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락과 혈위란 무엇인가?
- 경락과 혈위의 개념에 대한 의사학적 고찰
(醫史學 제14권 제2호 (통권 제27호) 2005년 12월)
인창식(포천중문의과대학교 차바이오메디컬센터 침구과), 고형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침구학교실)
1 머리말
경락과 혈위는 한의학 이론의 주요 구성요소이며 특히 침구학의 근간을 이루는 이론이다. 경락과 혈위의 생물학적 실체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나 아직 명쾌한 해답은 제시되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생물학적으로 규명하려고 하는 경락과 혈위라는 개념이 역사적 산물이라 는 점에서 보면 경락과 혈위의 해부조직학적 실체의 존재를 가정하기 이전에 먼저 옛 사람들이 말한 개념을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본 글에서는 의사학적 고찰을 통해 경락과 혈위의 고전적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본론
먼저 경락의 기원에 관한 2종 가설과 3종 점선관을 중심으로 일반적 견해를 개관하고 혈위의 개념과 그 변천을 살펴본 후 마왕퇴의서(馬王堆醫書)를 중심으로 한1) 근래 일련의 학자들의 논의를 토대로 경락과 혈위의 본래 개념에 대해 살펴본다
1) 경락의 기원에 관한 기존의 일반적 견해
경락학설의 기원에 관해서는 전통적으로 2종 가설이 존재하며 혈위와 경락의 선후와 관련하여 3종 점선관이 존재한다2) 경락학설의 기원에 관한 2종 가설이란 침자감전현상(鍼刺感傳現象) 가설과 내경반관(內景反觀) 가설을 말한다. 침자감전현상은 침자시 환자가 호소하는 경락을 따라 방사되는 강렬한 침감이다 이 감각이 전달되는 현상은 12경맥에 대한 기록과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고대의학자가 경락에 민감한 사람들이 호소하는 침감이 퍼져가는 경로에 대한 경험을 축적하여 11맥 혹은 12경맥으로 귀납하고 또 각각의 경맥의 질병 증상이나 치료효과와 연계시켜 인체의 경락계통을 발견해낸 것이라고 한다 즉 경락학설은 경락감전현상과 임상 치료효과를 결합하여 점차적으로 형성되어 온 것이라 한다 <영추·사기장부병형(靈樞·邪氣臟腑病形)>에서는 혈위에 정확히 자침만 하면 침감이 일정한 경로를 따라 퍼져가게 된다고 했다3) 마왕퇴의서 맥법은 이런관점을 지지하는 듯하다 환자가 주관적으로느끼는 ‘기’를 경락 전도감의 일종으로 설명하고 있다4) 내경반관 가설은 기공수련시 느끼는 기가 순행하는 느낌을 기록한 것이 경락의 기원이 되었다는 가설이다 대다수의 기공수련자는 수련할 때 ‘기’가 체내에서 운행하는 것을 분명히 느낀다 아마도 체내에 기가 운행하는 경로를 기록한 것이 초보적인 경락순행도였을 지 모른다 하지만 기공수련을 할 때 가장 느낌이 강하고 또 초기에 느낄 수 있는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에 관한 기록이 마왕퇴의서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경반관 기원설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마왕퇴의서의 경맥학 저작에도 기공과 관련있는 구절들이 나온다5) 그리고 음양십일맥구경(陰陽十一脈灸經) 을본이 각곡식기(却穀食氣) 도인도(導引圖) 라는 기공관련 저작과 동일한 비단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으로 보아 경맥학과 기공에는 어떤 밀접한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일찍이 춘추전국시대에 ‘호흡토납(呼吸吐納)’의 양생법을 사용하였던 사람들이 많이 출현했는데 즉 후세에 기공가(氣功家)라 불렸던 사람들이다 장자, 맹자와 같은 선진제자들은 기를 기르고 단련하는 것의 효과를 중시하였다. <소문>에도 기공수련이 양생이나 질병예방에 중요한 의의가 있음을 강조하는 구절이 있다6) 기공수련을 하면 자신의 장부경락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은 명대(明代) 의학자 이시진(李時珍)이 처음이었다7) 3종 점선관이란 ①‘점에서 선으로’ 관점,②‘선에서 점으로’ 관점, ③ ‘점과 선의 병존’ 관점 등을 말한다. 