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백성 살린‘숨은 허준’ 많았다7
조선시대의 민중의(民衆醫)
-김명관 부산대교수/ 신동아(03/1월)
‘몽수전’에서 다산은 이헌길이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기억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으레 하는 말일 수 있지만 뒷날 그의 행적을 보면 빈말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생김새는 미남은 아니었던 듯 다산의 기억에 의하면 이헌길은 광대뼈가 튀어 나온 데다가 코주부였다고 한다.
이헌길은 원래 의원 가문 출신이 아니다. 그는 남몰래 ‘두진방(杜疹方)’을 보고 깊이 연구한 바 있었다. 영조 51년(1775)에 일이 있어 서울에 갔더니,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천연두가 돌았던 것이다. 이헌길은 그들이 불쌍하였으나 상중이라 어찌할 수가 없어 묵묵히 돌아섰다. 상중이라면 이런 궂은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다 홀연 깨달았다.
“나는 병을 고칠 수 있는 의술을 가지고 있는데도 예법에 구애되어 모른 체하고 떠나간다는 것은 불인(不仁)한 것이다.”
이 장면은 흡사 ‘마태오복음’의 한 부분과 같지 않은가?
예수께서 다른 데로 가셔서 그곳 회당에 들어가셨다. 거기에 마침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어도 법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하고 넌지시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양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고 하자. 그럴 때에 그 양을 끌어내지 않을 사람이 있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라도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그 불구자에게 “손을 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펴자 다른 손과 같이 성해졌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물러가서 어떻게 예수를 없애버릴까 하고 모의하였다.(‘마태오복음’ 12장)
어느 사회나 율법주의자들은 있는 법이다. 예(禮)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가, 사람이 예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헌길의 내부에 예수와 부처가 있었던 것이다. 어디 이헌길만 그러랴? 모든 사람의 속에는 예수와 부처가 있지 않은가? 찾지 않아서일 뿐이지.
이헌길이 의술을 펼치자 낫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열흘 만에 명성이 나서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문을 메우고 길을 메울 정도였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몰려들었는지 알아보면 이렇다.
몽수가 문을 나가서 다른 집으로 가면 수많은 남녀가 앞뒤에서 옹호하였는데, 그 모여 가는 형상이 마치 벌레가 움직이는 것과 같았으므로 그가 가는 곳에는 뿌연 먼지가 하늘을 가리어, 사람들은 바라만 보고도 이몽수가 온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니 유혹이 없을 수 없다. 정약용은 ‘하루는 못된 무리의 꾐으로 어느 궁벽한 곳에 가서 문을 잠그고 자취를 감추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돈을 받고 치료를 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사방을 뒤져 그의 거처를 찾아내었다. 사태가 심각했다. “어떤 사람은 사나운 기색을 띠고 면전에서 욕을 하고 심한 자는 몽수를 때리려고 하였으나” 다른 사람들이 애써 말린 덕에 봉변을 면할 수 있었다. 이헌길은 사과를 하고 재빨리 처방을 알려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치유되었음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돈이 부족해 죽는 사람들
조선시대에도 국가가 만든 공식적인 의료기관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그것만으로 질병을 이겨내기란 턱도 없었다. 민중은 의료혜택에서 거의 제외돼 있었던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것을 보완한 것이 바로 민중의가 아닌가 한다.
현대의 인간은 질병 치료술의 부족으로 죽는 것이 아니다. 지구 전체를 두고 생각한다면 오염된 물로 인해 죽는 숫자가 가장 많다고 한다. 제3세계의 국민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면 사망률은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서구사회에서는 몇 푼 하지 않는 값싼 백신이 부족해 죽는 사람이 허다하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지 않은가?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확실한 의료기술의 혜택을 누구나 입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요즘 사람들은 의술의 부족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돈의 부족으로 죽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술은 누구를 위해 있어야 하는가? 나는 홍양호의 ‘조광일전’을 보면서 이 짤막한 전기(傳記)에서 제기한 문제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음을 본다.
사족으로 몇 마디 더. TV 드라마 ‘허준’을 보고 나는 늘 궁금했다. 유의태의 집은 마치 현대의 병원처럼 묘사됐다. 병자들이 누워 있는 곳도 있고 진료를 하는 곳도 있다. 병부잡이라 해서 병자를 인도하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예쁜 간호원도 있었다. 약을 짓는 탕약실도 따로 있었다. 또 진료할 때 의원들의 복색도 평복과는 달라 가운 같은 것을 걸치고 있었다. 조선시대 산청(山淸)과 같은 오지 시골에서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또 서울의 혜민서를 마치 병원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과연 그것은 PD의 상상력의 소산인가? 아니면 무슨 근거라도 있는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앞으로 찬찬히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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