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혈 주치의 형성(腧穴主治的形成)
中国针灸 2000 年第 11 期
黃龍祥:知名中醫學者,中國中醫科學院首席研究員。
(https://jtcma.org/wp/images/pdf/2000-11.pdf)
약성(藥性) 주치가 동의 약물 처방 치료의 기초라면, 경혈 주치는 당연히 침구 선혈 처방의 근거이다. 한약의 주치가 주로 역대 의사들의 임상 실천 총결에서 비롯된 것처럼, 경혈의 주치도 역대 침구 의사들의 많은 실천 경험의 결정체를 포괄한다.
1. 임상 실천 경험의 총결산.
고대 침구술의 경혈 주치의 형성 과정을 고찰함에 있어서는 임상 실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병변의 국소 또는 인접 부위의 경혈을 취하여 해당 병증을 치료하는 경험의 축적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경혈이 멀리 떨어진 부위나 전신성 질환을 치료하는 것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1.1 맥진으로부터 유래
맥진 증후군의 침구술 치료는 상당 기간 동안 직접 뜸을 뜨고 진맥하여 치료를 해 왔고, 그 결과 그 진맥 부위가 점차 침뜸의 치료 부위인 경혈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경혈의 초기 주요 치료 증상은 원래의 맥진 증후군에서 직접 비롯된 것이다. 가장 전형적인 예는 십이맥구에서 변천한 십이"경맥혈"[1]과 十五診絡 부위에서 변천한 십오락혈을 들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경혈의 주치 병증은 초기에는 모두 해당 맥구의 진맥(诊脉)과 진락 (診絡)의 병태에서 직접 유래하였다. 예를 들어 족궐음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예 1 : 《영추·경맥》의 족궐음 "是動"병후
是動則病으로 요통은 뒤로 젖힐 수 없으며 남자는 산증(疝)이 있고 여자는 少腹腫이 있다. 심하면 목구멍이 마르고 얼굴이 하예진다.
《명당경》의 '족궐음'혈의 주치.
태충혈의 주요 치료 : 남자 산증, 여자의 少腹腫 , 요통, 인후 건조, 얼굴색이 검게 됨
예 2: 《영추·경맥》 족궐음 락맥의 증후
족궐음지별, 이름은 여구, 내과 상 5촌. 갈라져서 소양으로 달리고 ... 그 병기가 역행하여 고환종으로 졸산증이 되는데, 실하면 뻗뻗하게 길어지고 허하면 심하게 가렵다.
《명당경》족궐음 락혈의 주치
여구 : 족궐음지락, 내과 상 5촌, 갈라져서 소양으로 달린다. 실하면 뻗뻗하게 길어지고 허하면 심하게 가렵다. 기역이면 [즉] 고환종 졸산증이 된다.
위의 두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족궐음 맥구 '시동' 병과 '족궐음'혈('태충' 혈에 해당)의 주치, 족궐음 락혈의 증후군과 족궐 음 락혈의 주치는 병증이 같을 뿐만 아니라 문자도 일맥상통하여 뚜렷한 상동 관계를 가진다. 기타 사례는 졸저 '중국침구 학술사대강'(華夏출판사, 2000년)을 참조하라.
사실, 진맥처에서 진화해 온 모든 경혈, 초기의 주치 병증은 모두 그 해당 병후의 진맥에서 직접 비롯되었다. 예를 들어, 《내경》에 따르면, 수태음맥의 진맥 부위에는 촌구맥 외에도 "천부맥"(天府脉)이 있다.
수태음의 본은 촌구 중에 있고 표는 액내에서 동한다(영추·위기). 액하동맥, 臂太陰으로 천부라 이름하였다 ... 暴癉(앓을 단)이 안으로 역행하여 간과 폐가 서로 싸우고, 피가 코와 입으로 넘치면 천부를 취한다. 이것이 大牖五部이다(영추·한열병). 위의 《영추경》 2편에 기록된 수태음의 표맥은 모두 '액내동맥'이며, 이 맥의 이름을 '천부'라 하는데, 그 중 《한열병》편에는 이 맥의 진료 병후도 기록되어 있다.
(*大牖五部.. 人迎、扶突、天牖、天柱、天府의 5혈을 말하며, 頭痛、暴瘖、暴聾、拘攣、癲癇 및 口鼻出血등의 병증을 치료한다)
그러면 이 법칙에 따르면, 《명당경》에 기록된 "척택"과 "천부"의 주치 병증에는 반드시 해당 동맥의 맥진 병후가 포함되어 있다. <명당경>에는 '천부' 혈의 주치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즉 主咳,上氣,喘不得息,暴癉內逆,肝肺相搏,鼻口出血이라 했는데, 이는 大輸,身脹,逆息不得卧를 이르는 것이다. 風汗出,身腫,喘喝多唾,恍惚善忘,嗜卧不覺 등. 위의 《명당경》의 문에는 이미 수태음 "시동"병이 포함되어 있지만, 아직 전형적인 문자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는 《명당경》 편집자의 실수로 보인다. '경거' 혈의 주치증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볼 수 있다 : 胸中膨膨然,甚則交兩手而瞀,暴癉內逆,刺經渠及天府,此謂之大輸(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심하면 두 손을 맞잡고 잘 보지 못하며, 暴癉이 내역하면 경거와 천부를 자침하는데 이를 大輸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통상의 전형적인 수태음 '시동'병의 문자는 아니며, 《명당경》 편자는 이런 식의 다혈 침구방의 주치 병증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그 중 한 혈에만 분류한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 "시동"병은 일반적으로 해당 경맥의 "경맥혈"을 다수 취하여 치료하기 때문에, 위에 언급한 주치증은 "수태음"인 경거혈 아래로 분류된다.
경혈의 주치는 한때 맥박을 진단하는 데 사용되었던 체표 맥동처의 진찰과 병후 치료 외에도, 주로 경맥의 진락(診絡)과 자락(刺絡) 병증에서 비롯된다. 《명당경》에는 전형적인 "십오락혈"의 주치 외에도 '別絡' '大絡' 등의 혈이 명시되어 있거나 이러한 글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주치 병세에는 분명히 낙맥 병세의 특징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경혈의 주치의 적어도 일부는 그 태생에서 비롯된 낙맥 병세이다.
