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中韓近代鍼灸医学史の比較
-日本医学確立へ向けた提言-
清野充典(清野鍼灸整骨院)/ 全日本鍼灸学会雑誌,2021年
요약/
한국과 일본에서 이루어진 의료의 역사와 의학의 호칭을 되돌아보고 향후 의료가 진행되어야 할 길의 기초가 되는 사상을 검토했다. 고대 중국으로부터 청나라까지는 '医'라고 호칭하고 있었다. 조선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다. 근대의학이 굳어진 이후, 각국의 전통의술에 대해서는 의학상 특정한 고유명칭이나 정의가 없다. 그러므로 공통인식이 되는 용어를 창설하는 것은 연구분야의 정리에 연결되어 국민이나 의료종사자에게 있어서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개발된 현대의학분야의 과학이론」과 「일본 전통의학 분야의 의료기술 및 현재까지 증명된 과학이론」을 총칭하여 「일본의학」이라고 호칭하는 것을 제언하고 싶다. 또,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침구치료・약초치료」나 일본 고유의 의료인 「 柔道整復術・指圧術」등은, 「일본 전통의학」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용어의 창설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중국 전통의학과 독자적으로 발전해 온 일본 전통의학의 기술 및 과학체계화에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Ⅰ.서론
20세기 후반부터 '서양의의학'이 세계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지만, 인체를 포착하는 사상의 기초가 되는 사고방식은 중국의 의학, 인도의 의학, 티베트의 의학, 아라비아의 의학 등 다르다. 이에 따라 의료도 다르다. 세계에서 진행되는 의료는 매우 다양하다. 의학과 의료는 국가의 수, 지역의 수, 인간의 수만큼 많다고 인식하고 있다. 침구의료를 실시하는 현장에 있는 저자는 병을 없애고 건강체의 획득을 목적으로 의료를 실시하고 있다. 같은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에서도, 약간 다른 사상의 차이가, 수많은 침술 뜸술이나 치료 도구를 낳는 원인에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의료」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인체의 이상을 어떻게 파악하는가가 문제가 된다. "근대 서양의학에 근거하여 인체를 분석하는 것"을 "의학"이라고 정의한다면, "의학"과 "의료"는 일체가 되어야한다. '근대 서양의학'은 '의학'을 바탕으로 '의료'를 구축해 왔다. 따라서 "의학"과 "의료"는 비교적 일치한다. 그러나 '의학'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병기'에 대해 '의료'를 할 수 없는 등의 폐해가 생겨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 고대에 행해진 의학'은 '의료'가 우선적으로 행해졌기 때문에 의료행위를 이해하기 위해 음양5행론이 적용된 의도적인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중국 고대에 행해진 「의학」과 「의료」에는 일관성이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옛날부터 건강을 일탈한 인간을 '병기'이 들었다고 파악해 침구치료나 약초치료 등의 '의료'를 병인에게 적용해 온 그 방법은 유효한 경우가 많다. '의학'의 구축이 불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유효한 '의료'를 낳은 '중국 고대에 행해진 의학'에 눈을 돌리는 것은 인류에게 보다 유효한 '의료'를 제공하기 위한 기초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본, 중국, 한국에서 행해져 온 의료의 근대에 있어서의 역사나 의학의 호칭을 되돌아보고, 향후 의료가 진행되어야 할 길의 기초가 되는 사상을 검토하고자 한다.