먼저 ‘점에서 선으로’ 관점을 살펴보면, 1950년대에 침구학자 육수연(陸瘦燕)은 경락학설은 같은 효능을 가진 침구혈위들을 귀납해 연결하는 것에서 기원하였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고대의학자들은 장기간의 침구임상을 통해 점차 여러 혈위에 비슷한 효능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근처에 있는 혈위들끼리 연결시켜 경락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선으로’ 관점은 침구술은 신석기 시대 정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상당히 이른 시기에 발명되었으므로 혈위 역시 상당히 이른 시기에 발견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에 주로 근거하고 있다 또 이 관점은 ‘개별에서 일반으로 특수에서 보편으로 국부에서 전체로’라는 인식론 법칙과도 일치하여 이후 상당기간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져 왔다. 현재 국내의 침구학 교재도 경락의 기원에 관해 이러한 소박한 경험론적 가설 즉 혈위에 대한 우연적인 개별 경험이 누적되고 그러한 혈위를 이어 경락이 발견되었다는 가설에 따라 설명하고 있다8)
그러나 과학이론 발전에 대한 이러한 소박한 귀납주의적 설명은 과학철학자들의 심각한 문제제기에 직면해 있다 관찰은 그 자체가 이론 의존적이다9) ‘선에서 점으로’ 관점은 1973년 마왕퇴의서가 발굴된 후 제시된 견해이다 마왕퇴의서에는 11맥의 순행노선은 상세히 설명되어 있으면서도 혈위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는 판단에 근거해서 고대의학자들은 먼저 전신적으로 분포하는 11개 경맥을 먼저 발견했고 이후에 경맥 순행노선상에 위치하는 혈위를 발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견해는 마왕퇴의서에 혈의 명칭은 나와 있지 않고 경맥만 언급되어 있으며 후에 영추와 소문에 이르러서 경맥과 함께 많은 혈위가 나와 있는 이유를 원만히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관점은 「영추·경맥」의 12경맥에는 마찬가지로 혈위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고 혈위에 대한 기록은 모두 영추와 소문의 다른 편에 나오는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선’이 먼저 발견되었다면 임상적으로 ‘선’ 중 어느 부위를 치료대상으로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곤란하며 ‘선’ 전체를 치료대상으로 했다고 한다면 다분히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그리고 ‘선에서 점으로’ 관점의 근거가 되었던 해석 즉 마왕퇴의서에 경맥명칭만 있고 혈위 명칭은 없었다는 견해는 마왕퇴의서의 ‘태음(太陰)’과 같은 혈위 명칭을 경맥 명칭으로 잘못 읽은 결과였다는 측면에서 ‘선에서 점으로’ 관점은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점과 선의 병존’ 관점은 역사적으로 ‘수혈파(腧穴派)’와 ‘경맥파(經脈派)’가 병존하다가 나중에 의학이론의 정비 과정에서 합쳐진 것으로 본다 마왕퇴의서는 ‘경맥파’의 저작이며 현전하는 영추와 소문의 각 편도 ‘경맥파’계통 저작인지 ‘수혈파’ 계통 저작인지에 따라 혈위를 중심으로 설명하거나 경맥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차이라든가 혹은 경맥과 수혈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나타내게 된다고 본다 만일 ‘점과 선의 병존’ 관점이 ‘점’과 ‘선’ 어느 한쪽에 치중했던 다양한 학파현상을 설명하는 관점이라면 일리가 있으며 이것은 현전하는 영추와 소문의 각 편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견해이지만 더 나아가 ‘점’과 ‘선’이 개별적으로 발견되고 발전되다가 역사상 어느 단계에 하나의 이론으로 병합되었다는 관점이라면 ‘선’의 발견과정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게 되고 ‘선’의 임상적 의의에 대해서도 수긍할 수 없는 면이 있다 ‘선에서 점으로’ 관점에 대한 문제제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점’ 없는 ‘선’이 임상적으로 어떤 의의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
2) 경락론의 성립과 마왕퇴의서
