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학 이야기/침술 기법과 기술

화침(火針)요법의 기원과 그 발전

지운이 2021. 8. 5. 12:20

화침요법의 기원과 그 발전

(火针疗法的发展源流)

 

黄昌锦1 黄应杰2 陈楚云2

1.广州市红十字会医院中医科,广东广州 510220;

2.广州市中医医院

《中国针灸》, 2013年第5期455-458,共4页

 

 

화침요법(火针疗法)의 발전원류, 즉 화침요법의 태동과 그 발전단계를 선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역대 침구 관련 문헌으로부터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그 발전단계는 이미 한대에 널리 사용되었으며, 성숙단계는 금원대로 침구, 조작 및 적응증, 금기증 등을 명확히하였다. 그와 함께 화침요법의 현대적 발전상을 설명한다.

 

화침요법은 선진시대에 시작하여 당송시대를 거치면서 체계화되었고, 금원에서 명청시대를 거치며 더욱 발전하였으며, 근현대에 와서는 화침요법의 발달이 새로운 전성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필자는 화침요법의 발전 과정을 전면적으로 고찰하여 화침의 기원, 침구 및 조작 방법의 발전, 화침요법의 적응증 등을 연구하여 화침의 학습과 임상 응용에 일정한 계발 작용을 일으키고자 한다

 

1. 화침요법의 맹아 단계

 

화침의 응용역사는 선진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황제내경에는 구체적인 침구, 적응증이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에는 大针、燔针이라 불렀다. 《灵枢·九针十二原》에는 "九曰大针,长四寸……大针者,尖如梃,其锋微员……"(대침은 그 길이가 4촌이고 .. 대침은 그 끝이 몽둥이 모양으로 살짝 둥글다.. )이라 하여, 화침 도구의 특징을 처음으로 묘사하고 있다. 화침요법은 《황제내경》에서 “焠刺”, “燔针”로 지칭되었는데, 《灵枢·官针》에서 “凡刺有九,以应九变……九曰焠刺,焠刺者,刺燔针则取痹也”(무릇 자법은 9가지가 있어 9가지 변화에 응한다 .. 아홉 번째는 焠刺니, 焠刺는 燔针으로 자침하여 痺증에 취한다)라 하여, 화침요법은 침을 붉게 달군 후 몸 표면에 찌르는 방법이다.

 

화침은 일정하게 지역성을 보인다. 《素问·异法方宜论》에는 "북방자는 천지가 닫힌 지역이며 고지대에 거주하고 바람이 차가우며 야외 생활을 주로하고 우유를 먹어, 한기를 장하여 가득하니, 그 치료는 뜸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뜸(灸焫)은 북방에서 온 것이다."라고 하여 화침은 북방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겼다. 여기서 “焫”은 원래 “烧”를 의미하는 것으로 火针、烧针、温针 또는 폄석을 가열하여 체내 국부를 자극하는 요법을 말한다. 王冰注《素问》에, “火艾烧灼谓之灸焫,故灸焫北人正行其法”(火艾烧灼은 灸焫을 이르는 것으로,灸焫은 북방인이 주로 하는 방법이다)이라 하였으니, 화침은 일찍이 서민들의 치료법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灵枢·寿夭刚柔》篇에서는, “刺寒痹内热奈何?……刺布衣者,以火焠之”(寒痹에 内热을 하려면 어떻게 자침하는가? .. 포의자라면 화침을 쓴다)이라 하였다.

 

《内经》에 화침요법의 작용과 적응증을 기재하고 있는데, 《灵枢·九针论》에는 “……九曰大针……主取大气不出关节者也”(大气가 관절을 나가지 못하는 것에 주로 취한다). 《灵枢·九针十二原》에는 “以泻机关之水也”(관절의 물을 내린다)라 했다. 《灵枢·官针》曰:“病水肿不能通关节者,取以大针”(수종의 병으로 관절을 통하지 못하는 경우는 大针을 취한다)고 했다. 즉 화침은 관절을 통하게 하는 역할을 해 수종으로 인해 大气가 관절을 통과하지 못하는 비증(痹症)을 치료하는데 사용된다는 것이다. 《灵枢·四时气》“转筋于阳治其阳,转筋于阴治其阴,皆卒刺之”(양에 转筋이면 양을 치료하고, 음에 转筋이면 음에 치료하며, 모두 卒刺한다)고 한다.