일반적으로, 《명당경》에 기록된 '動脈中', '大脈中', '大絡' 등의 경혈(특히 팔꿈치 이하 경혈의 경우, 그 주요 병증은 멀리 있는 원위부나 전신 병증이 주를 이룬다)은 모두 일찌기 진맥 부위로 사용되어 왔으며, 이러한 경혈의 초기 주치병증은 모두 원래 맥의 진단과 치료에서 직접 유래하였다. 주의할 점은, 우리가 현재 이해하고 있는 '경혈'이라는 개념은 하나의 확실한 지점을 의미하며, 맥(체표 맥동처 및 診絡處)에는 일정한 길이가 있고, 그 부위는 사람에 따라 일정한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적지 않은 혈이 같은 이름의 '맥'에서 진화했지만, 두 혈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 "태연맥"은 같은 이름의 "태연" 혈뿐만 아니라 "경거" 혈도 포함한다. 마찬가지로 "천부"와 "협백"혈도 "천부맥"의 범주에 속한다. 또 다른 예로 '함염', '현리', '현로'는 모두 '顳顬動脈'(측두동맥)에서 파생된다. 이것들은 모두 같은 맥의 혈에서 비롯된 것이며, 초기의 주치증도 동일하지만, 나중에야 점차 분화가 이루어졌다.
1.2 질병 반응점에 대한 인식에서 유래
현대 침구술의 임상 관찰에 따르면, 특정 병리 상태에서 특정 체표 부위에 명백한 압통점 또는 기타 성질의 반응점이 나타나며 이러한 반응점을 누르면 환자는 명백한 통증 반응을 나타내거나 통증이 즉시 경감된다. 이들 부위에 자침하거나 뜸을 떠서 왕왕 좋은 치료효과를 얻게 된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옛사람들도 관찰했을 것이고, 《내경》에서 이와 관련된 명확한 기록을 볼 수 있다.
灸譩譆, 譩譆在背下俠脊傍三寸所, 厭之, 令病者呼譩譆, 譩譆應手. ( 《素問·骨空》)
(의희에 뜸을 뜨는데, 의희는 배하 협척 외방 3촌처이고, 누르고 의희라고 소리치게 하면 의희가 손에 반응한다)
邪客於足太陽之絡,令人拘攣背急,引脅而痛,刺之從項始,數脊椎夾脊,疾按之應手如痛,刺之傍三,立已… …(《素問·繆刺》)
사기가 족태양의 락에 들면, 경련을 일으키고 등이 뻣뻣해지며 옆구리가 당기고 아프면, 목에서부터 자침을 하는데 몇개의 척추 협척을 빠르개 눌러 손에 통증처럼 느껴지면 외방 3촌에 자침하면 바로 낫는다 …(《素問·繆刺》)
사기가 폐에 들면 피부 통증, 한열, 천식, 땀, 기침하면 어깨와 등이 움직이는 증상이 나타난다. 어깨의 중외수, 등의 三節五藏(一本이 五椎 또는 五節이 된다)의 외방을 취하여, 손으로 빠르게 눌러 쾌연하게 하여 자침하고 결분 중앙을 넘겨 취한다(<영추·오사>).
황제가 기백에게 물었다. "오장의 수혈이 배부에서 나온다는 것에 대해서 듣고자 한다." 기백왈: 흉중의 大腧는 杼骨의 단이고, 폐수는 3초 사이이고, 심수는 5초 사이이고격수는 7초 사이이고, 간수는 9초 사이이고, 비수는 11초 사이이고, 신수는 14초 사이이며, 모두 협척에서 3촌 나간 곳이다. 얻어 느끼고자 하면 그 곳을 눌러 응하여 통증이 풀리면 곧 수혈이다. 뜸을 뜨면 가하고 자침은 불가하다(《靈樞·背腧》)
위의 명확한 기록이 설명해 주는 것은, 이들 경혈 주치는 고대인의 질병 반응점 출현 부위, 특성 파악 및 이러한 반응점(또는 부위)을 자극하여 병변에 미치는 치료 효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환자에게 반응점을 찾아 뜸을 뜨는 이 방법은 한나라 이후에도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유행하였으며, 당대 초 손사막의 《천금요방》에는 오촉 지역에서 유행한 이런 식의 취혈법이 기록되어 있다.
통증에 대한 현대의 진단 및 치료 실행에서 특정 부위의 통증은 직업, 성별, 연령의 차이, 병인의 동일 여부에 관계없이 가장 명백한 압통점이 나타나는 부위가 대부분 동일하거나 유사하며 이러한 '가장 아픈 지점'의 위치는 혈자리와 매우 일치하며 이러한 통증에 민감한 혈자리에 혈위 주사를 놓으면 좋은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다.[2] 한편,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다른 일부 질병은 인체의 특정 부위에서도 압통점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러한 압통점은 중국 침구 '혈자리'와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압통점에서 혈위주사를 놓는 것은 관련 질병에 좋은 치료 효과가 있다. 이 모든 것은 임상적 관점에서 입증되었다. 질병 상태의 다양한 반응점은 고대인들이 '경혈' 개념을 형성하고 경혈 주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요약한 경혈 주치는 비교적 견고한 실천적 기초를 가지고 있으며, 현대 임상 연구에서도 확인되었다.
2 중의학 이론의 유추
2.1 경락학설에 의거한 유추
경혈이 경맥의 "맥기가 발하는 곳"으로 여겨질 때, 경혈의 주치는 경맥의 병후(적어도 《황제명당경》의 경혈 주치는 이와 같다)의 영향을 계속 받아왔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이 둘의 관계를 "經脈所過,主治所及"으로 정리했다. 이는 어떤 경맥의 혈은 경맥이 지나온 부위의 병증을 주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규칙이 존재한다면, 경혈의 주치는 매우 간단해진다. 그러나 현존하는 고대 경혈 문헌을 보면, 사지 팔꿈치 무릎 아래의 오수혈과 낙혈의 주치만이 해당 경맥 증후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다른 부위의 경혈 주치는 해당 경맥 증후군과 통일성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부위의 경혈 주치의 차이는 어떻게 형성된걸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경맥병후 중 "시동"병은 직접 십이맥구의 진맥병후에서 비롯되며, 한대 이전에 이러한 병후에 대해 대부분 맥구처에 직접 자침하거나 뜸을 떠서 치료하였다[4]. 따라서 십이맥구는 그에 상응하는 십이경맥혈로 진화하였다. 즉, 경맥병후의 "시동"병은 일반적으로 해당 맥구의 경혈에서만 주치된다. 다시 말해 맥구에 위치한 소량의 경혈만이 해당 "시동"병을 주치할 수 있다. 그러나 《명당경》에서는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시동"병의 병증은 종종 사지 팔꿈치 무릎 아래의 오수혈과 낙혈의 주치증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첫째, 한나라 이전에 '경맥혈'(또는 경맥 맥구)로 구성된 침구방이 상당한 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처방의 '경맥혈'을 식별할 수 없거나 식별할 수 있었지만 관련 경혈과의 엄격한 대응 관계를 구축하지 못해 경혈의 주치를 귀납할 때 일정한 임의성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 《영추·본수》는 이미 사지부의 오수혈을 해당 11개의 경맥에 포함시켰다. 오수혈이 이미 '경혈'에 포함되었으므로, '경맥혈' 측의 주치 병증은 자연스럽게 해당 오수혈에 포함되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서로 다른 의가들이 '경맥혈'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면서, 원래 '경맥혈'이 주로 치료하는 일부 병증이 해당 오수혈의 주요 증상에 직접 들어가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영추·잡병》에서는 " 喉痹로 말을 할 수 없으면 족양명을 취하고, 말을 할 수 있으면 수양명을 취한다"고 했다. <명당경>의 수양명경의 오수혈, 원혈, 낙혈, 그리고 郄혈은 모두 '후비'를 치료하는 것이 되고, 결국 '경맥'편에도 수양명경의 '所生病'에 '후비'가 추가된다. 이렇게 되면 사지 팔꿈치 이하의 경혈에서 오수혈과 다른 비특정혈의 주치의 차이가 더욱 커지게 된다.
