​”

해설 : 소양병은 곧 반표반리양증이다. 소양병은 입이 쓰고(구고), 목구멍이 마르며(인건), 눈앞이 어질어질한(목현) 일련의 증후를 특징으로 하며, 어떤 병이든 이러한 특징이 보이면 소양병으로 확진할 수 있다.

 

(태음병은 리음증)

“太阴之为病,腹满而吐,食不下,自利益甚,时腹自痛,若下之,必胸下结硬。​”

해설 : 태음병은 곧 리음증이다. 태음병은 배가 가득 차면서 토하고(복만이토), 음식이 내려가지 않으며(식불하), 설사가 갈수록 심해지고 때때로 배가 스스로 아픈(시복자통) 일련의 증후를 특징으로 한다. 어떤 병이든 이러한 일련의 증후가 보이면 태음병으로 확진할 수 있다. 태음병의 복만(배가 부름)은 허만(虛滿)으로, 양명병 위가실의 실만(實滿)과는 크게 다르다. 만약 실만으로 오인하여 설사시키는 약(하제)을 쓰면 그 허함이 더욱 심해져 가슴 아래가 딱딱하게 뭉치는(결경) 변고에 이르게 된다.

 

(소음병은 표음증)

“少阴之为病,脉微细,但欲寐也。​”

해설 : 소음병은 곧 표음증이다. 이는 태양병과 대조하여 설명하는 것으로, 만약 앞서 말한 태양병 같은 상태에서 맥이 미세하게 나타나고 그 사람이 단지 자고만 싶어 한다면(정신이 혼미하여 눈을 감고 누워 있으려 함), 곧바로 소음병으로 확진할 수 있다.

 

(궐음병은 반표반리음증)

“厥阴之为病,消渴,气上撞心,心中疼热,饥而不欲食,食则吐蛔,下之利不止。​”

해설 : 궐음병은 곧 반표반리음증이다. 대개 궐음병은 소갈(심한 갈증), 기운이 가슴으로 치밀어 오름, 가슴 속이 괴롭고 뜨거움(심중동열), 배는 고픈데 음식을 먹고 싶지 않음(기이불욕식), 음식을 먹으면 회충을 토함 등의 일련의 증후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어떤 병이든 이러한 일련의 증후가 보이면 궐음병으로 확진할 수 있다. 반표반리 증상에는 설사시키는 약을 써서는 안 되며, 특히 음증일 때는 더욱 엄격히 금해야 한다. 부주의하게 잘못 사용하면 설사가 멈추지 않는 화를 당하게 된다.

 

앞서 설명한 육경과 팔강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어떤 병이든 질병에 걸린 신체(기체)의 반응은, 병의 부위(病位) 측면에서는 표(表), 리(里), 반표반리(半表半里)를 벗어나지 않으며, 병의 상태(病情) 측면에서는 음(陰), 양(陽), 한(寒), 열(熱), 허(虛), 실(實)을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질병의 유형(病型) 역시 삼양삼음(三陽三陰)의 여섯 가지 부류일 뿐이다. 이는 임상 실천의 증명을 통해 누차 확인된 사실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육경과 팔강이란 사실 질병에 걸린 신체가 나타내는 일반적인 규칙적 반응에 불과하다. 중의학의 변증(辨證)에서 가장 먼저 분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들이며, 중의학의 시치(施治, 치료) 또한 주로 이것들을 통하여 치료의 준칙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중의학 변증시치의 으뜸가는 정신은 바로 '질병에 걸린 신체의 일반적인 규칙적 반응'의 기초 위에서, 일반적인 질병들을 통괄하여 다스리는 방법(通治方法)을 탐구하는 데에 있다.

