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학 이야기/동의학 : 역사와 명의

華佗(화타)와 외과수술

지운이 2018. 3. 28. 16:31

華佗(화타)와 외과수술

 

한나라 때 마지막 명의는 『상한론』을 쓴 장중경(AD150, AD219)이고, 그 다음 후한 말부터 삼국 남북조 시대의 사람으로 화타가 있다. 화타는 중국 외과(수술)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그는 특히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일화 때문에 더 유명해 졌는지도 모른다. 조조는 후한을 섬기다가, 후한의 붕괴 원인이 된 황건의 난를 평정하고 새로 魏위나라를 만들어 국왕이 되었다. 조조가 화타의 명성을 듣고 항상 옆에 두어 자신의 건강을 지키도록 했다. 화타는 한방생약을 잘 다루기도 했지만, 침구에도 천재적이어서, 그 명성이 위나라의 황제인 조조에까지 전해졌던 것이다.

 

옛부터 동의에서는 마취약으로 사용되던 것이 있다. 通仙散 또는 麻沸散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실은 이 마비산을 써서 역사상 처음으로 전신마취에 의한 절개 수술을 한 것이 바로 이 화타라고 한다. 화타는 이 마비산을 술로 먹게 했다고 한다. 술에 취해서 지각이 둔해지고 또 마비산으로 의식이 없어졌을 때에 병소인 배와 등을 절개하고 이물질을 잘라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이물질은 요즘의 암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병소가 장내에 있을 때는 절단하고 세척하고 그 이물질을 떼어내고 나머지 장관을 연결시키고, 다시 봉합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봉합 자국에 신고神膏라는 연고를 발라 봉합하여 창상을 치료했다고 한다. 상처는 4~5일에 회복되고 1,2개월 만에 완쾌하였다고 한다(후한서의 <화타전>, 삼국지연의의 <화타전>). 물론 소독이나 수혈이 불가능한 조건이었으니 그가 수술한 환자들은 대부분 감염증으로 숨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로 들리기도 하지만, 이미 고대의 이집트나 인도 그리고 남미에서 외과수술에 대한 자료가 나타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화타의 외과수술이 꾸며낸 이야기라고만 치부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럼 조조는 왜 화타를 죽였을까? 조조는 오랫동안 두풍頭風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다. 두풍은 머리가 저리거나 아프거나 어지러운 병이다. 화타의 침으로 이 두통이 바로 나은 터라, 화타를 언제까지나 자신의 옆에 두려 하였다. 그런데 화타는 자유인으로 빨리 고향에 돌아가기를 청해서 고향으로 갔다가는 처가 아프다는 핑계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후 조조가 화타를 불렀으나 돌아오지 않자 조조가 사자를 보내서 알아보도록 하였는데, 알고 보니 아내의 병이 꾀병이었음에 노하여 조조는 화타를 죽이고 말았다.

 

화타가 발명하고 유명하게 된 또 다른 건강법이 있다. 중국에는 유교는 있어도 유일신을 만들어 그 신만 믿는 종교는 없다. 중국 한민족의 종교라고 굳이 말하자면 도교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도교의 시조는 황제와 노자이다. 옛부터 전해 오는 전통의 巫術무술이 있다. 이른바 샤머니즘으로, 무속인을 중개자로 영적인 존재와 소통을 하는 종교의식이었다. 샤먼이란 존재는 어떤 약초를 마시고는 자신을 잊고 황홀 상태가 되어, 신, 정령, 귀신 등에 직접 교섭하고 그 힘을 빌려 말과 예언을 벌이는 동시에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는 종교적 기능자를 말한다. 샤먼이 바로 무녀이다. 이렇게 고대 중국인들은 오랜 옛날부터 무술과 노장 사상과 도교의 흐름을 이어, 그것에 음양오행설이나 신선사상을 가미하여 불로장생의 술법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이것을 도인導引 또는 기공이라 한다.

 

무속인이 지금의 마약이나 각성제와 같은 약초를 섭취하고, 신과 교신하고 점이나 주술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이런 약초의 주성분을 분석하여 근대에 와서 의약품의 원료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이들 약용 식물은 직접 면역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뇌의 중추신경까지 연결하는 신경전달물질로 밝혀졌는데 면역을 억제하지 않고 통증을 제거하는 약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도인술에 화타는 새로 "오금희"라는 것을 만들어 더하였다. 중국에 가면 지금도 사람들이 아침에 공원에 모여 이 오금희를 하는 것을 볼 수있다. 또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건강법으로 태극권도 있다. 태극권은 음양 변화의 원리에 따른 것이라 한다. 완만하게 원을 그리는 동작이 주를 이루는데, 이를 통해 신체를 단련하는 한편 정신 수양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오금희와 태극권는 차이가 있다. 화타가 만든 기공은 5종류의 동물의 행동을 모방한 것이다. 오금희는, 5종류의 동물, 즉 "새, 사슴, 원숭이, 곰, 호랑이"의 행동을 흉내내는 동작을 통해서 기를 모아 삶의 에너지를 강화시키려는 것이다. 오금희로 수련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몸이 불쾌한 때에 일어나 이 동물의 동작을 흉내내면 마음이 누그러지고 땀이 나고 원기를 얻는다고 한다. 현대도 계속되고 있는 도인, 즉 기공의 하나인 오금희를 창작한 것도 바로 화타였다.

 

그리고 화타는 이른바 ‘협척’혈로도 유명하다. 동의학에서 침뜸치료를 위해 활용되는 혈자리에 추가된 것으로, 독맥라인과 방광1선 사이에 독맥 외방 0.5촌 부위에 혈자리를 정하고 있는데, 이를 '화타 협척혈'이라고 한다. 대체로 방관1선의 각 배유혈과 유사한 치료효과를 갖는 경외기혈이다. 경외기혈임에도 불구하고 임상에서 활용빈도가 높은 혈자리이다(화타협척혈의 과학적 음미 참조)

 

그의 저서로는 침중구자경, 관형찰색삼부맥경, 화타내사, 화타방, 청낭서 등이 있다고 하나, 모두 유실되어 일부 내용들만 다른 의서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청낭서(靑囊書)의 경우 그가 옥에 갇혀있을 때 저술한 것으로, 옥리에게 전하여 남기고자 하였으나 옥리의 처가 태워버려 전해질 수 없었다는 일화도 있다.

(*芝雲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