우연한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경혈주치의 큰 차이를 형성하는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 고찰할 수 있게 되었다.
《영추·邪客》에 "手少陰之脈獨無腧"이라 했다. 이는 《사객》편이 성립될 당시 수소음맥에 경혈이 없었거나, 혹은 '수소음'혈 외에 다른 혈이 수소음경에 편입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객》편은 또 이렇게 말한다. "외경병은 장하고도 병이 되지 않으므로, 손바닥 뒤의 예골 단을 단독으로 취한다." 곧 수소음맥의 맥구처이다. 《소문·平人氣象論》에 이르길, "수소음 맥동이 심한 것은 임신이다"라고 했고, 王冰의 주에서는 "수소음맥은 장후의 함몰 중앙이고 소지가 동하여 손이 응하는 곳이다. 《영추경》에, 소음에는 수혈이 없다했는데 그렇다면 심에는 병이 없다는 말인가? 기백이 이르길, 외경병은 장하고도 병이 되지 않으므로 그 경맥의 장후 예골의 끝에서 취한다 했으니, 이를 이르는 것이다. 이 수소음 맥구는 나중에 "수소음" 혈로 변하며, 수소음경의 첫 번째 혈이기도 하므로 "수소음의 원"이라고 불린다. 명당경에 나오는 신문, 음극 두 혈에 상당한다. 《갑을경》 권3 "手少陰及臂"편에는 총 8개의 혈이 실려 있다. 그러나 수소음맥 맥구처에 위치한 "신문"과 "음극" 두 혈에만 주치병이 실려 있고, 나머지 6개의 혈에는 주치병이 없다. 이것이 우연한 현상일까? 갑을경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공교롭게도 이 6혈의 주치조문이 모두 빠진 것일까. 그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 왜냐하면 이 6개의 주치 조문은 분명히 6개 이상일텐데, 그것들 모두 같은 권이나 같은 편에서 볼 수도 없고, 동시에 결손될 확률도 너무 작기 때문이다. 그러나 唐代 楊上善《明堂經》 주본과 《외대비요방·명당》 권39에 수록된 수소음 8혈은 모두 주치증이 있다.
少沖:主熱病煩心,上氣,心痛而寒,善太息,煩滿少氣,悲恐善驚,掌中熱,肘腋胸中痛,口中熱,咽喉中酸,乍寒乍熱,手卷不伸,掌痛引肘腋(《外台秘要》卷三十九)。
少府:主煩滿少氣,悲恐畏人,臂酸,掌中熱,手卷不伸(《外台秘要》卷三十九)。
少府:主陰痛挺長,遺溺,小便不利,不可俯仰(《醫心方》卷二)。
神門:主遺溺,手及臂攣,嘔血上氣。瘧,心煩甚,欲得冷水,寒則欲處熱,熱中咽干,不嗜食,心痛,數噫恐悸,氣不足,喘逆短氣,身熱,狂,悲哭。胸滿膚脹,喉痹(《外台秘要》卷三十九)。
陰郄:主凄凄寒,咳吐血,逆氣,驚,心痛(《外台秘要》卷三十九)。
通里:主熱病先不樂,數日乃熱,熱爭則卒心痛,心中懊,數欠頻伸,心下悸,悲恐,頭痛,面赤無汗及顏,臂臑肘痛,實則支滿,虛則不能言,苦嘔,喉痹,少氣,遺溺(《外台秘要》卷三十九)。
靈道:主悲恐,心痛相引,瘛瘲,臂肘筋攣,暴喑不能言(《外台秘要》卷三十九)。
少海:主身熱,(疒亥)瘧,氣逆,呼吸噫噦,嘔吐,手臂攣急(《醫心方》卷二)。
極泉:主心痹,乾嘔穢,四肢不舉。心痛,渴而欲飲,為臂厥,嗌干(《外台秘要》卷三十九)。
이상 《외대》에 실린 '소부'혈 주치증과 '소충'혈 주증은 서로 중복되며, 楊上善注本《明堂經》에 실린 '소부'혈 주치증은 사실 족궐음 락혈 '려구'의 주치증이며, 극천혈 주증에 나오는 '心痛,渴而欲飲,為臂厥,嗌干'는 수소음경 '시동'병의 모든 증상이며, 경맥 '시동'병 증상은 일반적으로 상응하는 '경맥혈' 주증 속에서 볼 수 있고, 소해혈 주증에서는 '噦'를 빼고는 모두 신문혈 주증에서 볼 수 있다. 영도혈 주증도 모두 간사혈 주증에서 보이고, 통리혈 주증은 <소문 열론>의 심열병과 낙맥별 증세로 구성되며, <소문> 원방은 '수소음, 태양을 자한다'인데, 일반적인 규율로는 상응한 '경맥혈'인 신문 혹은 음극에 속하며, 낙혈의 주증은 아니다. 위의 8개혈의 주치 가운데서 진짜 의심이 없는 혈은 여전히 '수소음'혈인 신문과 음극 뿐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명당경'의 원래 모음에는 수소음혈 중 '신문'과 '음극'에만 주치증이 실려 있고 나머지 6개 혈은 주치가 없었을 것이다. 이 6개의 혈의 주치는 한대 이후 후대에 의해 차례로 보충되었으며, 분명히 그 보충의 근거는 주로 임상 실천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경맥혈'이 경혈의 선행자였음을 반영하며, 이들의 주치는 직접적으로 경맥 병후인 '시동' 병에서 비롯되었다.
연구에 따르면 '명당경' 사지부 경혈은 다음과 같은 규칙을 가지고 있다.
① 오수혈과 낙혈은 모두 해당 경맥과 오장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 대부분의 '낙맥혈'과 '경맥혈'의 주증은 유사하다.
② 그런 것들이 '동맥 속'의 그곳, 특히 해당 경맥의 '표'맥이 되었던 그런 것들, 진맥부위로 쓰이는 경혈은 어떤 상응한 경맥의 병증이나 소속된 오장병도 치료할 수 있다.
③ 나머지 경혈은 어느 부위에 있든 간에 주로 국소 병증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며 주치증은 매우 단순하다.