Ⅱ. 각국의 전통의학에 관한 호칭의 역사
1. 중국의 전통 의학에 관한 호칭의 역사
중국에서 침구치료·약초치료에 대한 호칭은 변천해 왔다. 고대 중국부터 청나라까지는 '의'라고 호칭하고 있었다. 청나라 말기에 해당하는 19세기 말경부터 '중국의학'이라고 부르게 된다. 「중국의학」의 어휘는 『중국도서 종합목록』1)에 의하면, 清光緒 21년에 해당하는 1895년에 청의 唐宗海 가 쓴 『중국의학 입문』 상해서국 석인본이 처음이다. '중국'의 명칭이 '중화민국'의 약칭으로 보급됨과 동시에 1930년경부터 급속히 '중국의학'이 이용되게 되었다. 다만, 중화민국은 '국의학'이라고 불렀다. 중화인민공화국이 되어 '중의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966년~1976년의 문화대혁명 시대는 '조국의학'이라고 부른다. 1977년부터 다시 「중의학」이라고 호칭하게 된다(真柳誠. 茨城大学人文学部中国学専攻講義.「中国科学史Ⅰ」 2004 ). 1980년대에 들어와 ‘중서의의결합’을 슬로건에 ‘중의학’과 ‘서의학(서양의학)’의 결합을 꾀해지먀 제3의학 확립을 지향하게 되는데, 1990년대 후반 연구가 둔화된다. 그 후 「중의학」을 세계에 보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방향전환하고, 현재는 국외에 대해 호칭하고 있는 「Traditional Chinese Medicine(TCM)」을 「중국전통의학」이라고 호칭하고, 「중의학」이라고 병용하고 있다.
1967년에 프랜스의 Pierre Huard, Ming Wong의 두 사람이 'Chinese Medicine'을 써 저작하고, 그 번역에 종사한 高橋晄正등은 서명을 '중국의 의학'으로 했다2). 긴 중국의 역사를 감안해 「중국의 의학」이라고 번역한 것은, 실로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2. 한국의 전통의학에 관한 호칭의 역사
조선에서, 「의」자가 사용되고 있던 것을, 「일본서기」권 제19기명 천황 14년 6월에 있는 「 勅シ テ使ヲ百済ニ遺シ、医博士・易博士・暦博士等ヲ シテ、逓番来朝セシメ、且ツ卜書・暦本及ビ種々 薬物ヲ附送セシム」에서 볼 수 있는데, 조선에서 '의'자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반도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삼국사기』 職官志이다. 거기에서 「 医学、孝昭王元 年初置、教授学生、以本草経・甲乙経・素問経・ 針経・脉経・明堂経・難経為之業、博士二人」이라고 했다. 三木栄는, 「의학은, 신문왕 2년(682)에 설립된 국학에 준하여 마련되어, 예부에 속해 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라고 말한다3).또한三木은 『三国史記』 新羅本紀에도 聖徳王 16년(717年) 봄 2월에 「置医博士、算博士各一員」이라 한 대목을 들어 「員数에서 모순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것은 당시에 변경된 것인지. 혹은 정식으로 임명된 인원을 나타내는 것 같다. 医博士라는 職名는 백제나 일본에서도 보이지만, 당나라의 医博士 제도를 채택한 것이다(医博士는 그후 高麗에서도 계속 사용되고 李朝에 들어서면 太祖 2년 医学教授로 바뀐다). 요컨대 上代부터 医療機関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医学을 담당하는 教育機関이 분명 설치되었음은 孝昭王 때부터이고 그 전임자로 1-2명의 博士가 학생들에게 상기 七部의 の基本的 医書로 가르치고 의사를 양성하여 新羅 医学의 充実発展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이 이후 조선은 중국에 종속되기 때문에 의학교류도 중국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 중국이 청조까지 '의'라고 호칭하고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도 '의'라고 호칭하고 있다. 이씨 조선에서는, 자국의 의학·의사를 '東医'라고 부르고 있었다(真柳誠. 茨城大 学人文学部中国学専攻講義.「中国科学史」). 1952년이 되어 한의사라고 하는 자격을 창설해, 전통의학을 「漢医学」이라고 호칭한다. 그 후 '한의과대학', '동양의과대학'이라는 명칭의 대학이 탄생하여 한방병원을 병설한다. 1986년에 의료법이 개정되어 「漢医学」에서「韓医学」으로 명칭 변경하여 자국 문화를 주장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 배경에는 조선문화의 조류가 있다.三木栄은、「日本과 朝鮮은 大陸中国의 東部로 연결되어 3자가 서로 의존해 존재하고, 文化的으로 경고히 묶여 있다. 따라서 地理民俗学的으로는 中国文化권력이라 한다. 古代부터 島国 日本은 先進国인 中国大陸으로부터 중간다리인 朝鮮半島를 매개로 그 文化를 輸入하였다. 文化는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 흐름은 時代가 흐름에 따라 各支配朝의 흥망 혹은 主権者의 交代 또한 상호간의 攻略戦争을 수반하며 다양해졌고, 近代에 들어서는 西洋文化이 유입되며 逆転複雑化하기에 이르렀다. 미래에 여하의 양상을 보일지 알 수 없지만 교류의 끈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전파의 교류는 의학에서도 유사하다」라고 한다4). 또한 真柳誠은 “한국·일본의 전통의학은 중국의학의 영향하에 발전하면서 3국 각각 고유의 의학을 구축해 왔다. 