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구인을 위한 [中醫學의 역사] 1 : 고대~당대
*중의학의 역사를 아는 것이 침구를 공부하는데 중요한 기초가 된다는 관점에서 정리해 봅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3회로 나누어 올려둡니다. 먼저 첫번째로 '고대~당대'까지입니다
石器時代(약 200만년 前)~ 三国時代 무렵까지..
침술의 기원이라고 하면 대체로 석기시대의 폄석砭石을 말한다. 폄석이란 날카롭게 깨뜨린 석기를 말하는데, 이를 이용해 화농부위를 째고 농을 빼내는 식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라고들 추정한다. 이로부터 骨鍼, 竹鍼, 陶器 파편으로 만든 陶鍼 등이 출현했을 것이다.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는 뼈를 가공하여 만든 침이 출토되었다. 아이스맨의 몸에 남겨진 문신이 침구의 흔적이었을 것이라고도 한다.(아이스맨이 침뜸을ᆢ참조)
기원전 1,500년경에 성립된 商(殷)나라에서 甲骨文(거북의 등딱지나 동물의 뼈에 새겨진 문자)이 출토되었는데, 물론 ‘医’ ‘薬’을 의미하는 문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가운데 두통, 귀 질환, 안과 질환, 코 질환, 발 질환과 같은 病名 또는 복부의 기생충을 나타내는 甲骨문자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고 한다.
침의 활용에서 역시 획기적인 것은 철기의 출현이다. 바로 전국시대(기원전 400-200년경)가 되면 철로 만든 鐵鍼이 만들어지고, 그에 이어 金鍼, 銀鍼도 제작된다. 금속으로 만든 침의 등장은 보다 정교한 침 시술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뜸은 처음 나무가지 등에 불을 붙였다가 그것으로 환부에 열을 가해 질병을 치료하는데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쑥이 뜸의 연료로 활용된 것은 이어 춘추전국시대이다(艾灸). 고대시대 뜸은 지금과 같은 간접뜸이 아니라 대부분 피부에 직접 붙여 열을 가하는 방식이었다. 침과 뜸을 합쳐서 刺灸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외에도 吸玉이 있었는데 주로 동물의 뿔을 이용했었기 때문에 角法이라고 불렸다. 이것이 오늘날 유리컵을 이용한 부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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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문화권은 지리적으로 북쪽부터 황하문화권, 양쯔강문화권, 강남문화권 등으로 크게 구분해 볼 수 있으며, 권역별로 의료문화에도 차이가 나타난다고 한다.
황하문화권에서는 인체의 특정 위치에 경혈, 즉 혈자리라는 반응점이 있어 이곳을 자극하면 반응이 잘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렇게 나타난 경혈들을 연결짓는 길로써 경락이 발견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경락은 기혈을 운행시켜 인체을 자양하는 작용을 갖는다.
춘추전국시대에 황하문화권에서 나타난 자연관은 대우주와 소우주를 묶어 대비시키는 천인합일사상(天人合一思想), 만물을 상반된 성격의 두 요소로 해석하는 陰陽說이라는 사상에 기초를 두는 한편, 온갖 사건사물을 木 火 土 金 水의 상생과 상극에 의한 밸런스로 해명하는 五行說에 의거하였다. 인체로 말하자면, 남자는 양 여자는 음, 등은 양 배는 음, 피부는 양 皮内은 음에 속한다. 오장(肝・心・脾・肺・腎)은 음에 속하고, 육부(胆・小腸・胃・大腸・膀胱・三焦)는 양에 속한다. 이와 같이 모든 사물은 음양의 지배를 받아 상대적으로 밸런스를 유지하여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인체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자연관을 바탕으로 전국시대부터 한漢나라를 거치며 중의학이론의 체계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런 기반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黄帝内経』이라는 醫書이다. 戦国時代에서 後漢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며, 여러 사람에 의해 저술된 것으로 보인다. 황제내경은 황하문화권의 선조인 전설의 성인인 黄帝와 그 신하 岐伯 및 雷公과의 문답 형식으로 쓰여진 것으로, 병의 원인과 병리를 논하고, 이를 기초로 치료법을 제시한 중의학의 대표적인 문헌이다.*) 동의학의 시작을 알리는 본격적인 신호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後漢의 역사를 기록한『漢書』에는, 『黄帝内経』말고도 『黄帝外経』, 『扁鵲内経』, 『扁鵲外経』, 『白氏内経』, 『白氏外経』등 의서가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黄帝内経』뿐이다. 이를 두고 黄帝학파, 扁鵲학파, 白氏학파 등의 다른 유파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황제학파의 황제내경만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황제내경에도 황제와 대화하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 안에서도 다른 유파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특히 초기 유파가 음양론을 준거한 반면, 후기 유파는 오행설을 더하여 음양오행설을 기반하고 있다고도 한다.