사지혈의 주치증은 위의 규칙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 대부분 다양한 경락과 경혈 이론의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양계', '대돈', '곡천', '승근', '승부' 등의 혈에서 모두 낙혈의 독특한 낙맥 허실을 근거로 진단 및 치료하는 병증이 나타난다. 그 중 양계혈에서 "虛則氣鬲滿" 또는 수양명 낙혈 주증에서 잘못 기록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각 혈의 주증은 출처가 불분명하며, 이는 당시 낙혈이 이미 15개 이상이었음을 시사한다(명당경에서 명확히 "낙혈"로 표기된 것은 이미 15개를 초과했다). 또 예를 들어, "현종" 혈의 주요 증상은 "腹滿,胃中熱,不嗜食,小兒腹滿不能食飲"인데, 모두 胃의 병증이지, 해당 족소양담경의 병후가 아니며, 경혈의 주치 규율과도 맞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이것은 후대의 귀경의 실수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명당경》에서 현종혈은 "족삼양락으로, 눌러 양명맥이 끊어지니 취한다"고 했기 때문에, 분명히 이를 족양명경혈로 간주한 것이다. 또한, 《명당경》 편자가 전대의 침구 처방을 처리할 때 발생하는 다양한 실수는 필연적으로 경혈 주치의 규칙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었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
2.2 장상학설에 근거한 유추
경혈 주치의 장상학설 성분은 배수와 모혈에 집중되어 있으며, 수모혈 주증도 동시에 장상학설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일부 상응하는 수모혈 주증은 여전히 매우 유사하며, 현재 간의 수혈과 모혈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期門 主痙,腹大堅不得息,咳,脅下積聚喘逆,卧不安席,時寒熱,心下堅,奔肫上下,脅下滿,不能轉展反側,目青而嘔,眩目,脹痹,腹滿,少腹尤大… …
肝俞 主痙,筋痛急互引,咳而脅滿急,不得息。咳引胸痛,筋寒熱,不得反側,腋脅與臍相引,目上視,眩,目生白翳,短氣,肝脹,少腹滿… …
현재 문제는 이들 경혈의 주치는 《명당경》 편자가 한나라 이전의 침구 처방 주치를 바탕으로 귀납한 것인가? 아니면 주관적으로 당시의 장상학설에서 직접 유추해 온 것인가?
현재 파악된 사료에 따르면, 전자의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 첫째, 한나라 이전의 장상학설이 아직 경락학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침술 임상 실천을 지도할 가능성이 낮다. 둘째, 한나라 이전의 장상학설 자체가 아직 성숙되지 않아 여러 이론이 공존하였으며, '오행설'의 성분도 매우 적었다.
오장육부의 배수혈의 주치가 중의학 장상학설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해 더욱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송 이전 각 의가에서는 장부의 배수혈에 대한 위치 차이가 컸지만, 모두 해당 장부의 병증을 주치했다. 이는 이러한 배수혈의 주치가 상당 부분 임상 실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해당 장부의 병리학적 증상에 근거하여 추측되었음을 충분히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경혈 주치 가운데에서 명백히 장상학설과 오행학설의 특징이 있는 것들은 대부분 주관적인 추측 성분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추측에 기초하여 고대인이 임상에 적용했을 때 일정한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이러한 치료 효과는 차례로 고대인의 원래 추측에 대한 긍정을 심화시켰다), 엄격한 임상 실험을 거치기 전에는 이러한 치료 효과가 완전히 혈을 자침하거나 뜸을 떠서 오는 효과에서 비롯되었는지 또는 혈의 고유한 효과에서 비롯되었는지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
2.3 기타 학설에 의거한 유추
사지오수혈, 낙혈, 원래의 진맥 부위에 위치한 경혈, 흉복부 모혈, 요배부 수혈이 원격 및 전신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명당경'에는 원격 부위 질환을 치료하는 경혈도 있다. 예를 들어, 두면부 혈의 주요 치료 병증은 비교적 단순하며, 일반적으로 머리, 뇌, 얼굴, 이목구비 등의 국소 병증이나 열병을 주로 치료한다. 그러나 후두부나 두정부의 일부 경혈은 비교적 먼 눈과 코의 병증을 치료할 수 있다. 고대인들은 이 두 기관이 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오장육부의 정기가 모두 눈으로 올라가 정이 되고 … 안으로 근골혈기의 정을 수집하여 맥과 연결하며, 위로는 뇌에 속하고 뒤로 항중으로 나온다(영추·大惑論). 족태양은 항을 통해 뇌에 들어가는 것은 目本에 속하니 이름하여 眼系라고 한다. 頭目의 고통은 항의 두 근육 사이에에서 취한다('영추·한열병'). 뇌는 髓의 바다이며, 그 수(혈) 위에 덮개가 있고, 아래는 風府가 있다(영추·해론). 고대인의 이러한 인식의 기원은 매우 일찍이 張家山 출토 漢簡《引書》에 기록되어 있다. "引目痛은 …두 눈의 내맥을 누르고 올라가서 항에 이른다". 따라서 《명당》에는 두정부 및 후두부의 혈이 실려 있다. 예를 들어, "백회", "전정", "뇌호", "낙각", "옥침", "천주", "풍부", "풍지" 등, 모두 目部 질환을 주치한다.
마찬가지로 고인들은 비강이 뇌와 통한다고 생각했다. '소문·기궐론'에, '담이 열을 뇌로 옮기면 辛頞鼻淵이 된다. 비연이란 탁한 콧물이 멈추지 않고 나오는 것이다."라고 했다. 《소문·解精微論》은 말합니다. "泣涕者,腦也;腦者,陰也;髓者,骨之充也,故腦滲為涕." 중의학에서는 비 출혈이 멈추지 않는 것을 '腦衄'이라고 하고, 비에 탁한 콧물이 멈추지 않고 나오는 것을 '腦漏'라 한다. 그러므로 "신정", "상성", "곡차"(일명 "鼻沖"), "승령", "풍부", "풍지", "뇌공" 등의 혈은 모두 비병을 치료한다.
사람들은 경혈의 주치에 대한 이해에 오랜 시간이 걸리며, 서로 다른 시기와 다른 유파의 의가들이 동일한 경혈의 주치에 대해 서로 다른 인식을 형성할 수 있다. 이러한 서로 다른 시기의 흩어져 있는 경혈 주치 문헌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요약한 것은 한대에 시작되었으며, 《명당경》은 이러한 총결산 작업의 결과이자 경혈 주치의 형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총결산 작업은 한나라 이전 의가들의 경혈 주치에 대한 인식 수준을 최대한 진실하고 전면적으로 반영하고 있을까?
《명당경》의 편자가 채택한 침구 치료 문헌은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의학 서적, 다른 體例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학적이고 엄격한 정리 방법이 없다면, 불가피하게 " 張冠李戴" "掛一漏萬"과 같은 실수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중국의 첫 번째 경혈 주치 정리의 전면성과 정확성에 일정한 영향을 받게 된다.