그 오랜 역사를 거치며 무수한 의학문헌이 만들어지고 현대에 다양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의서는 각국마다 또 시대마다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그와 동시에 혼연일ㅊ[로 변화 발전해 온 측면도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에는 조선에 전해지는 문화를 주창하려는 토양이 있었기 때문에 '韓医学'으로 명칭 변경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961년에 三木이 말하는 다음 말은 1986년에 '韓医学'이라고 호칭 변경한 한국의 장래를 예견하고 있는 것 같다. 「朝鮮文化는 表層的으로 中国文化 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지만 이는 마땅치 않다. 朝鮮半島는、中国과 다른 地理風土、특수하게 구성된 民族에 의해 固有文化가 古代부터 존재했고 그것이 변형되지만 연결되어 현대에 이르고 있다. 日本文化 역시도 마찬가지로 中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島国 固有의 文化가 길러져 왔다6).
3. 일본의 전통의학에 관한 호칭의 역사
앞서 언급한 三木栄는 조선문화에 이어 일본문화에 대해서도 “일본문화도 마찬가지이며 중국에서 영향을 받더라도 섬나라 고유의 문화가 길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Chinese Medicine'을 쓴 Pierre Huard et al.은7) 일본의 의학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일본 독자의 의학이 존재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현재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국 전통의학'에는 杉山和一의 管鍼法이나 赤羽幸兵衛의 皮内鍼 등 많은 일본의 침구 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따라서 침구치료를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어느 기술이 중국식이고 어떤 기술이 일본식인지 불명료해졌다. 중국에서는 일본의 기술을 일본의 것으로 구별하지 않고 교육하고 있는 것이 그 원인이다. 그 배경에는, 중국에서 발상한 침구치료는 어느 나라에서 개발된 것이라도, 자국의 의학을 발전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상 배경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의학·의료의 수평화가 진행되는 것은 크게 추진합 바이지만, 저자는 오랜 역사 하에서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침술 의학·치료 기술은 중국의 의학·의료와 명확하게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치료 기술이 만들어 낸 문화와 사상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그 치료 기술의 이해에 연결되는 동시에 새로운 치료 기술이 만들어질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중국의 의학'을 계속 받아 왔던 대한민국은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국 독자적인 의학·의료를 '한국 전통의학'이라고 호칭하고, 그것을 하는 의사를 '韓医'라고 호칭하고 있다. 저자는 일본에서도 국내에 발달한 독자적인 의학·의료에 대한 명칭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본에서의 「의사에 대한 호칭」을 되돌아 본다. 에도시대까지 '한학'·'중국의 의학'을 수용해 온 일본은 1542년(천문 12년)에 포르투갈의 배가 種子島에 표류됨으로써8) 처음으로 서양문화를 알게 된다. 나가사키의 出島 로부터 입수하는 학문의 대부분은 독일어의 난역본이었다9)가, 일본에서는 이것을 「蘭学」이라고 불렀고, 난학을 배운 의사는 「蘭方医」라고 호칭했다. 거기에 대비하는 말로 '漢方医'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또 일본 독자적인 방법은 '和方'(일본방)이라고 불렸다. 1857年(安政4年)에 海軍 軍医 JLC Pompe van Meerdervoort 10)가 長崎大学 医学部의 전신인 「医学伝習所」11)에서 近代医学을 최초로 일본인들에게 교육히면서부터 160년이나 경과하였지만, 각국의 자료를 수입 연구되었기 때문에, 구미의 학문은 '양학'(洋学)으로 불려왔다12). 1869년(메이지 2년)에 메이지 정부는 '의학교'를 '대학교'로 개칭하고 근대의학교육을 하는 학부와 일본 고래의 의학을 교육하는 ' 皇漢医学部'가 병설된다. 1874년(메이지 7년)에 「医制」가 시행되어, 의료는 근대의학에 근거하는 교육 중심으로 옮겨지게 되고, 「황한의학부」는 같은 해에 폐지되기에 이르고13), 이후 일본 전통의 의학·의료는 서서히 쇠퇴한다. 1883년(메이지 16년)에, 今村了庵이 1887년(메이지 10년)에 설립된 도쿄대학에서 강의되고 있던 「동양학」이라고 하는 명칭에 착안해, 의학부 의사과의 강의중에 「동양의학」의 호칭을 이용해, 다음 1884년 그 이름이 보급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真柳誠.茨城大学人文学部中国学専攻講義、「中国科学史Ⅰ」2004).