 

 

 

(원문)

中医治病,之所以辨证而不辨病,是与它的发展历史分不开的,因为中医发展远在数千年前的古代,当时既没有进步科学的依据,又没有精良器械的利用,故不可能有如近代西医面向病变的实质和致病的因素,以求疾病的诊断和治疗,而只有凭借人们的自然官能,于患病人体的症状反应,去探索治病的方法经验,经实践复实践,不但促进了四诊的进步、药性的理解和方剂配制的发达,而且对于万变的疾病,亦终于发现了一般的规律反应,并于此一般规律反应的基础上,试验成功了通治一般疾病的种种验方。所谓《伊尹汤液经》即集验方的最早典籍,不过这亦和《神农本草经》​《黄帝内经》一样,本是难以数计的民众于长期不断的疾病斗争中所取得的丰硕成果,却记在帝王宰相们的功德薄上。​《汤液经》见于《汉书·艺文志》​,晋皇甫谧于《甲乙经·序》中谓“仲景论广《伊尹汤液》为十数卷,用之多验”​。可见仲景著作大都取材于《汤液经》​,谓为论广者,当不外以其个人的学识经验,或间有博采增益之处,后人以用之多验。​《汤液经》又已失传,遂多误为张氏独出心裁的创作,因有“方剂之祖”​“医中之圣”等无稽过誉的推崇。试问:在科学还不发达的古代,只是于变化莫测的疾病证候反应上,探求疾病一般的发展规律和治疗准则,并制定出种种必验的治方,若不是在长久的年代里和众多的人体上,历经千百万次的反复试验、观察,反复实践,又如何可能完成这样百试百验的精确结论?故无论伊尹或张仲景都不会有这样奇迹的发明,而只能是广大劳动群众,在不断的疾病斗争实践中,逐渐积累起来的伟大成果。它有很长的历史发展过程,而绝不是,亦不可能是某一个时代,更不要说是某一个人便能把它创造出来。​《汤液经》的问世即标志了辨证施治的方法长成,但《汤液经》亦不会出于遥远的商代,更与伊尹拉不上关系。至于张仲景,要不外是《汤液经》的杰出传人,​《汤液经》已不可得,赖有仲景书,则辨证施治的规律法则和多种多样的证治验方,幸得流传下来,此又不能不说是仲景之功也。

 

仲景书本与《内经》无关,只以仲景序言中有“撰用《素问九卷》……”​,遂使注家大多走向附会《内经》的迷途,影响后来甚大。其实细按其序文,绝非出自一人手笔,历来识者亦多疑是晋人作伪,近世杨绍伊辨之尤精,今择要介绍于下,以代说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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杨绍伊在其所著《伊尹汤液经》中写道:

 

知者以此篇序文,读其前半,韵虽不高而清,调虽不古而雅,非骈非散,的是建安。​“天布五行”与“省疾问病”二段,则笔调句律,节款声响,均属晋音。试以《伤寒例》中词句,滴血验之,即知其是一家骨肉……再以文律格之,​“勤求古训,博采众方”​,在文法中为浑说;​“撰用《素问九卷》​”等五句,在文法中为详举。凡浑说者不详举,详举者不浑说,原文当是:​“感往昔之沦丧,伤横夭之莫救,乃勤求古训,博采众方,为《伤寒杂病论》​,合十六卷。​”此本辞自足,而体且简,若欲详举,则当云“感往昔之沦丧,伤横夭之莫救,乃撰用《素问九卷》​《八十一难》​《阴阳大论》​《胎胪药录》并《平脉辨证》为《伤寒杂病论》​,合十六卷”​,不当浑说又后详举也……且《素问九卷》​《八十一难》​《阴阳大论》三书,三阳三阴篇中无一语道及,辨脉、平脉之答曰师曰类,又非仲景自作,其《伤寒例》一篇,为叔和之作,篇中已有明文。而《伤寒例》​,即首引《阴阳大论》​,篇中之语,亦悉出此三书,是三书乃叔和撰用之书,非仲景博采之书也。再以叔和撰次者证之,叔和撰次之篇有《平脉法》一篇,此撰用之书,有《平脉辨证》一种,此撰用之《平脉辨证》​,即《平脉法》出处之注脚,​《平脉法》即为出于《平脉辨证》​,则《平脉辨证》必非仲景所博采。又三阳三阴篇中,叔和撰次之可考见者,除问曰答曰之《辨脉法》类,与问曰师曰之《平脉法》类外,无第三类,此撰用之书,除《素问九卷》​《八十一难》​《阴阳大论》三书,为撰《伤寒例》之书外,亦唯《胎胪药录》​《平脉辨证》二种。​《平脉法》之问曰师曰类,既为出于《平脉辨证》​,则《辨脉法》之问曰答曰类,必为出于《胎胪药录》无疑。由是言之,叔和之作伪,实欲自见其所撰用之书,下之二段为自述其渊源所自而已。

 