 

《素问·调经论》에는 “병이 근에 있으면 근을 조리하고, 병이 골에 있으면 골을 조리하며, 燔针으로 劫刺한다”고 하여, 화침으로 경근골맥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灵枢·经筋》에는, “焠刺者,刺寒急也,热则筋纵不收,无用燔针”(焠刺는 寒急에 쓰고, 열로 근이 이완되어 수축되지 않은 경우는 燔针을 써서는 안된다)라 하여 화침의 적응증이 寒痹이고, 热痹는 금기증으로 제시하고 있다. 《灵枢·厥病》에는 “장에 虫瘕 및 蛟蛕가 있으면 大针을 찔러 오래 유침하여 충이 움직이지 못하면 침을 뺀다”고 하여, 화침으로 복 중의 虫证을 치료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内经》시대에는 화침의 침 도구, 자침법 및 적응증, 금기증 등 모두 초보적 수준으로 언급되었으나. 구침의 한가지로만 묘사되었을 뿐, 화침에 대한 전반적 인식은 아직 전면적이지 못하고 맹아적 단계였다.

 

2 화침요법의 발전단계

 

화침요법은 《내경》이후 계속 발전하여 한대에 이르러 화침의 사용이 점차 확대되었다. 장중경의 상한론에서는 “烧针”(소침)이라 칭하는데, 화침의 치료 범위를 상한표증(傷寒表證)으로 넓혔을 뿐만 아니라 금기증을 보충하고, 화침치료 후의 처리, 화침 오치 후의 처리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영기가 미미한 자는 烧针을 쓰면 혈이 정체되어 흐르지 못하고 오히려 발열과 번조가 된다"라고 지적하고, 阳明里热证、太阳中风证、太阳伤寒证,少阴病 모두 화침을 금하고 있다. 《伤寒论》은 또 화침 오용에 따른 변증에 대한 보완적 조치를 제시하고 있는데, "화가 거꾸로 내려가 소침으로 인해 번조한 자는 桂枝甘草龙骨牡蛎汤을 주로 쓴다"는 등의 지적을 볼 수 있다. 이 밖에 화침 침공의 감염과 그 처리에 대해, "烧针으로 땀을 흘리게 하고, 침 처를 차게 하여 핵이 일어나고 붉어진 자는 반드시 奔豚을 발하게 하고, 기가 소복에서 心으로 상충하는 자는 그 핵 위에 뜸을 한 장씩 뜨고 桂枝加桂汤에 桂 2냥을 더한다"고 지적했다.

 

진당시대에는, 화침의 사용은 《内经》의 한증 치료에 한정된 이론을 넘어섰다. 晋·陈延之《小品方》[1]에서 처음으로 '화침'이라는 말이 언급되었다. 《소품방》에서, “附骨疽,若失时不消成脓者,用火针 ……” “有石痈者 …… 脓浅易为火针……”(附骨疽에 때를 놓쳐 농이 없어지지 않으면 화침을 쓴다... 石痈이 있는 자는 ... 농이 얕으면 화침을 쓰기 쉽다)이라 하여, 외과 부골저, 石痈(癰), 누는 모두 화침의 적응증이라고 제시하였다. 晋·皇甫谧은 《针灸甲乙经》에서 화침의 적응증을 한증과 비증이라고 강조하면서 “焠刺”를 자법의 하나로 인정하면서 화침치료는 체질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였다. 즉 '침을 쓰는 자는 그 나이, 기의 성쇠, 허실을 알지 못하면 성과를 거둘 수 없다'고 하였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화침의 발달은 당대 이전에는 모두 내경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특별히 응용에서 내경의 범위를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당송시대에는 화침치료 적응증이 痹症, 근골격계 질환에서 내과, 외과, 안과, 이목구비, 급증 등의 치료로 확대되었으며, 화침의 선혈, 조작, 금기 등의 문제가 언급되었으며 화침치료에 대한 의안도 기록되어 있다. 唐·孙思邈《千金要方》[2]은 화침을 疔肿、痈疽、瘰疬、无辜疳,内科黄疸、癫狂、风眩,口腔科 牙龈出血 등에 사용하는데, 예를 들면 "痈按의 大坚者는 농이 없고... 铍针을 써서 농이 깊어져 보이지 않고 살이 두꺼운 자는 화침을 사용한다" "项旁腋下에 먼저 瘰疬가 생긴 자 ... 漏结核未破者는 그 가운데다 화침을 쓰면 낫지 않는 자 없고" "숙취를 치료함에는 치아에서 피를 내는 처방이 있다. 烧钉을 붉게 하여 혈공의 흐름을 중지시킨다"