이상이 「漢方医」・「皇漢医学」・「東洋医学」이라고 호칭이 변천해 온 일본에 있어서의 「医에 대한 호칭」의 역사이다. 이상의 역사적 경위를 바탕으로 향후 의료가 진행되어야 할 길의 기초가 되는 사상을 검토했다.
III. 일본의 의학 호칭에 대한 제안
현재 일본에서 '동양의학'이라는 명칭은 널리 침투하고 있지만, 今村의 뜻이 충분히 반영되어 사용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동양의학」은 무엇을 총칭하여 호칭되고 있는지 불명료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는 '동양'이라는 표현이 '일본'을 의미하기에는 불분명한 표현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今村가 사용한 「동양」은 「Orient」의 번역어이다. 본래 '동양'이라는 사전은 '한학'에서는 '일본'의 의미이지만, 그것을 아는 일본 국민은 적다고 생각된다. 오늘날 본인이 생각하는 '동양'은 '아시아 전체'를 의미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영어로 하면 'Oriental Medicine'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고, 외국인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현재이다. '동양의학'은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의학·의료'의 총칭으로 사용하는지, '중국의 의학'을 포함하여 사용하는지, '아시아 전체의 의학'을 총칭하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 일본에 독자적인 의학·의료가 존재하고 있다는 인식이 의학자나 국민에게 침투하지 않는 것이 배경에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옛 일본에서 발전해 온 의학·의료에 대해 현재의 일본국민이 공통인식을 가질 적절한 호칭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저자는 '중국의 의학'과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의학·의료'를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이 의학·의료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동양의학'으로 대체되는 총칭을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의학·의료'는 모두가 즉시 이해할 수 있는 명칭이 적당하다. 富士川游14)는 1996년에 메이지기까지의 역사를 나타낸 '일본의학사'를 출판하고 있다. 太田正雄 등15)은 쇼와 21년에 메이지 이전의 일본 의학사와 메이지 이후의 의학을 총칭하여 「일본의 의학」이라고 하는 타이틀의 책을 출판하고 있다. 쇼와 30년이 되어, 医制 공포 80주년 기념 출판으로서 「일본 의학의 발달」16)이 출판되었다. 메이지 이후의 실적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일본에서 행해져 온 의학을 총칭하여 「일본의 의학」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이상으로부터, 저자는 「일본에 있어서의 의학·의료」를 「일본의 의학」이라고 호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대의학 도입 후에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한 의학·의료도 적지 않다. 이때 근대의학·현대의학 분야를 제외한 의학·의료와 구별할 필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침구치료·약초치료”나 일본 고유의 의료인 “유도정복술·지압술” 등은 중국·한국이 사용하고 있는 명칭에 따라 “일본 전통의학”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된다. 최근, 「일본 전통 의학」에서 일본에서 행해지고 있는 약초 치료를 漢方薬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고, 일본에서 발달한 침구 치료는 漢方이라고 불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약초치료가 1980년대까지 의료로 인정되지 않고 침구치료만이 소위 동양의학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같은 영역으로 인식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약초 치료에 사용하는 약을 漢方薬으로 호칭하고 있는 것이 국민에게 침투하고 있기 때문에, 약초 치료만 漢方이라는 인식에서 국민이 많은 것도 이유로 들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개발되고 많은 침구사가 지지하고 있던 치료법은 경락 치료라고 불리고 있다. 1936년에 경락치료학회의 전신인 彌生会에서 역할했던 竹山晉一郎를 추모하는 침구사들이 모여, 「 故竹山晋一郎先生 추모회」가 1995년에 도쿄 도내에서 행해졌다. 