仲景书古文古奥,本来难读,向来读者又惑于叔和的伪序,大都戴上了《内经》的带色眼镜,因而不可能更客观地看待仲景书,唯其如此,也就不可能通过仲景书以阐明辨证施治的方法体系和其精神实质了。中医的辨证施治,是广大劳动群众在与疾病斗争实践中总结出来的,而不是什么生而知之的圣人创造出来的,关于这一点,是无人加以否认的吧?唯其是来自于实践,当然必有其客观的形式和真理,形式即以上所说的辨证施治的方法体系,真理即以上所说的辨证施治的精神实质。但此实践的总结,今只有见之于仲景书,则于辨证施治的研究,若舍仲景书,又于何处求之呢?本著即透视仲景书的证治精神,和结合临证的实践而进行深入探讨。

 

中医的发展原是先针灸而后汤液,以经络名病习惯已久,​《伤寒论》沿用以分篇,本不足怪,全书始终贯穿着八纲辨证精神,大旨可见。惜大多注家执定经络名称不放,附会《内经》诸说,故终弄不清辨证施治的规律体系,更谈不到透视其精神实质了。其实六经即是八纲,经络名称本来可废,不过本著是通过仲景书的阐明,为便于读者对照研究,因并存之,​《伤寒论》对于六经各有概括的提纲,今照录原文,并略加注语如下:

 

“太阳之为病,脉浮,头项强痛而恶寒。​”

注解:太阳病,即表阳证,意是说,太阳病是以脉浮,头项强痛而恶寒等一系列证候为特征的,即是说,无论什么病,若见有脉浮,头项强痛而恶寒者,即可确断为太阳病证,便不会错误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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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阳明之为病,胃家实是也。​”

注解:阳明病,即里阳证。胃家实,谓病邪充实于胃肠的里面,按之硬满而有抵抗或压痛的意思。大意是说,凡病胃家实者,即可确断为阳明病。

 

“阳明外证云何?答曰:身热汗自出,不恶寒,反恶热也。​”

注解:胃家实,为阳明病的腹证,此外还有阳明病的外证,可供我们诊断。身热、汗自出、不恶寒、反恶热这一系列证候,即其外证,凡病见此外证者,亦可确断为阳明病。

 

“少阳之为病,口苦,咽干,目眩也。​”

注解:少阳病,即半表半里阳证,意是说,少阳病是以口苦、咽干、目眩等一系列证候为特征的,凡病见此特征者,即可确断为少阳病。

 

“太阴之为病,腹满而吐,食不下,自利益甚,时腹自痛,若下之,必胸下结硬。​”

注解:太阴病,即里阴证,意是说,太阴病是以腹满而吐、食不下、自利益甚、时腹自痛等一系列证候为特征的,凡病见此一系列证候者,即可确断为太阴病。太阴病的腹满为虚满,与阳明病胃家实的实满大异,若误以实满而下之,则必益其虚,将致胸下结硬之变。

 

“少阴之为病,脉微细,但欲寐也。​”

注解:少阴病,即表阴证,这是对照太阳病说的,意即是说,若前之太阳病,脉见微细,并其人但欲寐者,即可确断为少阴病。

 

“厥阴之为病,消渴,气上撞心,心中疼热,饥而不欲食,食则吐蛔,下之利不止。​”

注解:厥阴病,即半表半里阴证。大意是说,厥阴病常以消渴、气上撞心、心中疼热、饥而不欲食、食则吐蛔等一系列证候反映出来,凡病见此一系列证候者,即可确断为厥阴病。半表半里证不可下,尤其阴证更当严禁,若不慎而误下之,则必致下利不止之祸。

 

基于前之六经八纲的说明,可得这样的结论,即不论什么病,而患病机体的反应,在病位则不出于表、里、半表半里,在病情则不出于阴、阳、寒、热、虚、实,在病型亦只有三阳三阴的六类,通过临床实践的证明,这亦确属屡经屡见的事实,以是可知,则六经八纲者,实不外是患病机体一般的规律反应,中医辨证,首先即辨的是它们;中医施治,亦主要是通过它们以定施治准则。故可肯定地说,中医辨证施治的首要精神,即是在患病机体一般的规律反应的基础上,讲求一般疾病的通治方法。

 

节选自《胡希恕讲伤寒杂病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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