 

"风眩의 병에… 화침을 쓰면 병을 앓는 자가 없다." 孙思邈은 《千金要方·用针略例》에서 "화침은 봉침을 써서 기름으로 태워 맹열하게 하는데 열이 없으면 사람에 손실이 된다"라고 하여, 화침의 조작 과정에서는 침을 뜨겁게 해야 하며, 뜨겁지 않으면 사람에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唐·王焘《外台秘要》[3]에는, "화침으로 결린 중앙에 자침하여, 두 번 찌르고 침을 제거한 후에 약간의 고약을 바른다. 없으면 잡유도 괜찮다. 2~3일 기다렸다가 또 전처럼 침을 쓰고 1~2일 지나면 농이 나오게 된다. 나오지 않으면 다시 이전처럼 침을 쓰면 농이 다 곪아터져 경결이 저절로 흩어진다." 그리고 "결"에 대한 자침의 횟수, 자침 후의 처리 등을 제시하여 현대 화침의 조작과 수술 후 케어를 지도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화침요법이 크게 성행했던 송대에는, 외과, 이비인후과, 비증의 응용이 상당히 무르익었고, 화침도 내장질환 치료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宋代의 의가 王执中은 《针灸资生经》[4]에서, 心脾痛、脚卒肿、腰痛、喘、腹寒热气 등의 증상에 대한 화침요법을 제시하고 있다. 심비통 치료에 "화침을 미세하게 쓰면 심복에 구애받지 않고 잠간만에 통증이 가라앉아서 일어나려 하니 신령스럽다" ; 심위통에 “화침을 써서 경혈과 통처에 미세하게 자침하면 금방 그친다” ; 효천의 치료에 “천과 효가 있는 경우에는 ... 화침으로 미세하게 자하면 바로 치유된다” ; 요통을 치료함에 “오래되어 요통이 심한 부인은 뜸은 삼가하고 침을 불 속에 두어 뜨겁게 하였다가 통처에 차침하면 처음에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곧 통증이 그친다” “동생이 요통이 있어 출입이 어려웠는데, 화침으로 아주 미세하게 신유를 자침하니 곧 걸을 수 있었다”. 이빈인후과 질환의 치료로는 《圣济总录·钩割针镰》[5] 권113에 이르기를, "무릇 눈에 顽翳가 생긴 자는 火烧铜针으로 가볍게 해당 점에 쓰면... 아프지 않으니 별법(別法)을 쓸 일이 없다"라고 했다.

 

《太平圣惠方》[6] 권61에는, 옹저(痈疽)에 화침을 사용하거나 화침을 사용하지 않는 증상을 분석한 결과 "무릇 옹저의 경우에는 머리에 작은 종기처에 농이 많이 난다. 잘 치료되지 않으면 针烙이 마땅하다"라고 하였고, 처음으로 소아의 无辜疳에 대한 화침 치료법을 제시했다. "针을 불처럼 붉게 달궈 종기 크기를 보아 종이 한 장을 말아 묶어 두면 곧 无辜가 훼손되고 침으로 烙(다림질)해 주어 콩 두알 깊이만큼 가하고 곧 침향고를 붙인다."

 

당송간에는 火针烙黄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 전문의가 등장하고, 火针烙黄에 대한 전문서도 나왔다. 《点烙三十六黄经》이 그것인데, 당시대에 火针烙黄이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다.