고찰의 결과: 《명당경》편자가 사용한 정리방법으로 총결산한 경혈 주치의 신뢰도는 주로 사용된 원시자료의 형식에 달려 있으며, 전반적으로 《명당경》편자가 단혈 침구방을 처리하는 신뢰도는 다혈방보다 훨씬 높으며, 구체적으로 원시문헌을 처리하는 신뢰도는 높은 것부터 낮은 것까지의 순서로 분석된다.
침구방이 혈명 및 부위를 표기한 경우 →침술방이 혈명만 표기한 경우 →침술방이 부위만 표기한 경우 → "경맥혈"로 이루어진 침구방
현재 문제는 《명당경》에 사용된 원시 문헌이 대부분 소실되어 《명당경》에 포함된 349개의 경혈의 모든 주치 조문의 원래 출처를 일일이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위의 방법을 사용하여 모든 경혈의 모든 주치의 신뢰성을 결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명당경》의 경혈 주치의 형성 과정에 대한 다양한 전형적인 사례 분석을 통해 몇 가지 기본 규칙을 요약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러한 규칙을 파악하면 《명당경》의 경혈 주치의 신뢰도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전반적으로 중국의 첫 번째 경혈 주치의 요약은 방법론이 엄격하지 않아 귀납 결과가 왜곡되었다. 동시에 이러한 정리 방식은 처음에는 경혈 주치와 침구 임상 실천 사이의 거리를 벌렸고, 《명당경》의 영향이 점점 커짐에 따라 이러한 정리 방식은 후대의 경혈 정리의 패러다임이 되어 경혈 주치의 총결산과 침구 임상 발전 수준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커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명당경》에서 직접 실천 경험에서 나온 경혈 주치의 총결산조차도 그 신뢰도가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같은 의서의 침구방에서 귀납한 경혈 주치의 신뢰도가 비교적 높다. 만약 어떤 경혈의 주치가 한 이전의 다른 유파의 의적 침구방에서 나온다면, 이러한 문제가 불가피하게 존재할 것이다.
첫째, 동명이혈의 혼동, 혹은 각 의가의 동일혈에 대한 위치가 다르거나, 비록 문자상으로는 서로 다른 문헌에서 어떤 혈에 대한 위치가 같지만, 실제로는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한대 이전에는 혈을 취할 때 일반적으로 折量法을 사용하지 않았고(더 말할 것도 없이 통일된 절량법도 채용되지 않았음), 주로 당시의 척도로 실제 측정했기 때문이다.
둘째, 동일한 경혈에 대한 침술 방법과 침술의 양은 의사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치료 효과의 비교 가능성이 낮다. 이것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나 선인의 간접적인 실천 경험을 채택할 때 고려해야 할 기본적인 요소들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요약 결과는 진실하지 않고 불완전할 것이다.
그래서 비록 《명당경》이 나온 후 천여 년 동안 침구 임상 선혈 처방의 기준과 침구 경혈 교육의 근거가 되었지만, 이 책에 존재하는 여러 문제와 몇 가지 불확실한 요소로 인해 오늘날 그 기록된 경혈 주치에 대해 엄격한 임상 실험 연구를 통해 그 과학적 가치를 확정해야 한다. 문헌이 정리될 때마다 어느 정도의 "왜곡"이 나타나며, 한대의 이번 경혈 주치 정리도 예외는 아니다. 즉, 경혈 주치의 진화는 거의 경혈 주치의 형성과 동시에 발생한 것이다.
參考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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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侯湘.頭痛患者情感障礙的中介機制的探討.醫學與哲學,1999;(1):51.
4 黃龍祥.經脈病候考源.中華醫史雜誌,1994;24(4):219.
本文發表有《中國針灸》2000年第11期,版權歸作者所有。
如果說藥性主治是中醫方葯治療的基礎,那麼腧穴主治自然是針灸選穴處方的依據。正如中藥的主治主要來自歷代醫家的臨床實踐總結一樣,腧穴的主治也包含了歷代針灸醫家大量實踐經驗的結晶。
如果說藥性主治是中醫方葯治療的基礎,那麼腧穴主治自然是針灸選穴處方的依據。正如中藥的主治主要來自歷代醫家的臨床實踐總結一樣,腧穴的主治也包含了歷代針灸醫家大量實踐經驗的結晶。
臨床實踐經驗的總結
要考察古代針灸腧穴主治的形成過程,僅僅籠統地說來自臨床實踐是遠遠不夠的。一般說來,對於取病變局部或鄰近部位的腧穴治療該病症經驗的積累不難理解,那麼腧穴治療遠隔部位或全身性疾病的認識是如何形成的?
01來自脈診病候
對於脈診病候的針灸治療,在相當長的時期內都是直接刺灸診脈處治之,因而診脈部位漸漸演變成針灸治療部位——腧穴,這類腧穴早期的主治症便直接來自原先的脈診病候。最典型的例子是由十二脈口演變而成的十二「經脈穴」[1],以及由十五診絡部位演變而成的十五絡穴,這兩類腧穴的主治病症最初期都直接來自相應脈口的診脈、診絡病候。試以足厥陰為例說明如下。
