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상'의 침구술 의사학의 연구 방법1 : 역사란?(침구 의학사)
*중국 황용상(黃龍祥)의 침구 의사학 방법론에 대한 사고는, 침구학 고전의 주옥 같은 경맥/경혈 이론을 현대화, 과학화하려는 깊은 고민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의 탁월한 안목과 진지한 연구가 설득력 높게 다가온다. 경의를 표하며 그 주요 내용을 정리해 둔다. 내용이 길어 나누어 올립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 원문은 황용상(박현국외 역), <중국침구학술사대강>으로 번역 출간되어 있다. "제7편 곤혼 사색 개척"(“困惑·思索·開拓”)참조. 다만 번역상 수정이 필요하거나 문맥을 고려하여 일부 달리 옮긴 부분도 있다) 그 1. 역사학이란?
1. 역사학이란 무엇인가?
10년이 넘는 노력 끝에 그는 점차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완전하고 명확한 그림을 완성했다.
사학은 역사에 대한 지식의 축적이나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서술이 아니라, 발견의 활동이며, 과거에 대한 사실을 얻는 길이자, 역사적 해석을 제시하고 검증하며 개선하는 창의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과정이다. 사학의 본질은 관찰과 이론의 상호작용이다.
이는 자연과학(물리학, 화학, 수학, 생물학) 분야의 선도적인 전문가들과 긴밀히 접촉하고 직접 대화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는 이전에는 서로 상충되었던 두 영역, 즉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각각의 영역에서 융합되고 있으며, 두 학문 분야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음을 갑자기 깨달았다. 이러한 묘사는 자연과학의 본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연과학은 자연에 대한 지식의 덩어리가 아니라, 발견의 활동이며, 자연에 대한 지식을 얻는 길이자, 자연에 대한 설명을 제안하고, 검증하고, 개선하는 창의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과정이다. 자연과학의 본질은 관찰과 이론의 상호작용이다.
역사과학과 자연과학의 공통된 사명은 사물의 본질과 연관성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양자는 공통된 기원을 공유하며, 특정 철학적 사상(자연과학의 경우 과학철학, 역사과학의 경우 역사철학)의 영향을 받으며, 이론적 이해에 있어 객관성을 추구한다. 양자 모두 두 가지 차원을 아우른다. 첫째는 연구 대상에 대해 기술하는 것, 즉 "그러함을 아는 것"(知其然)이고, 둘째는 연구대상에 대한 해석, 즉 "그러한 까닭을 아는 것"(知其所以然)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을 보자면, 역사 연구는 첫 번째 차원에서 크게 발전해 온 반면, 자연과학은 두 번째 차원에서 보다 많이 연구가 이루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역사연구 역시 19세기 역사학과 비교하자면 20세기 들어 중대한 변화가 보이며 두 번째 차원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되었다.
예를 들어, 국가 주요 역사 연구 프로젝트인 "夏、商、周断代工作"에서는 실험적 방법과 다양한 첨단 기술을 광범위하게 활용했다. 그는 개인적인 역사 연구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실험적 방법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위의 이해를 바탕으로, 피할 수 없는 질문은 바로 역사 이해의 객관성이다. 오랫동안 중국과 외국 역사가들 사이에서 이 문제에 대한 이해는 크게 엇갈려 왔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어려운 난제를 고찰함에 있어 우리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 가능할까?
1.1 역사 인식의 객관성
인간은 진정으로 역사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럴 수 있을까? 이 어려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한편으로는 사학 자체의 실천 활동을 통해 이를 검증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계에서 입증되고 널리 받아들여진 이론들로부터 추론할 수 있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1874-1945)는 역사학은 사실에서 시작해야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한 번 지나가면 영원히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역사적 사실은 자연과학의 사실처럼 실험실에서 재구성될 수 없으며, 특정한 관점에 기반하여 이상적으로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역사는 체계적이지 않은 역사적 자료들을 일관된 전체로 종합하려는 시도이다. 다시 말해 역사 연구는, 잔해 더미(역사 기록 보관소) 속에서 역사의 원래 모습을 구성하는 단편들(검증된 역사적 자료)을 찾아내고, 이 단편들을 모아 완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그림(역사 인식을 형성)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활동이다.
