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다라나이케 기념국제회의장(BMICH)에서 제 6 회 세계통합의료회의
(6th World Congress of Integrated Medicines at BMICH)
The Island(스리랑카)/ 2018. 11. 20
메디시나 오르다나디바와 오픈국제보완의학대학의 제56회 세계통합의학대회가 2018년 11월 23일~25일 3일간 스리랑카 콜롬보의 반다라나이케 기념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메디시나 오르다나디바는 포르투갈어로 "대체의학"을 의미하는데, 1962년에 설립된 국제기구이다. 초대 회장은 스리랑카의 안톤 쟈야스리야 선생이다. 스리랑카는 포르투갈령 실론, 네덜란드령 실론, 영국령 실론 등으로 지배를 받아오다, 스리랑카로 독립한 나라로 포르투갈 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Medicina Alternativa
세계적인 조직인 메디시나 오르다나디바(Medicina Alternativa)는 1962년에 WHO와 유니세프가 알마타의 카자흐스탄대학에서 실시한 국제회의에서 시작되었다.
메디시나 오르다나디바를 창설한 스리랑카의 안톤 쟈야스리야선생은 18세에 콜롬보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954년에 의사가 되고, 1962년에는 카자흐스탄의 알마타에서 열린 WHO회의에 참가하였다 . 여기에서 안톤 쟈야스리야는 서양의학의 약물요법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은 이용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고가의 약을 사용한 의료로 간단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전통 · 대체의학의 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열정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는 일, 또 병자를 효과적으로 저렴하게 치료하는 일을 탐구하는 쪽으로 그를 이끌었다.
1974년 스리랑카 정부와 WHO는 안톤 쟈야스리야 교수에게 중국에서 침술을 배울 수 있도록 장학금을 주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계속해서 찾아 왔던 효과적이고 저렴한 치유시스템이었다.
1971년 7월 26일에 제임스 레스턴 기자가 침술 마취에 대해 쓴 ‘베이징에서 내 수술에 대해 지금 말한다’라는 기사가 「뉴욕타임스」에 실리고, 1972년 닉슨이 방중한 다음부터 세계적인 침술 마취붐이 시작된다.
그런 가운데 크게 화제가 된 것이, 문화대혁명기에 6개월 정도의 훈련으로 농민을 침구사로 만든 '맨발의 의사'(赤脚医者)였다. 맨발의 의사는 1960년대 중반, 농촌지역의 부족한 의료를 메꾸기 위한 방안으로 도입된 것인데(초등교육 이상의 자를 단기 교육하여 현장에 배치), 1070년대 초반에는 150만명에 달할 정도로 증가하였고, 당시 농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맨발의 의사의 이러한 사상은 전세계에 영향을 미쳐, “가난한 사람들도 대체의학과 전통의학을 통해 의료에 접근할 수 있다”는 알마타선언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회의는 건강(단순히 질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건강한 상태)은 기본적 인권이라고 강하게 재확인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건강 불평등은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개인이든 집단이든 건강 관리를 도모하는 계획과 실행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기본건강관리(primary Health-care)는 지역 수준의 건강복지사, 의사, 간호사, 조산사, 조수 그리고 커뮤니티 활동가 등이 필요에 따라 전통의료요법사와 함께 지속적, 사회적, 기술적으로 지역사회의 요구에 상응한 건강관리팀으로 일한다.
2000년까지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수준의 건강을, 현재 무기와 군사분쟁에 엄청나게 낭비하고 있는 자원을 이용하여 더 나은 방법을 찾아 이룩하자는 것이다.
1972년 침술 마취붐이 있은 다음, 1972년에 중국에 유학한 안톤 쟈야스리야는 침술 마취기술을 스리랑카에서 처음으로 활용하였다.
나이지리아에서 침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레드릭 화세훈 선생도 1976년 중국에 유학하여 1977년부터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침술 센터를 열었다.
1974년에 미국의 흑인 해방 단체, 블랙 팬서는 중국의학을 배웠고, 사우스 브롱스의 빈민가에서 링컨병원의 의사 마이클 스미스는 가난한 흑인들에게 중국식 귀침술을 사용해 치료하기도 하였다.
1978년에 카자흐스탄의 알마타에서 WHO가 전통의료를 프라이머리 케어의 일부로 통합하는 내용의 알마타선언을 내놓았다.
1970년대 세계 각지에서 침구사들이 중국 맨발의 의사의 이상에 감동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의료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침술을 배우게 되었다. 높은 이상에 불타는 우수한 인재가 침구에 모여 들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의 중의학의 융성은 이러한 우수한 인재에 의해 지탱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1989년의 천안문사건, 1991년의 냉전, 1997년 홍콩반환 등으로 이어지며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였다. 2005년 캐나다, 2009년에는 뉴질랜드, 2012년에는 호주에서 중의학 침술이 합법화되었다. 이것은 홍콩의 중국계 주민의 이주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2002년 9.11 세계무역센터사건으로 세상이 바뀐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고, 2008년 리먼 쇼크로 세계 동시불황이 나타났다. 2009년에는 브라질 · 러시아 · 인도 · 중국의 4국이 BRIC회의를 열고 2014년 남아공을 넣은 BRICs은행이 발족하였다.
2014년 에이펙/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에서 중국정부가 일대일로를 제창하였다. 2016년에는 중국 주도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이 출범했다. 2017년에는 중국 중의약법이 성립하고 일대일로의 사상에서 세계 각지역에 중의학센터가 설립되었다. 2019년에는 WHO의 국제질병분류 'ICD-11'에 중의학의 변증론치료가 들어갈 예정이다.
과거 중국은 가난했지만, 맨발의 의사의 사상을 존경하는 열정을 가진 우수한 인재를 전세계로부터 모을 수 있었다. 2018년 현재 중국은 세계 가가지역에 中医센터를 만들 정도로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변증론치의 내용은 얕아 교육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중의학 침술의 보급 조건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안톤 쟈야스리야 선생은 이미 죽었고, 귀침술을 확산시켰던 미국의 마이클 스미스 박사는 2017년에 사망하였으며, 나이지리아 프레데릭 화세훙 선생도 이미 80세가 되었다. 중국에서도 중의학을 만들었던 세대는 이미 대부분이 사망하였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이야말로 시대의 전환점이며, 다음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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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는 아래..
-http://kobeemf.com/2019/05/03/post-15143/
(스리랑카의 침마스터, 안톤 쟈야스리야와 알마아타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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