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십서 (東垣十書)
漢陽 : 惠民署, 英祖 41(1765)
16卷10冊 : 四周雙邊 半郭 21.2 x 14.7 cm,
有界, 10行20字 註雙行, 上下向百魚尾; 29.8 x 18.7 cm
跋 : 上之四十有一年(1765)...洪啓禧
원대(元代, 1260-1367)에 이고(李杲)가 자신의 저서 �내외상변혹론(內外傷辨惑論)�, �비위론(脾胃論)�, �난실비장(蘭室 秘藏)�, �차사난지(此事難知)�등 4종과 송(宋) 자허(紫虛) 최가언(崔嘉彦)의 �맥결(脉訣)�, 원(元) 단계(丹溪) 주진형(朱震 亨)의 �국방발휘(局方發揮)�, �격치여론(格致餘論)�, 원(元) 곤산(昆山) 왕리(王履)가 집성한 �소회집(遡洄集)�, 원(元)의 해장(海藏) 왕호고(王好古)의 �탕액본초(湯液本草)�, 원(元)의 태의(太醫) 제덕지(齊德之)의 �외과정의(外科精義)�등의 6종을 합하여 편성한 종합의서이다.
저자 이고(李杲)는 원(元)의 진인(鎭人)으로 자(字)가 명지 (明之), 호(號)는 동원(東垣)으로 장원소(張素, 字 潔古)에 게 의술을 배웠으며, 왕호고(王好古, 字 進之, 號 海藏) 같은 훌 륭한 제자를 두기도 하였다.
본 의서가 중국에서 간행된 이후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향약집성방(鄕藥集方)�(1433), �의방 유취(醫方類聚)�(1445-1477) 등에 인용된 근거로 보아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조 성종 19년(1488) 10월 11일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성건(成健)이 북경에서 구입한 의서가 내의원(內醫院)에 완질본(完帙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성종에게 바치자 내의원에 명하여 간행하도록 한 근거가 실록에 기재되어 있다. 그 이후 허준의 �동의보감 (東醫寶鑑)�(1613) 등에 꾸준히 인용되어 오다가 영조 41년(1765)에 활자본으로 간행된 것이다.
권두에 ‘원사이동원 본전(元史李東垣 本傳)’이 있으며, 권두 다음에는 목차로 ‘동원십서총목(東垣十書總目)’이 있다. 10책 권16말미에 ‘上之四十有一年乙酉 九月 下澣 惠民署提調 南陽 洪啓禧 謹識’라는 홍계희의 발문이 있다.
내용 구성은 권1에 송(宋) 자허(紫虛) 최가언(崔嘉彦)의 �맥결(脉訣)�, 권2에 원(元) 단계(丹溪) 주진 형(朱震亨)의 �국방발휘(局方發揮)�와 권3, 4에 �격치여론(格致餘論)�, 권5에 이고(李杲) 자신의 저서인 �내외상변혹론(內外傷辨惑論)�, 권6, 7에 �비위론(脾胃論)�, 권8, 9는 �난실비장(蘭室秘藏)�, 권10, 11에는 �차사난지(此事難知)�, 권12는 원(元)대의 곤산(昆山) 왕리(王履)가 집성한 �소회집(遡洄集)�, 권13, 14는 원(元)의 해장(海藏) 왕호고(王好古)의 �탕액본초(湯液本草)�, 권15, 16은 원(元)의 태의(太醫)를 지냈던 제덕지(齊德之)의 �외과정의(外科精義)�등으로 구성되었다.
본 의서는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의과시험과목으로 채택되는 등 의원들에게 필수과목으로 이용되어 오 면서 오늘날까지 한의학계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영조 41년(1765) 예각 인서체 자(藝閣印書體字)로 인출된 활자본으로 조선시대 활자연구의 표이 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김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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