 

 

3 화침요법의 성숙단계와 쇠퇴

 

금원명 시대에 화침요법의 활용은 절정에 달했다. 치료의 병종이 이전보다 증가하였고, 새로운 병종으로 외과의 痔漏、梅毒 및 小儿肛闭、膝眼风 등과 내과의 气虚证、卒心痛、瘫痪;口腔科의 舌卷、舌肿 등 ; 안과의 睑中赤痒、外障、目生翳 ; 이비인후과 梅核气、腮痈 등이 있다. 이 시기에 화침요법에 대한 기록은 매우 많았는데, 화침 침구, 조작방법, 적응증, 금기증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으며, 특히 명대의 경우 화침에 대한 묘사가 가장 전면적이었다. 嘉元 二年(1304年), 일본 의자가 베껴 쓴 《顿医抄》 19권에는 铜火针으로 鼻痔를 치료한 내용이 있는데, 당시의 화침법이 중국에서 해외로 전파되었음을 보여준다.

 

3.1 화침요법의 침도구와 조작방법

명대의 저작인 高武의《针灸聚英》[7]은, 화침요법에 대해 비교적 포괄적인 논술을 하고 있다. 화침 침구의 재질과 가열, 침자법과 침자 심도, 화침요법의 적응증, 그리고 금기증 등 다방면에 걸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세상의 화침으로 치료하는 자는 모두 马衔铁을 썼는데, 기쁘게 생각했다. 이 침은 화기를 오래 받아야 해서 철이 익으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으므로 화로에 고철근으로 침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다. 처음 제조한 화침은 반드시 하루 낮밤, 손을 대지 않고 마유 등불로 자주 태워야 하는데, 하루 낮밤이면 사용할 수 있다." 焠针은 마유를 가득 채운 등초를 엄지손가락 만큼 크게 하여, 그 등불로 침을 태우고 자주 마유로 그 침을 붉어지도록 태워서 써야만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붉게 되지 않은 것은 사람에게 오히려 손실이 되어 병을 제거할 수 없다." "먹으로 기록하고 침을 쓸 때 차이가 없도록 하되, 혈점과 차이가 생기면 효과를 발휘할 수 없으니 .. 먼저 왼손으로 그 혈을 정한 후 자침한다"라며, "심자는 금하며, 심자하면 오히려 경락을 상하게 한다. 너무 얕으면 병을 치료할 수 없으니 중을 취하도록 한다. 화침의 조작에는 열이 필요하고, 그 깊이는 적당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침을 놓는 방법에 대해서는, '무릇 화침을 시술함에 있어 침을 한번 자침한 후 병세가 빨리 제거되면 오래 유침해서는 안 되며, 왼손으로 침 구멍을 눌러주면 곧 통증이 그치지만, 누르지 않으면 통증이 심하다'고 지적한다. 李学川은 《针灸逢源》[8]에서 화침의 자법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면서 "화침을 행할 때는 반드시 먼저 병자를 위로하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고", "침종을 누를 수 없는 경우에는 손가락으로 양옆을 눌러 고름이 나오게 한다"고 강조했다. 明·朱《普济方》[9]은, 복부 종기 및 장·비뇨기계 질환을 치료하는 화침으로 기해, 오추 등의 경혈과 침자 깊이를 설명해 주고 있다 : "한번에 3혈에 燔针 5푼 자침해 주고 뜸 백장이면 그친다. 그 다음에 족양명경 족삼리 2혈, 족태음경 삼음교 2혈에 호침으로 자한다'라고 하여, 화침의 구체적인 자법, 자침의 각도, 깊이 등을 제시했다.

 

汪机의 《外科理例》[10]는, 火烙法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데, 그 침은 화침과 비슷하나 그 모양이 다르다. "그 침은 근처럼 둥글고 纬廷처럼 굵고, 머리는 평평하며, 길이는 예닐곱 치이며, 蘸香油를 찍어 숯불에 붉게 태워 부스럼 가까이에 烙한다"라고 한다. 이 방법은 화침 침첨을 둥근 모양의 침면으로 바꿔 화기의 범위를 넓혀 임상치료에 편리함을 제공해 준다. 또한 화침은 가늘고 작기 때문에 침이 화원을 벗어나면 쉽게 차가워져 침 끝을 여러 번 붉게 데우는 번거로움을 피하여 외과 질환 특히 皮肤赘生物、外痔 치료에 편리함을 제공하여 현대 화침 중 平头火针、多头火针의 모태가 되었다.

