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학 이야기/동의학 : 역사와 명의 17

침구인을 위한 [중의학의 역사] 3 : 명/청대~현대

침구인을 위한 [중의학의 역사] 3 : 명/청대~현대 *중의학의 역사를 아는 것이 침구를 공부하는데 중요한 기초가 된다는 관점에서 정리해 봅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3회로 나누어 올려둡니다. 마지막 편으로 '명/청대~현대'까지입니다 明・清代 이 시대에 이르면 침구 처방이 원숙기를 맞이한 것으로 평가된다. 『鍼灸逢源』에 162항목, 『鍼灸聚英』에 59항목 『鍼灸全生』에 407항목, 『鍼灸大成』에 249항목 등, 많은 침구 처방이 나오게 된다. 특히 명대는 중국 침구사상 전성기였다. 그 결과 침구 치료의 적응증이 크게 증가하고, 치료 효과도 높아졌다. 당대 치료가들은 침술에 대한 辨証施治 법칙를 탐구하여 정리하게 되는데, 특히 楊継州, 高武 등의 공헌이 주목된다. 예를 들면 『鍼灸大成・巻九』에 "심와부 통..

침구인을 위한 [중의학의 역사] 2 : 송대~금/원대

침구인을 위한 [중의학의 역사] 2 : 송대~금/원대 *중의학의 역사를 아는 것이 침구를 공부하는데 중요한 기초가 된다는 관점에서 정리해 봅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3회로 나누어 올려둡니다. 그 두 번째편으로 '송대~금/원대'까지입니다 宋代(960~1279) 송대로 넘어오면, 그 왕조가 유교를 규범으로 삼았기 때문에 중의학도 국가사업의 요소가 강한 의학으로 자리잡게 된다. 침술 치료도 북송의 황제 삼대는 의학 진흥에 주력하여 「難経」「素問」「傷寒論」「金匱要略」「鍼灸甲乙経」「脈経」등을 교정 간행했다. 해부에 관해서는, 옛날에는 "황제내경 · 霊枢" 骨度篇에 해부의 기록이 보이며, "漢書"에 王莽이 의관에게 생체 해부를 명하고 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청동제의 표준인체모형을 만들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 모..

침구인을 위한 [중의학의 역사] 1 : 고대~당대

침구인을 위한 [中醫學의 역사] 1 : 고대~당대 *중의학의 역사를 아는 것이 침구를 공부하는데 중요한 기초가 된다는 관점에서 정리해 봅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3회로 나누어 올려둡니다. 먼저 첫번째로 '고대~당대'까지입니다 石器時代(약 200만년 前)~ 三国時代 무렵까지.. 침술의 기원이라고 하면 대체로 석기시대의 폄석砭石을 말한다. 폄석이란 날카롭게 깨뜨린 석기를 말하는데, 이를 이용해 화농부위를 째고 농을 빼내는 식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라고들 추정한다. 이로부터 骨鍼, 竹鍼, 陶器 파편으로 만든 陶鍼 등이 출현했을 것이다.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는 뼈를 가공하여 만든 침이 출토되었다. 아이스맨의 몸에 남겨진 문신이 침구의 흔적이었을 것이라고도 한다.(아이스맨이 침뜸을ᆢ참조) 기원전 1,500년경에 성립..

갈홍(葛洪)과 연단술

葛洪과 연단술 葛洪갈홍(283년~343년) 과거 중국 의사들 가운데 매우 인상적인 인물이다. 대부분이 누군가에게 의학을 배우게 되는 것이 보통인데, 그는 순전히 독학으로 명의가 된 인물이다. 그것도 고학으로.. 가세가 기울어 땔나무 장사로 연명했던 그는 아궁이에서 타다 남은 목탄으로 바위에다 글씨를 써서 공부했다고 한다. 하여간 과거의 뛰어난 선배들이 쓴 한방 처방약이나 침구에 대해 쓴 책에서 배우면 누구든 의사가 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중국 전통의학은 약제나 침뜸 시술을 통해 인체에 뭔가 도움을 주어 환자 스스로가 병을 고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도와 주어도 환자 스스로가 고치지 못하는 병에 대해서는 고칠 수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도움을 준다는 것은 현대의학적으로 보자면..

華佗(화타)와 외과수술

華佗(화타)와 외과수술 한나라 때 마지막 명의는 『상한론』을 쓴 장중경(AD150, AD219)이고, 그 다음 후한 말부터 삼국 남북조 시대의 사람으로 화타가 있다. 화타는 중국 외과(수술)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그는 특히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일화 때문에 더 유명해 졌는지도 모른다. 조조는 후한을 섬기다가, 후한의 붕괴 원인이 된 황건의 난를 평정하고 새로 魏위나라를 만들어 국왕이 되었다. 조조가 화타의 명성을 듣고 항상 옆에 두어 자신의 건강을 지키도록 했다. 화타는 한방생약을 잘 다루기도 했지만, 침구에도 천재적이어서, 그 명성이 위나라의 황제인 조조에까지 전해졌던 것이다. 옛부터 동의에서는 마취약으로 사용되던 것이 있다. 通仙散 또는 麻沸散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실은 이 마비산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