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東醫寶鑑) 1
KOL000000004 古朝68-3
貴737 寶物 第1085-1號
東醫寶鑑. 卷1-25 / 許浚(朝鮮) 奉敎撰 木活字本(內醫院字)
[發行地不明] : 內醫院, 光海君 5(1613)
25冊 : 四周雙邊 半郭 27.6 x 17.9 cm, 有界, 10行21字 註雙行, 內向3葉花紋魚尾; 36.6 x 22.0 cm
刊記 : 萬曆四十一年(1613) 十一月日內醫院奉敎刊行 序 : 萬曆三十九年辛亥(1611)...李廷龜
內賜記 : 萬曆四十二年(1614) 二月日內賜東醫寶...一件 五臺山上...左承 旨李[手決]
선조(宣祖) 29년(1596) 허준(許浚)이 의서편찬의 명을 받들어 유의(儒醫) 정작(鄭碏), 태의(太醫) 양예수(楊예壽), 김응탁(金應 鐸), 이명원(李命源), 정예남(鄭禮男) 등과 편집을 진행하다가 정유재란(丁酉再亂)을 만나 모든 의원이 사방으로 흩어져 일이 중단되었다. 그 후 선조는 허준에게 단독으로 편찬하게 하고 내장방서(內藏方書) 500권을 대출하여 참고하도록 하였다. 허준이 모두 25권의 집필을 마치자 광해군(光海君)은 곧 내의원(內醫院)에 간행처를 마련하여 신속히 인출(印出)하여 배포토록 하였다. 그 후 3도(三道)에 나누어 보내어 간행케 하였으나 이 책은 권질(卷帙)이 매우 많고 또한 공역(功役)이 많이 들고 소주(小註)의 자수(字數)가 세밀(細密)하여 간행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등의 이유로 지방에 보내었던 것을 취소하고 그 동안 3도에서 준비한 재료를 내의원에서 다시 거둬들여 활자로 인출하였다.
허준이 서명을 <동의보감(東醫寶鑑)>이라고 한 이유가 본서의 집례(集例)에 잘 나타내고 있다.
“왕절제(王節齊)가 말하기를, ‘동원(東垣) 이고(李杲)는 북방의 의관인데 나겸보(羅謙甫)가 그 법을 전함으로써 강절지방 (江浙地方)에 알려졌고, 단계(丹溪) 주진형(朱震亨)은 남의(南醫)인데 유종후(劉宗厚)가 그것을 배움으로써 협서지방(陝西地方)에서 이름났다’고 하였으니 의술에는 남북으로 부르는 이름이 있다. 우리나라는 구석진 동방에 있고, 의약의 연구가 줄기차게 계속되고 있은 즉, 우리나라의 의술은 동의(東醫)라고 해야 옳을 것이며, 또 감(鑑)이라 함은 만물을 환히 비쳐서 그 형태를 놓치지 않는다는 뜻이거늘 원조(元朝) 나겸보 저서에 <위생보감(衛生寶鑑)>이 있고, 명조(明朝) 공신(龔信) 저서에 <고금의감(古今醫鑑)>이 있는데, 모두 감(鑑)으로 이름한 뜻이 여기에 있다. 이제 이 책을 펼쳐서 보면 길흉․경중의 환함이 명경과 같으므로 드디어 <동의보감>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은 옛사람들의 유지를 본받은 것이라고도 하겠다''고 하였다. <동의보감>이란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의학을 발전시켜 보겠다는 저자의 깊은 의미가 담겨있음을 볼 수 있다.
본 의서가 편찬된지 3년 후 광해군(光海君) 5년(1613)에 내의원에서 간행되었으며, 그 후에도 계속해서 국내외적으로 간행의 빛을 보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효종(孝宗) 10년(1659) 혹은 숙종(肅宗) 45년(1719)에 영남에서 활자본으로 간행되었고, 영조(英祖) 30년(1754)에는 전주(全州)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되었으며, 청나라에서는 경종(景宗) 1년(1724) 4월 25일에 청의 사신이 <동의보감>을 청구한 일이 있으며, 영조 14년(1738) 2월 21일에는 청의 칙사(勅使)가 가져간 뒤 영조 42년(1766)에 간행하였으며, 고종(高宗) 27년(1890)에 복간(覆刊)하였다. 중국에서 발간한 이 책은 민화상(閔華祥)의 서문에서 일본에서 입수한 것으로 밝히고 있으며, 또한 권두에 향보(享保) 8년(1723) 등원신독(藤原信篤)의 서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에서 입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경우는 <접대사목록초(接待事目錄抄)>에 의하면 현종(顯宗) 3년(1662) 3월에 본 의서와 <의림촬요(醫林撮要)>를 일본에서 가져갔다는 기록이 있다. 경종 4년(1724)에 일본의 경도서림(京都書林)에서 초간되고, 정조(正祖) 23년(1799)에 대판서림 (大坂書林)에서 재간(再刊)될 정도로 동양에 널리 알려진 귀중한 한의학 관계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목록(目錄) 상하 2권, 「내경편(內景篇)」 4권 26조, 「외형편(外形篇)」 4권 26조, 「잡병편(雜病 篇)」 11권 38조, 「탕액편(湯液篇)」 3권 17조, 「침구편(鍼灸篇)」 1권 1조로 총 25권 25책 108조목으로 이루어졌다. 이정귀(李廷龜)의 서문이 있으며, 서문의 연도는 ‘光海君 3年(萬曆 39) 孟夏’로 되어 있다. 권말(卷末)에는‘ 萬曆 41年 11月 內醫院奉敎刊行 監校官通訓大夫行內醫院直長臣 李希憲 監校官通訓大夫行內 醫院副奉事臣 尹知微’라는 간기(刊記)와 간행에 참여한 자의 관함(官銜)과 성명이 기재되어 있으며, 「내경편」의 권두(卷頭)에 저자 자신의 집례(集例)가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奎章閣) 소장본(所藏本)은 내의원 자(內醫院字)로 36.7 x 22 cm, 광곽이 사주쌍변 26.6 x 16.5 cm, 유계, 10행21자, 주쌍행, 어미는 상하 화문어미이고 서문과 간기(刊記)가 있으며, 내사기(內賜記) “萬曆42年 2月 太白山上”과 인기(印記) “宣賜之記”가 있지만 권2, 3, 5, 7, 8, 10, 13, 16, 18(9冊)이 없다.