**오래된 것으로만 치자면, 1973년 馬王堆에서 출토된 의서들도 있다. 「五十二病方」「足臂十一脈経」「陰陽十一脈経」「脈法」등이 있다. 秦 - 漢의 교체기인 BC 2~3세기로 추정된다. 이 '十一脈経'은 황제내경(영추) '経脈篇'의 원형으로 추론하고 있다. 다만 「五十二病方」에는 주술도 포함되어 있고, 또 「足臂十一脈経」「陰陽十一脈経」에는 経絡이 11개 밖에 기술되어 있지 않다.
황제내경의 현존 텍스트는 「素問」「霊枢」「太祖」「明堂」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霊枢"는 針経라고 칭하듯 고대의 九鍼에 대한 설명과 침구 치료를 위한 진단학 및 수기법 등에 대해 적고 있다. "素問"은 생리 · 병태 · 양생에 관한 것이나, 약물 치료, 침구 치료, 導引, 按蹻 등에 대해서도 적고 있다.
한편, 양자강문화권에서는 자연의 산물을 이용한 약물요법이 발달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중국 최초의 약초학 의서로 알려진 「神農本草経」이 발견되었다. 여기에는 365종의 약물이 기재되어 있고, 독성의 유무, 강도, 영양약물인지 치료약물인지에 따라 상 · 중 · 하 3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후한(1 ~ 2세기) 무렵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약 5세기 후인 당대에 소실되었지만, 그 내용은 역대 本草書를 통해 계승되었다고 한다.
강남문화권의 의술은 殷代의 탕액 계통에 속한다. 약물을 사용하지만, 양자강문화권과는 달리 쉽게 구할 수 있는 약물을 주로 조합하여 효과를 올리는 것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강남문화권의 의학은 대체로 漢代에 완성된 것으로 본다. 이들을 모아 낸 것이 後漢 때 張仲景이 저술한 「傷寒雑病論」이다. 이 책 역시 전란으로 소실되었는데, 雑病 부분은 볼 수 없지만 「傷寒論」과 「金匱要略」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傷寒이란 외사가 침입한 외감 질환을 의미하는데, 오늘날의 유행성 독감에 해당하는 급성 열성질환에 해당한다. 張仲景은 "素問"의 "熱論"을 기초로 太陽・陽明・少陽의 三陽과 太陰・厥陰・少陰의 三陰으로 나누어 三陽病은 대부분 熱・実에 속하고 三陰病의 대부분은 寒・虚에 속한다고 했다. 또한 陰陽의 구별을 총강으로 삼고 증상을 表裏・寒熱・虚実로 분류하여 후의 八綱변증의 기초를 구축하였다. 그런 맥락에서 張仲景을 처음으로 의학이론을 체계화한 인물로 평가한다.
고대부터 3세기까지 대표적인 의사로는 扁鵲 · 淳于意・華佗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명의들의 존재는 의료가 무당으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영역을 형성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史記』‘扁鵲倉公列伝’에 ‘六不治’라 했는데, 그 첫 번째 항목에 ‘무당을 믿고 의자를 믿지 않는다’ 하였다. 즉 이 시기에 명확한 의학이론과 이를 기초로 한 치료기술이 뚜렷히 확립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扁鵲은 기원전 5세기 무렵의 명의로, 望・聞・問・切의 四診을 중시하였고, 砭石・鍼灸・湯液・手術 등 다양한 치료법을 구사하였다. 「史記」에는 죽게 된 태자를 扁鵲이 가사 상태라고 진단하고 침술을 비롯한 치료를 구사하여 소생시켰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전국시대에는 病邪가 체표나 혈맥에 머무르게 되면, 침이나 사혈을 한다거나 환부를 따뜻하게 하거나(옛날에는 熱熨法이라고도 불렀다) 하고, 내장까지 침범한 경우에는 약물요법과 섭생으로 대처하겠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淳于意는 倉公이라고도 하는데, 望色과 切脈을 중시했다. 「사기」에는 淳于意가 치료했던 증례집이 기재되어 있는데, 이름 · 직업 · 주소 · 병리 · 辨証 · 치료 및 예후에 대해 작성되어 있으며(오늘날의 진료카드와도 같은), 특히 소화기질환에는 대부분 瀉下剤가 이용되었다.
화타는 후한 말기의 명의로 특히 수술이 뛰어났다고 하는데, 「후한서」에는 麻沸散이라는 마취제를 이용하여 개복 수술을 했다는 언급이 보인다. 화타는 또한 호랑이 · 사슴 · 곰 · 원숭이 · 새를 본뜬 五禽戯라는 체조를 만들기도 하였다. 또한 魏나라 曹操의 지병인 두통의 치료를 담당하였다. 두통은 침술로 그쳤지만 화타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조조는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것으로 보아 화타를 투옥하고 결국은 죽여 버렸다고 한다.
