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와 서양고대의료
그리스 신화에는 아스클레피오스라는 ‘의술의 신’이 존재한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론과 코로니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탄생 자체가 기구하였다. 어머니 코로니스가 이스퀴스라는 자와 밀통을 했다고 아폴론의 신조(神鳥)였던 까마귀가 아폴론에게 밀고하여, 아폴론이 콜로니스를 죽이게 된다. 그런데 코로니스를 죽인 뒤 아폴론은 코로니스의 뱃속에 제 자식이 자식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이미 까맣게 그슬린 시신을 거두어 배 속에서 자식을 수습하니, 그 아기가 바로 아스클레피오스였던 것이다. 탄생 자체가 죽음으로부터 온 셈이다.
그리고 아폴론은 켄타우로스족(반인반마족,半人半馬族)의 현자(賢者) 케이론에게 아스클레피오스를 맡겨 의술을 배우게 하였다. 그렇게 하여 아스클레피우스는 최고의 의사로 활약하였고,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 오늘날 우리들에게 ‘의술의 신’으로 남게 되었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실력은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으로 과장된다. 우선 제우스의 번개를 맞아 죽은 글라우코스를 치료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서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탄생되었다. 치료하던 중에 뱀 한 마리가 나타나자 놀라 지팡이를 휘둘러 그 뱀을 죽였다. 그런데 잠시 후 또 한 마리의 뱀이 입에 약초를 물고 들어와 죽은 뱀의 입 위에 올려놓자 죽었던 뱀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이에 아스클레피오스는 뱀이 했던 대로 그 약초를 글라우코스의 입에 올려놓아 그를 살려냈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지팡이를 휘감고 있는 한 마리의 뱀이 그의 상징이 되었고, 오늘날까지 의술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의술을 상징하는 지팡이(카드케우스, 醫神杖)에 기어오르는 뱀은 바로 허물을 벗는 뱀, 재생을 상징하는 뱀이라고 한다. 오늘날 의료와 관련된 많은 기관들이 이것을 단체의 상징물로 사용하고 있다. WHO를 비롯, 세계의학협회, 의사협회, 응급구조사협회 등 수 많은 연관 단체들에서 사용하고 있다. 또 달리는 구급차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한편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다 오히려 그 때문에 죽게 된다. 신화에 따르면, 의욕 넘치게 죽은 사람을 살려내다가 이미 저승에 가 있던 사람을 다시 이승으로 데려오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일이 저승의 신인 하데스를 화나게 만들었고, 히데스는 아스클레피오스가 이승의 법도와 저승의 염도(厭覩)를 무너뜨렸다고 제우스에게 탄원했다. 이로 인해 결국 제우스는 벼락으로 아스클레피오스를 저승으로 보냈다고 한다.
신화성이 강한 믿거나 말거나 한, 나름의 교훈도 들어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그를 둘러싼 이야기에는 이런 신화성을 넘어 한층 현실성 있는 측면들도 존재한다. 그는 신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로 불사의 신이 아닌 지상신임에도 불구하고 불사의 신들의 이야기로 구성된 그리이스로마신화에 등장한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리이스로마시대의 현실 의료를 매개로 민중의 신앙 속에 무시할 수 없는 위치를 점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여러 곳에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이 있었다고 하며, 현재도 그 자취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이스시대의 의료는 특정한 의사집단이 일정한 자역에 일정 기간 머물며 그 지방의 환자를 치료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하는데, 이 아스클레피오스신전은 일정한 장소에 고정된 의료기관으로 현대식으로 보자면 의료원, 병원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고정된 치료소는 이동식 진료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 - 예컨대 정신병, 만성병 또는 신체적 결합이 심한 자 등 - 들을 모아 치료한 곳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신전의료’라 한다. 그리고 한 아스클레피오스신전의 솔밭 땅 밑에서 다수의 비석이 발굴되었는데, 이들 비석에 치료 성공사례와 더불어 마지막에 아스클레오스신에 감사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당시 의사들에 대한 그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신전에서는 공동생활이 이루어졌는데, 의사도 환자도 엄격한 윤리적 생활이 요구되었다고 한다. 즉 신전의료는 무엇보다 ‘경건’이 중시되었던 것이다. 물론 신전의료에는 히포크라테스적 의료기술도 중요한 위치를 점했을 것이나, 당시의 의료가 여전히 제한된 의료기술만으로 커버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신에 기대거나 종교적 기원에 기대거나 하는 주술적 요소도 있었을 것이고 이런 맥락에서 아스클레피오스적 태도가 중요한 위치를 점했을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2세기 무렵에는 갈레노스의학체계로 이어지는데, 신체 치료로서의 히포크라테스의술과 영혼 치료로서의 플라톤철학이 결합된 것으로 설명되는데 그 속에도 아스클레피오스의 ‘경건’이 계승된다고 한다. 갈레노스는 이론적인 탐구와 실천적인 지혜를 갖춘 최고의 의사는 바로 철학자라 불려지기에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 아스크레피오스의 신전이 수행했던 역할은 이후 갈레노스의 의학체계, 그리고 기독교적인 영혼 치유라는 두가지 길로 흡수되어 중세의 의료로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의료에서 오늘날 의료원 또는 병원의 원형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신전의료는 만성병이나 난치병을 치료하는 곳이었다는 사실, 더불어 그곳에서는 환자도 의사도 엄격한 윤리를 요구받았다는 사실, 즉 경건(敬虔, 유세베이아(ευσεβεια))이 중시되었다는 사실을 흥미있는 대목으로 정리해 둔다. 더불어 가벼운(간단한) 질병이나 급성병은 이동식 진료방식으로(동양적으로 말하자면 왕진일텐데..) 치료했다는 점도 지적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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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敬虔)이란 헬라어 “유세베이아(ευσεβεια)”를 번역한 말로 “유(ευ,좋은)”+ 세베이아(σεβεια, 두려움)의 합성어이다. 즉 헬라어의 뜻은 곧 “바람직한 두려움”이라 할 수 있는데, 대개 경외하는 마음과 사랑, 감사, 겸손 등을 포괄하는 생활태도, 덕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芝雲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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