본서는 내경, 외형, 잡병, 탕액, 침구의 5대강(大綱)으로 나누어졌고, 각 강(綱)의 류(類)에 따라 항(項)을 열기(列記)하였으며, 각 항의 류를 다시 목(目)으로 나누고, 각 항의 아래에는 그 항에 해당하는 병의 이론과 처방을 기록하고 그 출전(出典)도 밝혀서 각 병의 증상에 관한 처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고, 많은 의서들을 참고하고자 하는 의원들에게 열람의 편리를 가질 수 있게 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東醫寶鑑>總目
序, 目錄(上下 2卷)
內景篇
卷一 身形, 精, 氣, 神
卷二 血, 夢, 聲音, 言語, 津液, 痰飮
卷三 五臟六腑, 肝臟, 心臟, 脾臟, 肺臟, 腎臟, 膽腑, 胃腑, 小腸腑, 大腸腑, 膀胱腑, 三焦腑, 胞, 蟲 卷四 小便, 大便
外形篇
卷一 頭, 面, 眼
卷二 耳, 鼻, 口舌, 牙齒, 咽喉, 頸項, 背
卷三 胸, 乳, 腹, 臍, 腰, 脇, 皮, 肉, 脉, 筋, 骨
卷四 手, 足, 毛髮, 前陰, 後陰
雜病篇
卷一 天地運氣, 審病, 辨證, 診脈, 用藥, 吐, 汗, 下
卷二 風, 寒上
卷三 寒下, 暑, 濕, 燥, 火
卷四 內傷, 虛勞
卷五 霍亂, 嘔吐, 咳嗽
卷六 積聚, 浮腫, 脹滿, 消渴, 黃疸
卷七 㾬瘧, 瘟疫, 邪崇, 癰疽上
卷八 癰疽下, 諸瘡
卷九 諸傷, 解毒, 救急, 怪疾, 雜方
卷十 婦人 卷十一 小兒
湯液篇
卷一 湯液序例, 水部, 土部, 穀部, 人部, 禽部, 獸部
卷二 魚部, 蟲部, 果部, 菜部, 草部上
卷三 草部下, 木部, 玉部, 石部, 金部
鍼灸篇 鍼灸
본서의 내용 중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에서 제시한 병증(病證)의 총수가 1,136종이며, 이에 대한 처방(處方)이 4,208종이고, 단방(單方)이 1,996종에 달한다. 「탕액편」에서는 권두의 서례(序例)에서 채약법(採藥法), 건약법(乾藥法), 삼품(三品)의 약성(藥性), 수제법(修製法), 제약법(製藥法), 탕산환(湯散 丸)의 방법, 7방(七方), 12제(十二劑), 근량승두(斤兩升斗), 자약법(煮藥法), 복약법(服藥法), 오미약성(五味藥性), 기미(氣味)의 승강(昇降), 약주(藥酒) 담그는 방법 등을 설명하고, 수부(水部) 33종, 토부(土部) 18종, 곡부(穀部) 107종, 인부(人部) 23종, 금부(禽部) 107종, 수부(獸部) 236종, 어부(魚部) 53종, 충부(蟲部) 95종, 과부(果部) 91종, 채부(菜部) 122종, 초부상(草部上) 779종, 초부하(草部下) 188종, 목부 (木部) 156종, 옥부(玉部) 4종, 석부(石部) 55종, 금부(金部) 33종으로 모두 16부에서 1,400종에 대하여 약의 형상, 약의 성미(性味), 채취방법, 주치(主治) 등을 약술하였다.
인용서로는 복희씨가 저술한 <천원옥책(天元玉冊)>, 신농씨(神農氏) 저술인 <본초(本草)>, 황제와 그의 신하 기백(岐伯) 등의 문답으로 이루어진 <소문(素問)>, <영추경(靈樞經)>과 동군(桐君)의 <채약대(採藥對)>, <채약별록(採藥別錄)>, 뇌효(雷斅)의 <지교론(至敎論)>, <약성포구(藥性炮灸)>, 은대(殷代) 이윤(伊尹)의 <탕액본초(湯液本草)>, 전국시대(戰國時代) 편작(扁鵲)의 <난경(難經)> 등 10종을 비롯하여 후한(後漢) 3종, 양진(兩晋) 7종, 남북조(南北朝) 2종 및 수(隋) 2종, 당(唐) 8종, 금(金) 5종, 송(宋) 15종, 원(元) 11종, 명(明) 20종의 의서와 우리나라 의서 세종조(世宗朝)의 <의방류취(醫方類聚)>,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선조조의 <의림촬요(醫林撮要)> 등 모두 86종에 달하는 역대 의방서(歷代醫方書)들이 인용되었다.
본 한의서는 우리나라는 물론 동양의 의학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현재까지 모든 한의학자에게 병의 원인과 치료법 처방 등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국내외적으로 대표적인 한의학서로 평가받고 있다. (김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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