그는 중국 최초의 침술 경혈 경전인 『명당경』(明堂经)을 편찬하고 복원하면서 침술사 연구를 시작했다. 명당경의 편찬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가장 엄격하고 설득력 있는 검증조차 통과했다. 편찬된 내용의 관련 부분은 발굴된 원본 책의 일부와 거의 일치했다.
첫째, 명당경 복원의 성공은 현존하는 유실문(佚文)의 수량이 비교적 많고 그 질이 좋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유실된 책(佚书)의 현존하는 유실문의 수가 매우 적다면 편찬 복원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복원 자체가 아무런 가치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고서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면, 일반적으로 그 책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유실이 우리의 총체적인 역사 인식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동일한 유실된 고서에 대해, 서로 다른 시대의 사람들, 또는 같은 시대의 다른 사람들, 심지어는 같은 사람이 서로 다른 시기에 따라 왕왕 서로 다른 편집본을 내놓는다. 이는 역사 인식의 객관성을 어떻게 반영하는 것일까? 그는 모든 사람의 지식 구조가 동일하거나 유사하고, 사실을 취하는 관점, 길이, 깊이, 목적 등의 기준(표준)이 동일하거나 유사하다면, 동일한 사실에 대한 이해가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역사가의 지식이 포괄적이고 실천 경험이 풍부할수록, 역사를 정확하게 이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잃어버린 고서를 단번에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명당경』 편찬 성공 역시 고대와 선대 선인들의 거듭된 실패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낸 성과였다). 연구자들이 아무리 주관적으로 노력하더라도 원본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할 수밖에 없다. 원본을 100% 복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실 또한 단번에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현재의 이해 수준과 수단으로는 절대적으로 정확한 역사적 그림(특히 먼 옛날의 역사)을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모든 왕조가 역사를 재구성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적 사실의 이해는 사료를 통해 이루어지며, 그 진위 여부는 반드시 고증을 거쳐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사료는 이른바 "孤证不立“(충분하지 못한 증거만으로는 성립될 수 없다)라는 말처럼 어느 정도 충분한 량을 필요로 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수집된 증거와 사실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검증된 증거와 사실의 양이 충분한지에 달려 있다. 역사적 진실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가는 관련 학문 분야뿐만 아니라 고대인의 사고방식과 그들이 사고를 표현하는 데 사용했던 상징 체계에도 정통해야 한다.
1.2 부분과 전체
동의학의 발전은 다양한 내외부적 요인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이는 하나의 연속된 부단한 과정이며, 단편 하나하나의 고립된 과정이 아니다. 따라서 특정 사건들은 전체의 맥락 속에서만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1.2.1 특정 사료는 특정한 역사적 배경 속에 놓고 고찰해야 한다
역사 연구에서는 특정 사료를 특정한 역사적 배경에서 분리하면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 풍시를 뜨고, 이어 복토를 뜨고, 이어 독비, 이어 양 슬안, 이어 삼리, 이어 상렴, 이어 하렴, 이어 절골을 뜨니 모두 8곳이다(<千金要方>)
이 뜸 처방은 <千金翼方> <外台秘要方> <医心方> 등에도 나오는데, 원 처방은 <三家脚气论>에 나오는 것이다. 이 처방에 나오는 독비와 슬안은 서로 다른 혈자리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독비를 외슬안혈로 알고 있지만, 같은 처방에 두 혈자리 이름이 포함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송나라 이전에는 독비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위치와는 다른 곳에 위치했으며, 슬안과 전혀 다른 혈자리였다.
피를 토하고 오한과 열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면, 어제를 사하고 척택을 보한다.
자궁에 큰 산증과 징가 적취가 있어 생식기를 자극하여 통증을 유발하고, 위아래로 쓴 것을 토하고 설사가 나오면, 척택을 보하고 태계 수양명 촌구(寸口)를 모두 보한다.
열이 나고, 불안하고, 발이 차고, 땀이 많이 나는 경우에는 먼저 연곡을 취하고 이어 태계, 대지간 동맥을 취하며 모두 먼저 보한다.
위궐로 신체가 불인하고 수족이 편소해지면, 경골을 취하고 후에 중봉 절골을 취하며 모두 사한다.
痉병에는, 먼저 태계를 취하고, 그다음 태창의 원(원혈?)을 취한다.
곽난으로 설사가 나오는데 알지 못한다면, 먼저 태계를 취하고, 그다음 태창의 원(원혈?)을 취한다.