 

3.2 화침요법의 적응증

이 시기 저작은 화침치료의 적응증으로 외과 질환과 비증을 명기하고, 화침치료의 작동방법을 묘사하고 痈疽、痹症에 대한 화침치료의 메커니즘을 기술하고 있다. 明·陈实功《外科正宗》[11]에는, “瘰疬、痰核을 치료함에 .. 침을 붉게 달궈, 손가락으로 핵을 잡고, 침을 4-5푼 찌른다. 핵이 큰 경우에는 침을 수회 자침하는 것에 묘리가 있으니, 핵 속이나 담 혹은 피가 바로 흘러나오면 고약을 덮어준다. 明·张景岳《景岳全书》에는, "痈疽의 환부에는 기혈이 막히므로 경결이 남아 통행이 되지 못한다. 큰 경결로 크게 막힌 경우에는 쉽게 흩기가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흩으려고 하면 화력을 빌리지 않으면 빨리 해결할 수 없다." 明·高武《针灸聚英》: "痈毒을 깨서 빼내야 하는데, 농이 살 속에 있고 표피로 드러나지 않은 경우에는 가볍게 그 부위를 넓게 펴 머리 꼬리 가운데를 눌러 점을 찍고 3곳에 자침하여 찢으면 농이 나오게 되고, 종창 위에 일침하고 누르지 않고 손으로 농이 나오도록 한다. 혹 종창이 커 농이 많은 경우에는 자침시 몸을 측면으로 피해 농이 몸으로 튀는 것을 피한다.” 화침의 질병 치료 메카니즘에 대해, 高武는 '화침 역시 기를 돌리는데, 화침은 다만 화력만 빌려와 보허사실의 해가 없다' '화침으로 그 침공을 크게 열고 그 문을 막지 않으면 풍사가 그를 통해 나온다'고 생각했다. 明·陈实功《外科正宗》: "화침법은 유래는 다르지만 약 복용과 같이 기이하게 나으니, 일점에 자침하여 피낭을 깨뜨려 종창을 없애 통증을 잘 그치게 하며, 鱼口、便毒、横痃 등의 증, 행약으로는 내소하지 못하는 경우 등을 치료한다". 清·吴谦《医宗金鉴·外科心法要诀》[12]: "슬안풍 학슬풍이 鬼眼에 생겨 통증이 송곳같이 찔러대고 下虚风湿寒侵袭,屈伸不遂인 경우... 화침을 겸용하여 슬안에 충분히 자침하면 한결 가벼워진다."

 

이 시기 화침은 내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등 각종 질병의 치료에 널리 사용되었는데, 예를 들면 《针灸聚英》은 "瘫痪(마비)가 되었을 때 특히 화침의 효능이 뛰어나고, 风、湿、寒의 세 가지는 경락으로 나오지 않아 화침을 사용하는 것이 좋으며, 그 밖에 사기가 나타는 경우는 침술에 화력을 더하면 그 효능이 气针 보다 효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明·楼英《医学纲目》[13] : "舌卷의 침구는 수소양의 경락 및 근만을 취하고 ... 또 이르길 : 수양명의 근, 그 병의 지통, 转筋舌卷. 治在燔针劫刺,以知为数,以痛为输是也" "남자의 脏气虚惫,真气不足로 일체의 气疾이 오래되어 치료되지 않는 경우는,음식 생각도 없고 완전히 무기력하다. 燔针으로 任脉의 气海穴에 5푼 자침한다 …" "灸冷心痛이면 임맥 거궐혈에 번침으로 사자하는데, 오장기가 심통으로 이어진 경우라면 자침하면 낫지 않을 수 없다." 明·薛己《保婴撮要》[14] : "初生谷道无孔인 경우에는 폐열이 항문을 닫는다 ... ; 혹은 화침을 써서 자침하되 깊지 않게 하고, 蜜导法으로 씌우고 긴급하면 기름종이로 씌워주기만 하면 된다." 明·薛己《保婴撮要》[15]는 소아의 腋痈(겨드랑이 종기)을 치료하는데, : "한 아이가 앓는데 농이 안에 생겨 오래되어 나오지도 않고 색이 변하지 않고 또 아프지도 않았다. 나머지는 谓气血의 허가 심하여, 먼저 크게 보양하고 화침을 쓴다." 李时珍은 《本草纲目》[16]에서, 평두화침(平頭火针)으로 目翳를 치료하는 것에 대해 비교적 포괄적으로 논술하길, "그 법은 평두침(平頭针)으로 翳의 대소에 붉게 태워 아주 가볍게 翳에다 烙하고 烙한 翳가 없어지면 곧 예 제거약을 발라준다.