그 때 저자가 "경락치료는 전통의학에 근거한 침구치료이므로 경락치료의 명칭을 변경하는 것이 좋다"고 발언한 것이 많은 참석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그 후, 「일본경락학회」내에서 명칭 변경이 협의되고, 다음 해인 1996년 6월에 「일본전통침구학회」로 명칭이 변경된다. 이후 '전통 침구'의 이름이 일본 국내에서 사용되게 된다. 1996년 9월에 저자가 미국의 침술교육기관을 방문했을 때 미국인 학생에게 「일본에서는 어떤 침구치료를 하고 있는가」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일본에서 행해지고 있는 침구치료에 명확한 호칭이나 정의가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였다. 저자는 귀국 후 '일본 침구'의 호칭을 국내에서 주장하기도 하였다. 당시 전일본침구학회 임원에게 진언해 세미나나 강습회 등 각종 회합에서 '일본침구'의 확립을 호소했다. 篠原孝一는 2000년대가 되고 나서 「일본 침구」라는 말이 산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 유일의 침구의학학술단체인 '공익사단법인 전일본침구학회'는 2011년 6월 19일 '일본 침구에 관한 도쿄 선언 2011'을 결의해 국내외에 '일본 침구'의 호칭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의학」과 「일본의 의학」을 호칭함에 있어서, 영어로 「중국의 의학」은 「Chinese Medicine」, 「일본 의학」 「일본의 의학」을 「Japanese Medicine」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중국의학」・「일본의학」과 「중국의 의학」 ・「일본의 의학」으로 구별하고자 한다 . 이 글에서는 엄밀하게 구별하지만, 시대를 감안하면 한자권에서는 '중국의학', '일본의학'이 표어로 침투해 나갈 것으로 예측한다.
4. 고찰
1. 일본 전통의학이라는 호칭과 漢医師의 창설에 대해
'중국전통의학'의 의료자격은 '中医', '한국전통의학'의 의료자격은 '韓医'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7년의 医制 발령 이후, 의사가 의료의 중심이다. 그러나 의사국가시험에서는 서양의학에 한정했기 때문에, 의학생들이 일본 전통의학을 배우지 않게 됨으로써 의사가 일본전통의학에 근거한 의료를 실시하는 것은 곤란한 배경이 있다. 에도시대에 「本道」라고 불리던 의료는 침술, 뜸치료, 약초치료, 유도정복치료, 안마치료 등이다. 근대의학이 도입되어 의료의 중심이 일본 전통의술이 아니게 되어 본도라는 명칭은 호칭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浅田宗伯가 '漢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하고 漢方을 하는 자는 '漢方医'라고 말하게 된다. 医制 이후 메이지 정부가 한방의학 배제를 실시한 것에 대해, 1875년(메이지 8년)에 浅田宗伯・岡田昌春・清川 玄道・河内全節・桐淵道齊・高島祐啓 등이 존속운동 벌이게 되고, 1882년(메이지 15년)에는 이들 한바의에게 의사면허가 부여되었지만 1884년(메이지 17년) 1월 1일에 실시된 제1회 의술 개업시험 이후 한방에 관한 문제가 출제되지 않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한방의료는 크게 쇠퇴했다. 저자는 「일본의학」의 발전에서 「일본 전통의학」의 발전이 불가결하다고 생각한다. 의사의 교육 커리큘럼에 일본 전통 의학을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방은 약초치료만이 아니라 침술, 뜸치료, 유도정복치료, 안마마사지지압치료도 포함됨을 국민에게 인지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방의 생각에 근거한 양생법 등을 의무교육 커리큘럼에 편입하도록 문부과학성에 일하고 침구치료실을 초중학교 보건실에 상설하는 등의 방책은 보건활동의 일환으로 국민에게 인지해 주는 한 방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보건소 내에 침구사를 상설하는 직원으로서 배치하는 방책은 초고령화 사회에 적합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학부 교육 내용도 다양하게 의료가 세분화되고 있는 오늘날, 의사가 일본 전통의학에 근거한 의료를 담당하는 것은 곤란한 상황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침구의학의 대학·대학원, 유도정복의학의 대학·대학원이 개학하고, 의학부 이외에서 연구·교육이 행해지고 있는 것도, 제도상의 단일화가 곤란한 상황을 낳고 있다. 