가슴이 팽팽한 듯한 느낌이 들고, 심한 경우 손을 교차하며 눈이 어둡고 갑자기 비증으로 숨이 차면, 경거와 천부에 자침하는데, 이를 대수(大俞)라 한다.
목구멍이 막히고 가슴이 마구 치밀어오르면, 만자 충맥을 취하고, 이어 삼리 운문을 취하며 모두 사한다.
열병으로 먼저 머리가 무겁고 이마가 아프고… 구토를 해도 나오는게 없이 힘들면, 먼저 삼리를 취하고, 그다음 태백, 장문을 주치한다.
위 내용은 『갑을경』에 기록된 명탕경의 경혈 주치의 내용이다. 여기서 공통된 특징은 각 질환에 대해 여러 혈자리를 언급한다는 점이다. 이 내용을 원래 맥락에서 분리되어 지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질환들이 결국에 어떤 혈자리에 귀속되는지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니다. (원래 『명탕경』에서는 이러한 다혈의 주치 병증은 모두 하나의 혈자리로 귀속된다고 기술되어 있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학질은 해가 서쪽으로 질 때에 임읍으로 주치한다.
<갑을경>에는 "임읍"이라는 혈자리가 두 개 있다고 알고 있다. 두부에도 있고 족부에도 있다, 그렇다면 위의 내용만으로 이 증상이 어떤 임읍혈과 연관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동명혈 외에도 <갑을경>에는 4개의 동명혈이 더 있다. 이들 5개 동명이혈의 주치병증에 대한 업급이 <갑을경> 권7~권12에 무려 39차례 등장한다. 어떻게 각각을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사실 원문의 원래 위치로 되돌려 놓으면 해결될 수 있다.
이런 식의 문제는 고대 침술 문헌 곳곳에서 니티난다. 특히 침술 문헌을 편찬할 때 이들 조문이 원래의 맥락에서 벗어나 그 본래의 의미를 잃게 된 것이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침술 문헌에서 발생하는 많은 오류는 이전 문헌을 편찬하고 재편집할 때 발생하는 이러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침술 문헌에서 사료를 수집할 때, 검증하기 어려운 출처를 발견하면 항상 원본을 확인하고, 문맥에서 벗어나 문헌에서 사료를 직접 절취해서는 안된다.
1.2.2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완전하고 정확한 이해는 전체론적 접근에 달려 있다.
역사 연구에서 이러한 현상은 흔히 나타난다. 여러 연구자들이 동일한 역사적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각각의 관점에서 ‘유력’한 문헌적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어느 누구도 다른 관점을 설득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현상의 가장 흔한 이유는 (제한된 조건이나 각자의 선입견으로 인해) 사료를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검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연구자들은 방대한 단편적인 자료에서 근거가 될 만한 증거만을 자의적 또는 의도적으로 골라낸다. 이처럼 단편적이고 미시적인 사실만을 사용하여 역사 발전의 총체적인 과정을 검토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쉽게 왜곡할 수 있다.
그는 <中国针灸学术史大纲> 4편 "침구 문헌의 기본적 특징"에서, 기존 침구사학계에서는 대부분 당나라 이전에는 뜸법이 널리 성행한 반면, 침법은 두드러지지 않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는 특정 유형의 기존 중국 의학 문헌(처방서)에 대한 제한적인 검토에만 기반한 것이었으며(심지어는 그러한 문헌에 수록된 침구술 문헌의 원칙에 대한 진지한 고찰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시기의 모든 침술 문헌을 전면적으로 검토한다면 완전히 다른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더욱이, 경혈과 경락의 기원(경혈과 경락 중 어느 것이 먼저였는가)에 대한 질문은 중국 의학사에서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었다. 각 관점 모두 "유력한" 문헌적 증거를 인용하지만, 어느 쪽도 서로를 설득할 수 없다. 실제로 관련 사료를 전면적으로 검토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자주 읽는 공통적이지만 중요한 사료, 즉 络脉(脉)과 诊络(脉口)、刺络点(络穴)의 세 가지가 관련한 문헌(이는 경맥과 경혈의 관계룰 보여주는 하나의 축소판인데)을 한 조문도 주의깊게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없었다. 또한 명대에 자법 관련 문헌이 풍부하지만, 이는 피상적인 현상일 뿐이며, 이를 통해 명나라 때에 침자법이 크게 발전하거나 진보했다는 식으로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그는 평소 중의학 간행물의 원고를 검토할 때, "침구학 업적(또는 특징)"으로 시작하는 책이나 저자의 제목을 가진 논문을 많이 보았다. 