例1:
《靈樞·經脈》足厥陰「是動」病候
是動則病腰痛不可以俯仰,丈夫疝,婦人少腹腫,甚則嗌干,面塵脫色。
《明堂經》「足厥陰」穴主治
太沖穴主治:男子疝,女子少腹腫,腰痛,嗌干,面塵黑。
例2:
《靈樞·經脈》足厥陰絡脈病候
足厥陰之別,名曰蠡溝,去內踝五寸,別走少陽……其病氣逆則睾腫卒疝,實則挺長,虛則暴癢。
《明堂經》足厥陰絡穴主治
蠡溝:足厥陰之絡,在內踝上五寸,別走少陽。實則挺長,虛則暴癢;氣逆[則]睾腫卒疝。
從以上2例可以看出,足厥陰脈口「是動」病與「足厥陰」穴(相當於「太沖」穴)主治、足厥陰絡脈病候與足厥陰絡穴主治不僅病症相同,而且文字也一脈相承,有著明顯的同源關係。其他各例詳見拙著《中國針灸學術史大綱》(華夏出版社,2000年)。
其實,所有由診脈處演變而來的腧穴,其最初的主治病症都直接來自相應的診脈病候。例如據《內經》記載,手太陰脈診脈部位除了寸口脈外,還有「天府脈」:手太陰之本,在寸口之中,標在腋內動也(《靈樞·衛氣》)。腋下動脈,臂太陰也,名曰天府… …暴癉內逆,肝肺相搏,血溢鼻口,取天府。此為大牖五部(《靈樞·寒熱病》)。以上《靈樞經》二篇所記之手太陰之標脈都為「腋內動脈」,此脈名曰「天府」,其中《寒熱病》篇還記載了此脈的診治病候。
那麼根據這一規律,《明堂經》所載「尺澤」、「天府」的主治病症必然包含有相應動脈的脈診病候。《明堂經》載「天府」穴主治如下:主咳,上氣,喘不得息,暴癉內逆,肝肺相搏,鼻口出血,此謂大輸,身脹,逆息不得卧。風汗出,身腫,喘喝多唾,恍惚善忘,嗜卧不覺。上述《明堂經》文中雖然已包含了手太陰「是動」病,但尚未見典型的文字,其實這是《明堂經》編者的失誤所致。在「經渠」穴主治症中可見如下文字:胸中膨膨然,甚則交兩手而瞀,暴癉內逆,刺經渠及天府,此謂之大輸。這是非常典型的手太陰「是動」病文字,而《明堂經》編者對於這種多穴針灸方的主治病症,一般只歸入其中一穴之下(詳見下文)。由於「是動」病一般多取相應經脈的「經脈穴」治療,故上述主治症便歸入了「手太陰」——經渠穴下。
腧穴主治除了來源於曾用於診脈的體表脈動處的診、療病候外,更多的還是來源於經脈的診絡、刺絡病症。在《明堂經》中除了典型的「十五絡穴」的主治外,還有一些註明「別絡」、「大絡」等穴,或者雖未註明這些字樣,但主治病候中明顯帶有絡脈病候的特徵,這些腧穴的主治至少有一部分直接源於其脫胎而來的絡脈病候。
一般說來,凡《明堂經》所載之位於「動脈中」、「大脈中」、「大絡」等腧穴(特別是那些肘膝以下腧穴,其主治病症以遠隔部位或全身病症為主者)都可能曾用作診脈部位,這類腧穴的最初主治病症都可能直接來自原先脈的診、治病候。需要注意的是,我們現在理解的「腧穴」概念是指一個確定的點,而脈(體表脈動處及診絡處)有一定長度,而且其部位可能因人而有一定的差異,故雖然不少穴由同名的「脈」演變而來,但二者並不完全等同。例如「太淵脈」除了包含同名的「太淵」穴,還包括「經渠」穴;同樣,「天府」、「俠白」穴同屬於「天府脈」範疇。又如「頷厭」、「懸厘」、「懸顱」同源於「顳顬動脈」。這些同出於一脈之穴,其最初的主治症也應當是相同的,只是後來才逐漸有了分化。
02來自對疾病反應點的認識
現代針灸臨床觀察發現,在一定的病理狀態下會在一定的體表部位出現明顯的壓痛點或其他性質的反應點,按壓這些反應點,患者或者出現明顯的疼痛反應,或者病痛即刻減輕;在這些部位針或灸,往往會取得很好的療效。對於這種現象古人也應當會觀察到,《內經》中即可見到這方面的明確記載:
灸,在背下夾脊傍三寸所,壓之令病者呼,應手(《素問·骨空》)。
邪客於足太陽之絡,令人拘攣背急,引脅而痛,刺之從項始,數脊椎夾脊,疾按之應手如痛,刺之傍三,立已… …(《素問·繆刺》)。
邪在肺,則病皮膚痛,寒熱,上氣喘,汗出,咳動肩背。取之膺中外腧,背三節五藏(一本作五椎又五節)之傍,以手疾按之,快然,乃刺之,取之缺盆中以越之(《靈樞·五邪》)。
黃帝問於岐伯曰:願聞五藏之腧,出於背者。岐伯曰:胸中大腧在杼骨之端,肺腧在三焦之間,心腧在五焦之間,膈腧在七焦之間,肝腧在九焦之間,脾腧在十一焦之間,腎腧在十四焦之間,皆夾脊相去三寸所,則欲得而驗之,按其處,應在中而痛解,乃其腧也。灸之則可,刺之則不可(《靈樞·背腧》)。
以上這些明確的記載說明,某些腧穴主治正是來源於古人對於疾病的反應點出現的部位、性質的把握以及刺激這些反應點(或部位)對於病變的治療作用。這種在患者身上按尋反應點以刺灸治病的方法在漢以後某些地域仍流行,初唐孫思邈《千金要方》即記載了在吳蜀之地流行的這種取穴法。
值得注意的是,在對疼痛的現代診療實踐中發現:一定部位的疼痛,不論職業、性別、年齡的差異如何,也不論病因是否相同,其最明顯的壓痛點出現的部位多相同或相近,而這些「最痛點」的位置與穴位有很高吻合度,在這些痛敏的穴位點上作穴位注射,獲得很好的治療效果[2]。另一方面,國內外的研究還表明:其他一些疾病,在人體某些特定部位也會出現壓痛點,而且這些壓痛點與中國針灸「穴位」有相關性,在這些壓痛點上作穴位注射對於相關病症有良好的治療作用[3]。這些都從臨床角度印證:疾病狀態的各類反應點是古人形成「腧穴」概念及確定腧穴主治的重要依據,以這種方法總結的腧穴主治有較堅實的實踐基礎,並為現代臨床研究所證實。
從中醫理論的類推01根據經絡學說類推
從腧穴被視為經脈「脈氣所發」之時,經穴主治便不斷受到經脈病候的影響(至少於《黃帝明堂經》之腧穴主治是如此),以至於後人將此二者的關係歸納為「經脈所過,主治所及」,意即歸屬於某一經之穴可主治該經脈所過部位之病症。如果存在這樣的規律,那麼經穴主治便非常的簡單。然而,從現存古代腧穴文獻來看,只有四肢肘膝以下五輸穴、絡穴的主治與相應經脈病候關係密切,其他部位的腧穴主治並不表現為與相應經脈病候的統一性。
那麼,不同部位經穴主治的差異又是如何形成的呢?