중국의 '中医', 한국의 '韓医'를 따라, 일본에서도 '일본 전통의학'에 있어서의 의료자격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오랫동안 ' 漢医'나 '漢方'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어 왔으며, 국민에게도 친숙한 의료이기 때문에 '일본 전통의술을 실시하는 의사' 자격을 창설하는 것도 시야에 넣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침술, 뜸 치료, 약초치료, 유도정복치료, 안마마사지 지압치료가 가능한 6년제 이상의 대학 또는 학부를 창설하고, 서양의료는 '医師', 동양의학은 ' 漢医師'로 구분하는 의료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세계 규모에서 전개되는 새로운 의료체제의 추진과도 맞닿으며 국민의 건강증진에 기여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의사'와 '한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의료를 협의하여 실시하는 의료체제는 환자에게 바람직한 의료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것은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을 실시하는 의사 양쪽의 기량을 보충하는 것에도 연결되며, 그 때마다 최선의 의료를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서 기능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로운 의료 체제는 최첨단 의료 및 각국에 존재하는 전통 의료 중에서 환자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의료를 단독 또는 복수 및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의료이다. 그 때 실시하는 동양의료란 침술, 뜸치료, 유도정복치료, 안마치료, 마사지치료, 지압치료, 요가치료나 양생법의 지도(저자는 養正치료라고 함) 등을 가리키지만, 모든 동양의료에 대해 질 높은 의료를 종합적으로 제공한다. 단, '한의사'가 '의사'와 마찬가지로 근대서양의학을 배우고 마찬가지로 검사를 실시하고 진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 긴급성을 필요로 하는 시대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학」이나 「일본 전통의학」의 호칭이나 정의를 마련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봐도 의의가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2. 일본의학이라는 호칭 제안
「일본에서 개발된 현대의학 분야의 과학이론」과 「일본 전통의학 분야의 의료기술 및 현재까지 증명된 과학이론」을 총칭하여 「일본의학」이라고 호칭하는 것을 제언하고자 한다. 저자는 '일본의학'을 주장하는 것은 일본의 의학·의료가 국제사회 속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며, 일본의 의료자격자 및 모든 의료종사자가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본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일본의 의학·의료가 최고 수준임을 인지하게 한다. 이것은 '일본의학' 구축의 원동력이 되고, 또한 세계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새로운 의학과 의료를 낳기 시작할 것이다. 2010년 6월 11일에 이바라키대학에서 '제2회 한중일의사학회 합동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중국의 의학'이 국가의 의료로서 행해지고 있는 일본·중국·한국·베트남의 4개국을 대상으로 한 국제회의 실행위원장이었던 真柳誠 이바라키대학 교수가 역사상 처음으로 기획해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 遠藤次郎가 일본의 풍토와 일본 국민의 체질에 대응한 섬세한 의학·의료를 '일본의학'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의학」을 공식적인 장소에서 사용한 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생각된다. 이 선언은 에도 말기까지의 의학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필자는 본론에서 일본 전통의학과 메이지기 이후의 의학을 학문상 「일본의 의학」이라고 호칭하여 구별했지만, 향후는 현대까지의 의학 모두를 「일본의학」이라고 총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文 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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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三木 栄. 補訂 朝鮮医学史及疾病史. 初版. 京都. 思文閣出版. 199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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