이제 경락의 기원에 관한 2종 가설과 3종 점선관에 대한 논의와 혈위 개념에 대한 이해의 연장선상에서 경락과 혈위의 본래 개념에 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2종 가설에서 제시하는 내경반관 순경감전 현상은 오늘날도 충분히 관찰 가능한 현상이므로 그에 따라 가설을 세우고 추론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중간과정을 생략한 채 내경반관 순경감전 현상으로부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경락·혈위 체계를 제시하는 것은 비약이 너무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오늘날의 경락·혈위체계는 그 성립과 발전에 관한 소박한 경험론적 설명이 무색할 정도로 대략 2000년 전에 명당공혈침구치요(明堂孔穴針灸治要) 에서 이미 거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가10) 후대의 가공을 거쳐 오늘날로 전해진 역사를 갖고 있다 오늘날의 경락·혈위체계는 14정경 361개 경혈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추와 소문(素問)에 160개 혈명과 일부 주치증이 나오는 반면 명당공혈침구치요에는 이미 14경맥, 349개 혈위의 위치, 주치증, 시술방법 등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경락·혈위 체계의 현실적 의의는 치료와 진찰 과정에서의 실용성에 있었을 것이므로 다양한 가설적 논의를 현실적인 의미가 있는 것 중심으로 축약시키기 위해서는 치료와 진찰 과정에서의 적용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마왕퇴의서가 발견된 것은 잃어버린 중간고리를 찾고 싶어 하던 학계에 중요한 연구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 주지하다시피 마왕퇴의서의 2종 구경(灸經)에는 ①11개 경맥이 기술되어 있고 ② 족비십일맥구경에서의 모든 맥은 구심성 순행을, 음양십일맥구경 에서는 9개 맥이 구심성, 2개 맥이 원심성 순행을 하고 있으며 ③ 족비십일맥구경 에서는 2개 맥이 분지를 내는 반면 음양십일맥구경 에서는 분지를 내는 맥이 전혀 없고 ④ 족비십일맥구경 에서는 2개 맥이 장부와 연계되어 있어서 수태음맥은 “심(心)으로 가고” 족소음맥은 “간(肝)으로 나오는” 노선을 갖고 있고 음양십일맥구경 에서는 3개 맥이 장부와 연계되어 있어서 비거음맥(즉 수태음맥)은 “心으로 들어가고” (족)태음맥은 “위(胃)의 맥이며” (족)소음맥은 “신(腎)에 이어져 있다 ” 또한 ⑤ 족비십일맥구경 에서는 각 맥의 수족 음양에 대한 기록이 정연하고 규칙적으로 되어 있으나 음양십일맥구경 에서는 족태양맥에 ‘족’을 명시한 외에 기타 맥에서는 수족을 명시하지 않았고 특히 수태양맥 수소양맥 수양명맥 등에서는 견맥(肩脈) 이맥(耳脈) 치맥(齒脈) 등 원시적이고 과도적인 명칭을 여전히 쓰고 있고 ⑥ 족비십일맥구경은 병증에 대한 기록이 간략하고 질병분류도 되어 있지 않지만 음양십일맥구경은 병증에 대한 기록이 비교적 상세하고 ‘시동(是動)’과 ‘소산(所産)’ 두 가지로 질병분류가 되어 있고 ⑦ 치법은 구법(灸法)만을 언급했다 이러한 점에서 마왕퇴의서 중 2종 구경은 영추·경맥 이전 시기의 저작이며 조본(祖本)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마왕퇴의서에서의 맥(脈)은 혈관이라는 구체적 해부학적 뜻 외에 맥동을 관찰하는 진찰지점이면서 침구치료의 자극을 가하는 치료지점이라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소박한 해부학적 관찰을 통한 지식과 맥진학(脈診學) 경맥학(經脈學)이라는 추상적 이론의 싹이 분화되지 않은 단계였다 구체적 한 지점인 ‘맥’을 경맥으로 잘못 읽어서 ‘선에서 점으로’와 같은 무리한 주장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마왕퇴의서에는 치료법으로 환구(環灸)와11) 계맥(啓脈)이라는 구법과 폄법(砭法)이 제시되어 있으며 족비십일맥구경 에서는 각 맥의 병후 뒤에 각각 “이러한 병에는 OO맥에 뜸을 뜬다(諸病此物者 皆久××溫)”고 했고12) 음양십일맥구경에서는 (족)소음맥의 다음에만 구법을 언급했다13) 맥법의 치료법 설명 부분에는 기가 올라가고 내려오고 나간다는(‘氣上’ ‘氣下’ ‘氣出’) 등의 언급이 있는데 여기에서의 ‘기(氣)’는 추상적 개념이 아닌 진료현장에서 관찰되는 구체적인 현상에 대한 표현이다14) 마왕퇴의서에서의 구법과 폄법의 대상은 경맥이 아닌 특정 부위로서의 맥, 즉 이상이 관찰되는 맥동처 혹은 특정 혈위를 말한다 마왕퇴의서 오십이병방(五十二病方) 의 내용이 후대 의서 천금요방(千金要方) 에 계승된 구절이 있는데 이 두 문헌의 관련구절을 비교해 보면 이 사실이 보다 분명해진다 퇴(㿗) 병증은 태음(太陰) 태양(太陽)에 구법을 시술한다는 오십이병방의 언급과15) 일치하는 내용이 천금요방의 합양(合陽)과 상구(商丘) 혈위 관련 기록에 나온다 16) 합양과 상구는 각각 족태양(足太陽)과 족태음(足太陰) 경맥에 속한다17) 고대에는 삼음삼양(三陰三陽)이라는 경맥의 명칭으로써 특정 혈위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이를 ‘경맥혈(經脈穴)’이라고도 한다18) 후대에 약간의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주로 완과관절 주변의 