예를 들어, <千金要方> <千金翼方>(또는 손사막)의 침구학 업적(또는 특징), <外台秘要方>(또는 王焘)의 침구학 업적(또는 특징), <铜人腧穴针灸图经>(또는 王惟一)의 针灸学成就(또는 특징), <圣济总录>의 침구학 업적(또는 특징) 등과 같은 문장을 볼 수 있다. ... 그들은 <천금요방> 속의 침구 문헌이 손사막의 것이 아니고, 또 <천금익방>의 침구편은 주로 <천금요방> 각 권의 침구 문헌을 편집한 것이다(그외 당나라 초기 문헌 소량 추가). 또 <외대비요방>의 침구 문헌도 주로 <천금방>에서 편집되었으며, <동인수혈침구도경>은 주로 <태평성혜방>과 <외댜비요방>의 침구 편을 각색한 것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글들이 제가 검토한 원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는 중의학사 연구의 현재 전문화 수준이 높지 않거나 중의학사 및 침술 연구의 전반적인 수준이 높지 않다는 것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
이러한 연유로 그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일반적으로 특정한 책이나 문제를 고립적으로 연구하지 않았다. 역사 연구의 첫 단계인 사료 수집에서 그는 기원에서부터 흐름까지 또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론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다. 침구술 사료에 집중하는 동시에, 그는 중국 의학 문헌 전체(특히 송나라 이전의 고전)와 기타 관련 문서도 검토하여 침구술 사료 데이터베이스의 완전성과 신뢰성(“全”과 “真”)을 최대한 확보했다.
1.2.3 역사원류학(史源学) 연구는 전체론적 접근 방식의 한 예이다.
고대 의학 문헌의 출처를 확인할 수 없다면, 그 문헌적 가치 또한 확인할 수 없어 의학사 연구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명나라 초기의 누영(楼英)의 『医学纲目』은 명나라 이전의 중요한 의학 문헌들을 다수 편집했는데, 그중 일부는 현재 유실되었다. 사용된 판본은 모두 송나라와 원나라의 희귀본이어서 매우 높은 문헌적·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오랫동안 의학사 문헌 연구(유실된 문헌의 편집 및 정리 포함)에 이 저작을 활용한 연구자는 거의 없었다.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저작판에서 인용 출처를 나타내는 단어가 단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 의학 문헌에 익숙하지 않은 연구자에게는 이 단어 하나만으로 원문을 파악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같은 시기의 대작 『보제방(普齊方)』 또한 인용 방식이 매우 복잡하여, 인용서명의 출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혹은 다른 책을 인용하면서 같은 서명을 사용하여서, 책이 가지는 매우 높은 문헌적 가치를 갖추지 못하였다. 또 다른 예로 당나라 초기의 <천금요방>을 들 수 있다. 이 책은 당나라 이전의 의학 문헌을 풍부하게 수집하여. 현재 일실된 당나라 이전의 침구술 문헌이 거의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출처를 밝히지 않아, 이 책이 편찬자인 손사막의 의학적 사상과 임상 경험을 요약한 것이라는 오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이는 중의학 문헌에 대한 역사원류학 연구가 여전히 취약함을 보여준다.
물론, 일부 연구자나 연구 프로젝트의 경우, 거시적 관점에서 벗어나 특정 맥락 내의 특정 개인, 사건, 장소, 사물 등에 대해 상세하고 포괄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용인될 뿐만 아니라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고증을 특징으로 하는 이러한 형태의 역사학은 "미시사학(microhistory)"라고 불리며, 거시사학과 상호 작용하고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 거시사학에서 미시사학으로, 그리고 미시에서 거시로 라는 순서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순서를 거꾸로 하면 필연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도 그 성과는 적을 것이다.(계속)
*참고자료
黄龙祥关于史学方法论的思
https://blog.sciencenet.cn/blog-279293-1499741.html
*이하 참조
-'황용상'의 침구술 의사학의 연구 방법1 : 역사란?(침구 의학사)(*본편임)
-'황용상'의 침구술 의사학의 연구 방법2 : 시료와 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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