如前所述,經脈病候中的「是動」病直接來源於十二脈口的診脈病候,漢以前對於這些病候多直接刺灸脈口處治之[4],故十二脈口演變為相應的十二「經脈穴」,也就是說經脈病候的「是動」病一般只見於相應脈口處腧穴主治中,換言之,只有位於脈口處的少量腧穴才主治相應「是動」病。然而在《明堂經》中則可見到這樣的現象:「是動」病病症往往普遍見於四肢肘膝以下的五輸穴、絡穴主治症中。這種狀況可能由二種因素造成:
其一,漢以前由「經脈穴」(或經脈脈口)組成的針灸方佔有相當大的數量,對於這些方中的「經脈穴」如果不能識別,或者雖能識別,但沒有與相關的腧穴之間建立嚴格的對應關係,在歸納腧穴主治時便難免帶有一定的隨意性。
其二,《靈樞·本輸》已經將四肢部五輸穴歸入相應的十一條經脈,既然五輸穴已歸入「經穴」之列,則「經脈穴」方的主治病症自然被歸入相應的五輸穴中。
另一方面,不同醫家對「經脈穴」的不同理解,也使得一些本為「經脈穴」主治的病症直接入相應的五輸穴主症中。例如《靈樞·雜病》曰:「喉痹不能言,取足陽明;能言,取手陽明」。《明堂經》中所有手陽明經五輸穴、原穴、絡穴,還包括郄穴都主治「喉痹」,以至於《經脈》篇也在手陽明經「所生病」中增「喉痹」一症。這樣一來,四肢肘膝以下腧穴中,五輸穴與其他非特定穴的主治的差異越來越大。
因為一個偶然的事件,使得我們今天還能對形成腧穴主治這一巨大差異的具體過程加以考察:
《靈樞·邪客》謂「手少陰之脈獨無腧」,也就意味著在《邪客》篇成立之時,手少陰脈尚無腧穴,或者說除了「手少陰」穴外,還沒有其他穴被歸入手少陰經;故《邪客》篇又曰:「其外經病而藏不病,故獨取其經於掌後銳骨之端」。所指乃手少陰脈口處。《素問·平人氣象論》曰:「手少陰脈動甚者,妊子也」,王冰注曰:「手少陰脈,謂掌後陷者中,當小指動而應手者也。《靈樞經》曰少陰無輸,心不病乎?岐伯雲,其外經病而藏不病,故獨取其經於掌後銳骨之端。此之謂也」。此手少陰脈口後演變成「手少陰」穴,也是手少陰經的第一穴,故稱作「手少陰之原」。相當於《明堂經》所載「神門」、「陰郄」二穴所在。今檢傳世本《甲乙經》卷三「手少陰及臂」篇共載穴8個,然只有位於手少陰脈口處的「神門」、「陰郄」二穴載有主治病症,餘6穴均無主治症,這是不是一個巧合的現象呢?也就是說《甲乙經》在流傳過程中碰巧脫落了這6穴的全部主治條文。應當說這種可能性近乎零,因為這6穴的主治條文肯定不止6條,而且它們也不可能都見於同一卷同一篇,同時缺損的機率太小。然而唐代楊上善《明堂經》注本及《外台秘要方·明堂》卷三十九所載手少陰8穴均有主治症:
少沖:主熱病煩心,上氣,心痛而寒,善太息,煩滿少氣,悲恐善驚,掌中熱,肘腋胸中痛,口中熱,咽喉中酸,乍寒乍熱,手卷不伸,掌痛引肘腋(《外台秘要》卷三十九)。
少府:主煩滿少氣,悲恐畏人,臂酸,掌中熱,手卷不伸(《外台秘要》卷三十九)。
少府:主陰痛挺長,遺溺,小便不利,不可俯仰(《醫心方》卷二)。
神門:主遺溺,手及臂攣,嘔血上氣。瘧,心煩甚,欲得冷水,寒則欲處熱,熱中咽干,不嗜食,心痛,數噫恐悸,氣不足,喘逆短氣,身熱,狂,悲哭。胸滿膚脹,喉痹(《外台秘要》卷三十九)。
陰郄:主凄凄寒,咳吐血,逆氣,驚,心痛(《外台秘要》卷三十九)。
通里:主熱病先不樂,數日乃熱,熱爭則卒心痛,心中懊,數欠頻伸,心下悸,悲恐,頭痛,面赤無汗及顏,臂臑肘痛,實則支滿,虛則不能言,苦嘔,喉痹,少氣,遺溺(《外台秘要》卷三十九)。
靈道:主悲恐,心痛相引,瘛瘲,臂肘筋攣,暴喑不能言(《外台秘要》卷三十九)。
少海:主身熱,(疒亥)瘧,氣逆,呼吸噫噦,嘔吐,手臂攣急(《醫心方》卷二)。
極泉:主心痹,乾嘔穢,四肢不舉。心痛,渴而欲飲,為臂厥,嗌干(《外台秘要》卷三十九)。
以上《外台》載「少府」穴主治症與「少沖」穴主症相重,而楊上善注本《明堂經》所載「少府」穴主症實乃足厥陰絡穴「蠡溝」主治症;極泉穴主症中「心痛,渴而欲飲,為臂厥,嗌干」為手少陰經「是動」病的全部病候,而經脈「是動」病候一般都見於相應的「經脈穴」主症中;少海穴主症中除「噦」外,都見於神門穴主症;靈道穴主症又全部見於間使穴主症中;通里穴主症則由《素問·刺熱》心熱病與絡脈病候組成,《素問》原方為「刺手少陰、太陽」,按一般規律應歸入相應的「經脈穴」——神門或陰郄,而不是絡穴主症中。可見以上8穴主治中,真正沒有疑問的仍然只有「手少陰」穴——神門、陰郄,看來這不像是偶然的,可能《明堂經》原集手少陰穴中只有「神門」、「陰郄」載有主治症,其餘6穴無主治。這6穴的主治或由漢以後人陸續添補,顯然其增補的依據主要不是來自臨床實踐。同時從另一側面也反映出「經脈穴」是經穴的先行者,它們的主治直接來自經脈病候的「是動」病。
經研究發現,《明堂經》四肢部腧穴主治病症存在以下幾條規律:
①五輸穴、絡穴都能主治相應的經脈及其五臟病症。其中多數「絡脈穴」與「經脈穴」的主症相近;
②那些處於「動脈中」,特別是那些曾作為相應經脈之「標」脈,用作診脈部位的腧穴也能治療某些相應經脈病症,或所屬的五臟病症;
③其餘腧穴,無論其處於什麼部位,都以主治局部病症為主,主治症很單純。
四肢穴中主治症凡與上述規律不符者,多屬受不同的經絡、腧穴理論影響所致,例如「陽溪」、「大敦」、「曲泉」、「承筋」、「承扶」等穴中均見有絡穴中特有的根據絡脈虛實而診治的病症。其中除了陽溪穴中「虛則氣鬲滿」或系誤錄自手陽明絡穴主症外,其餘各穴主症出處不詳,這提示我們,在當時絡穴已不止15個(《明堂經》中明確注為「絡穴」者已超過15)。又如「懸鐘」穴主症為「腹滿,胃中熱,不嗜食,小兒腹滿不能食飲」,均為胃的病症,而不是相應的足少陽膽的病候,似乎與腧穴的主治規律不合,其實這是後人歸經的失誤所造成。因《明堂經》中懸鐘穴系「足三陽絡,按之陽明脈絕乃取之」,顯然是將其作為足陽明經穴看待了。此外《明堂經》編者在處理前代針灸方時所出現的種種失誤也必然會使得腧穴主治的規律不易把握(詳見下文)。
02據藏象學說類推
腧穴主治中所摻入藏象學說成分集中表現在背俞及募穴中,而且由於俞募穴主症同時受藏象學說的影響,有些相應的俞募穴主症還非常相近,現以肝俞、募為例比較如下:
期門 主痙,腹大堅不得息,咳,脅下積聚喘逆,卧不安席,時寒熱,心下堅,奔肫上下,脅下滿,不能轉展反側,目青而嘔,眩目,脹痹,腹滿,少腹尤大… …
肝俞 主痙,筋痛急互引,咳而脅滿急,不得息。咳引胸痛,筋寒熱,不得反側,腋脅與臍相引,目上視,眩,目生白翳,短氣,肝脹,少腹滿… …
現在的問題是,這些腧穴主治是《明堂經》編者根據漢以前的針灸方主治歸納而成呢?還是主觀地直接從當時的藏象學說類推而來呢?