 

3.3 화침요법의 금기증

高武의 《针灸聚英》도 화침의 금기증을 묘사하길, "인신의 모든 곳은 침이 가능하지만 안면은 기피한다. 무릇 여름에는 大经에 혈이 성하여 모두 양 다리로 내려가니, 함부로 양 다리 내에 화침은 기피하며, 발에 농종콩은 물러나기 어렵다. 여름에 많이 발하는 脚气의 경우 血气湿气 모두 양 다리에 모이는데, 혹 화침을 잘못하면 오히려 종통이 더해져 걸을 수 없다." "무릇 만취한 뒤에는 침을 쓸 수 없고 깊이에 상관없이 유해하고 이롭지 못하다." 明·王肯堂《证治准绳》[17]은, 화침은 "근맥골절처 가까이에 함부로 침을 놓으면 안 된다"고 제시한다. 金元明 시대에는 화침 이론의 기초가 잘 마련되어 자침법, 적응증, 금기증 뿐만 아니라 화침의 침구를 규범화하였는데, 화침은 내·외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등 각종 전문 질환의 치료에 사용되었고, 많은 의안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가 곧 화침요법의 성숙단계였다.

 

3.4 화침요법의 쇠퇴

청나라 후기에 이르러 서기 1822년에 태의원의 침구과가 폐지되고, 당시 지배계급의 탄압으로 침구가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으며, 해방 전에 화침은 멸종되었다고 한다.

 

4 현대 화침요법의 발전

 

신중국 출범 이후 당과 정부의 높은 관심 속에 침구학이 전승되고 향상되면서 火针의 발전 역사가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현재 화침 침구의 연구, 이론 연구, 작용 메커니즘과 임상 응용의 발전은 새로운 전성기로 접어들었다. 화침의 침구는 师氏[18]、贺氏[19]、刘氏[20] 등이 자신들의 경험에 따라 각각 화침 침구를 개량하였는데, 유씨의 호침을 이용한 화침 발명은 화침의 유침 치료의 역사를 더욱 확장하였다. 이론 연구에 있어서는, 영향력이 비교적 큰 화침 전문서가 나왔다. 예를 들면 《火针》[21]、《中华火针疗法》[22]、《火针疗法图解———贺氏针灸三通法之一》[23]、《火针疗法》[24]、《火针临床应用》[25] 등 화침요법의 이론을 더욱 체계화하였다. 화침의 작용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현대 연구에서 화침이 袪寒除湿、消癥散结、益肾壮阳、宣肺定喘、除麻止痒 및 清热解毒 등의 작용이 있다고 하며, 寒证、痛证의 치료에 적용될 뿐 아니라, 화침이 온열의 힘을 빌려 화독열사를 밖으로 끌어내어 열증 치료에도 적용된다고 보고 있다. 林氏[26] 등은 대상포진을 화침으로 치료하며, 화침이 급성기 대상포진의 피부손상에 대한 영향을 관찰하였는데, 화침이 포진에 딱지를 빠르게 하여 딱지를 벗겨내는 작용을 한다고 한다. 현대 실험연구에 따르면, 화침은 체내 염증인자, 예를 들어 IL-1, 종양괴사인자-a, IL-6[27], IL-1베타[28]의 발생 자극, 혈중 6-케톤-전립사이클로겐인자 1함량 향상[29], 손상조직의 미량원소 함량 향상[30], 중추에서 제2의 兴奋灶(Excitation on Nervous Tinnitus)를 형성하는[31] 작용을 갖는다고 한다. 문헌에 따르면, 화침요법이 뛰어난 효과를 보이는 질환은 80여종에 달하며, 피부과, 외과, 부인과, 이비인후과, 내과 등의 치료에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화침요법이 확산되면서 활용 범위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参考文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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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收稿日期:2012-08-08,成平发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