皇甫謐은 『황제내경』의 「素問」「霊枢」「明堂孔穴針灸治要」의 3부에 기초하여 중국 최초의 침구학 전문서적인 『黄帝三部針灸経』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갑을병정..으로 권수가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에 후에 『鍼灸甲乙経』이라 불려졌다. 『甲乙経』은 「내경」을 기초로 하면서도 "내경"과 "傷寒雑病論"에는 보이지 않는 것, 특히 산부인과 및 소아과 질환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예를 들어 『鍼灸甲乙経』권11에는 ‘脾虚의 설사에는 三陰交을 보하고, 또 음릉천을 보하는 유침을 하여 따뜻하게 하면 치료된다’라는 치료법이나 刺鍼補瀉 또는 기가 이를 때의 감각 등에 대해 이전의 고전에서 볼 수 있는 설명보다 상세하게 기재하고 있다고 한다.
普代 무렵~唐代까지
265년 晋나라가 일시적으로 전국을 통일한 뒤, 남북조의 동란을 거쳐 隋・唐의 통일국가가 형성되고, 宋・元・明・清으로 이어진다.
3세기에 王叔和는 淳于意의 맥진법을 기초로 24맥상을 구별하고 좌우 撓骨동맥의 박동부에 示指・中指・薬指 3개의 손가락을 얹어 진단하는 脈診法 체계를 구축했다. 이것이 중의학에서 가장 오래된 진단학이라 할 수 있는 "脈経"이다. 또한 王叔和은 그때까지 강남의 의가에서 秘本이라 여겨졌던 상한론을 다시 정리 · 보정하여 후세에 전해질 수 있게 되었다.
葛洪(283~364년)의 「肘後備急方」은 전염병에 관한 의서로 천연두를 중국 최초로 기록하였다. 또한 쯔쯔가무시병에 해당하는 질병의 역학, 임상 증상 및 예후 및 예방에 대해, 또 광견병 치료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5세기 말 龚慶宣의 「劉涓子鬼遺方」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중의학 외과서로 지혈 · 진통 · 해독 등의 외상치료법을 적고 있다.
6세기 말부터 10세기 초에 걸친 수나라 · 당나라의 문화는 의학에서도 큰 성과를 올렸다.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 및 서역과의 의학 교류가 보인다. 수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의서로는 巣元方 등이 편집한 「諸病源候論」50巻이 있다. 이것은 병리를 진단하는 책으로 1720종의 병증이 열거되어 있고, 각과 질병의 원인 · 병리 · 증상을 설명하고 있다.
당대에는 의료제도가 확립되어 의사의 직급 및 직제가 정해지고 의사의 교육과 국가시험에 대한 규정이 생겼다. 이는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각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대 대표적 의서는 孫思邈의 『備急千金要方・巻三十』으로, 그 내용은 임상 각과에서 식사요법부터 위생까지 다방면에 걸쳐 다루고 있다. 또한 孫은 만년에 「상한론」을 참고로 『千金要方』을 저술했다. 한편, 848년에는 見素女가 저술한 「五臓六腑図」는 현존 최고의 해부서가 되었는데, 내장에 깃들어 있는 신들을 표현하여 도교색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물론 현대 해부서와는 크게 차이가 있다. 침구의 전과가 독립하여 침술학 의서가 다수 출판되었다. 제도상 침사의 관직명도 보인다.
또한 晋唐시대는 뜸법이 중시되기 시작하였고 이는 송대까지 이어졌다. 『南史・斉本紀』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북방에서 뜸법을 배우고, 치료하다 보니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간편하여 누구나 배울 수 있는 방법이어서, 금지하는 법령을 내놓아도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聖火」라 불렸다고 한다.
전술한 갈홍은 뜸법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肘後備急方』에 109 항목의 医方 가운데 뜸법이 94항목에 달하고 마늘뜸이나 소금뜸 등에 대해서도 정리해 주고 있다. 또한 전술한 『備急千金要方・巻三十』과 『千金翼方・巻三十』에는 뜸에 대해 더 많은 설명이 있으며, "내경"에서 "침구갑을경"에 이르기까지 침술을 중시하고 뜸을 경시하는 전통과는 반대로 뜸으로 침을 대체하는 경향이 강했던 시대로 평가된다.
(*芝雲 씀)
ㆍᆢ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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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芝雲이의 책 소개
코로나19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 중국에서 전개되었던 동의학 요법의 활약과 그 성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아래의 책을 소개합니다
https://blog.daum.net/hooclim/4934
책 소개 : 코로나19와 동의학 그리고 침뜸요법
blo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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