根據現已掌握的史料來看,前一種可能性較小,因為首先漢以前藏象學說尚未與經絡學說發生直接聯繫,不大可能指導針灸臨床實踐;其二,漢以前藏象學說本身還不成熟,諸說並存,「五行說」的成分也很少。
關於五臟六腑之背俞穴主治受中醫藏象學說影響,從以下的事實可以看得更加明顯:宋以前各家對於臟腑背俞穴的定位出入頗大,而都主治相應臟腑的病症,這足以說明這些背俞穴的主治在很大程度上是依據相應的臟腑病理表現推測而來,而不是直接源於臨床實踐。
一般而言,腧穴主治中帶有明顯的藏象學說、五行學說特徵者多都帶有主觀推測的成分。儘管基於這種推測,古人運用於臨床也可能取得一定的療效(而這種療效反過來又加深了古人對原先推測的肯定),然而在沒有經過嚴格的臨床實驗之前,我們不能確定這些療效是否完全來自刺灸該穴的作用,或者是該穴所特有的作用。
03據其他學說類推
除了四肢五輸穴、絡穴、位於原診脈處的腧穴以及胸腹部募穴、腰背部俞穴能夠主治遠隔部位及全身性病症外,《明堂經》還有一些腧穴主治遠隔部位病症。例如頭面部穴主治病症較單純,一般都主治頭、腦、面、五官等局部病症,或治熱病,而後頭乃至項部的某些腧穴卻可主治距離較遠的目、鼻部病症。古人認為這兩個器官與腦密切相關。五臟六腑之精氣皆上注於目而為之精…裹擷筋骨血氣之精而與脈為之系,上屬於腦,後出於項中(《靈樞·大惑論》)。足太陽有通項入於腦者,正屬目本,名曰眼系。頭目苦痛取之在項中兩筋間(《靈樞·寒熱病》)。腦為髓之海,其輸上在於其蓋,下在風府(《靈樞·海論》)。古人的這一認識起源很早,早在張家山出土漢簡《引書》中就記載著:「引目痛… …壓兩目內脈而上循之至項」。故《明堂》載頭頂部及後頭部穴如「百會」、「前頂」、「腦戶」、「絡卻」、「玉枕」、「天柱」、「風府」、「風池」等均主治目部疾患。
同樣,古人認為鼻腔與腦相通。《素問·氣厥論》曰:「膽移熱於腦,則辛頞鼻淵。鼻淵者,濁涕下不止也」;《素問·解精微論》曰:「泣涕者,腦也;腦者,陰也;髓者,骨之充也,故腦滲為涕」。中醫稱鼻出血不止者為「腦衄」;鼻流濁涕不止者為「腦漏」。故「神庭」、「上星」、「曲差」(又名「鼻沖」)、「承靈」、「風府」、「風池」、腦空」等穴皆治鼻病。
人們對於腧穴主治的認識有一個漫長的過程,不同時期、不同流派醫家對於同一腧穴的主治可能會形成不同的認識。第一次將這些不同時期零散的腧穴主治文獻進行系統的整理、歸納則始於漢代,《明堂經》便是這次總結工作的結果,也可以說是腧穴主治形成的標誌。
那麼這次總結性工作是否最大限度地真實、全面地反映了漢以前醫家對於腧穴主治的認識水平呢?
由於《明堂經》編者所採用的針灸治療文獻來自不同的時代,出自不同的醫籍,有著不同的體例,如果沒有一種科學、嚴謹的整理方法,便不可避免地會出現「張冠李戴」、「掛一漏萬」之類的失誤,從而使得中國第一次腧穴主治整理的全面性、準確性受到一定的影響。考察的結果表明:《明堂經》編者所採用的整理方法總結出的腧穴主治,其可靠程度的高低主要取決於所採用的原始資料的形式,總體而言,《明堂經》編者處理單穴針灸方的可靠度要遠遠高於多穴方,具體分析其處理原始文獻的可靠度由高至低的排序為:
針灸方註明穴名及部位者→針灸方只註明穴名者→針灸方只註明部位者→由「經脈穴」組成的針灸方
現在的問題是,《明堂經》所採用的原始文獻大多已亡佚,不能一一考知《明堂經》所載的349個腧穴的所有主治條文的原始出處。因而也就不能用上述方法來判定所有腧穴所有主治的可靠度。然而通過上述對《明堂經》腧穴主治形成過程的各類典型例證的分析,不難歸納出一些基本規律,把握這些規律便可以對《明堂經》腧穴主治的可靠度有一個基本的判斷。總體來看,中國第一次腧穴主治的總結,由於其方法學上的不嚴密,而使得歸納的結果失真。同時這種整理模式一開始便拉開了腧穴主治與針灸臨床實踐之間的距離,而且隨著《明堂經》影響的越來越大,這種整理模式成為後代腧穴整理的一種範式,以至於腧穴主治的總結與針灸臨床的發展水平之間的距離越來越大。
另一方面,還應當看到,即使《明堂經》中那些直接來自實踐經驗的腧穴主治的總結,其可靠程度也不一樣,其中由同一家醫書中的針灸方歸納而成的腧穴主治可靠度較高。如果某一腧穴的主治來自漢以前不同流派醫籍針灸方,便不可避免存在這樣的問題:
其一,同名異穴的混淆,或者說各家對於同一穴的定位不同,或者雖然從文字上看不同文獻中對某一穴的定位相同,而實際上有差異,因為漢以前取穴沒有普遍採用折量法(更不用說採用統一的折量法),而是主要以當時的尺度實際測量;
其二,不同醫家對於相同腧穴的刺灸法及刺灸量可能不同,故療效的可比性較差。這些都是在採用他人或前人間接實踐經驗時所必須考慮的基本因素,不然我們的總結結果就不真實、不全面。
所以,儘管《明堂經》問世後在千餘年時間內成為針灸臨床選穴處方的準繩及針灸腧穴教學的依據,但由於該書存在的種種問題及某些不確定因素,今天對於其記載的腧穴主治必須進行嚴格的臨床實驗研究,以確定其科學價值。文獻每經過一次整理,都會出現一定程度的「失真」,漢代的這次腧穴主治整理也不例外,也就是說腧穴主治的演變差不多是與腧穴主治的形成同時發生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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