맥동처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이러한 용례는 소문 영추 맥경(脈經) 제병원후론(諸病源候論) 천금요방 천금익방(千金翼方) 외대비요(外臺秘要) 태평성혜방(太平聖惠方) 등의 고서에 두루 보인다 그리고 돈황의서 중 당(唐) 이전에 대략 영추와 소문의 성서 년대에서 많이 늦지 않은 시기에 씌어진 것을 당 시대에 옮겨 적은 책인 구법도(灸法圖) (S6168 S6262 구경도(灸經圖) 라고도 한다)의 그림은 이 사실을 웅변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그림 1)19) 사기에 의하면 편작(扁鵲)이 진찰에 활용한 맥동처는 혈맥(血脈)이었고20) 순우의(淳于意)의 진료기록에서 소양(少陽) 소음(少陰) 등이 경맥 명칭이 아니라 특정한 맥동처의 명칭으로 사용되었으며 이 지점은 맥진하는 곳이면서 치료하는 곳이었다 21) 그리고 이 맥동처에 대한 구법 외에 자법(刺法)도 사용되었고 낙맥(絡脈)의 개념도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미 2종 구경에 비해 경락학설의 내용이 많이 진전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2)
장가산한간(張家山漢簡) 맥서(脈書)에서는 소음 태음 등을 ‘脈固有動者’ 즉 맥동처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곳의 맥동의 이상이 나타나면 특정 병증(시동병)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23) 이들 삼음삼양 명칭이 붙어 있는 혈위(삼음삼양 혈위)는 대개 완과부(腕踝部)의 맥동처로 12경맥의 원혈(原穴)과 일치하며 경락학설의 형성초기에는 이 맥동처의 맥동을 진찰하고 비교함으로써24) 질병진단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 방법이 사용되었다25) 즉 12경맥 편진맥법(遍診脈法)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26) 옛 사람들은 두면부나 체간에 어떤 병증이 있을 때 사지 원위부의 삼음삼양 혈위의 맥동의 이상이 동반되는 것을 관찰하고 두면부나 체간의 어떤 병증과 사지 원위부의 맥동처 사이의 어떤 연관관계를 상정했던 것이다 음양십일맥구경에서 경맥 명칭을 견맥, 이맥, 치맥 등으로 표현한 것은 어깨, 귀, 치아의 병증과 연관관계가 있는 사지 원위부의 맥이라는 초기 개념의 흔적이다 즉 사지 원위부의 맥동처라는 한 점과 두면/체간부의 병증이라는 또다른 한 점 사이를 연결하는 선이 그려졌던 것이다 이 시점을 원시 경맥개념의 성립으로 볼 수 있다 경락개념의 성립 초기에는 맥진학과 경맥학이 분리되지 않았고 ‘맥’이란 말이 혈맥이라는 뜻으로서 맥진을 하는 곳이면서 폄구(砭灸)를 시술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두루 사용되었다27) 삼음삼양 혈위라는 맥동처는 본래 맥진을 행하던 곳이면서 폄구를 행하던 곳이었다 즉 인체의 반응이 나타나는 곳이고 동시에 치료를 하는 곳이었다 그 진찰대상과 치료대상인 병증이 해당 혈위의 주치증이라고 할 수 있다 2종 구경에서 경맥이 기본적으로 구심성 순행을 보이는 것은 초기 경맥개념에서 이들 사지 원위부의 맥동처(혈위)에 자극을 주었을 때 그 효과가 두면/체간부로 전달되어야 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대 경혈학의 혈위별 주치증을 보면 원위취혈하여 전신적 치료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혈위는 대개 주슬관절(주슬관절)에서 수족단(手足端) 사이에 위치한 혈위라는 사실도 이러한 초기 경맥개념의 유산이며 원위부와의 진찰치료상 연관관계를 설정해주는 경맥개념의 효용이 살아있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다음의 인용문은 족소음맥(足少陰脈)과 태계(太谿)28) 수양명맥(手陽明脈)과 합곡(合谷)의29) 주치증 부분을 마왕퇴의서 영추 · 소문 갑을경(甲乙經) 에서 비교해 보면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맥(脈)’의 병증 즉 삼음삼양 혈위의 주치병증에 있어서 맥동의 이상이 동반되면 시동병, 동반되지 않으면 소생병(所生病)이다 즉 이 혈위의 맥동 이상으로 진찰하던 병증이 음양십일맥구경의 시동병이고 이 혈위에 침구치료로 자극을 주어 치료하는 대상이 되는 병증이 족비십일맥구경에서 말한 병증이며 또한 음양십일맥구경의 소생병이다30) 시동병은 증상 위주이지만 소생병은 병명 위주이다 그리고 소생병의 범위는 기본적으로는 해당 경맥의 순행노선상의 관련 병증 중심이지만 일부 기타경맥의 병증도 포함되어 있다 삼음삼양 혈위의 주치증은 후에 해당 경맥의 경맥병증 즉 해당 경맥 노선상의 모든 혈위의 기본적 주치증으로 확장된다 시간이 지나 이론적 설정이 세련되어지고 경험이 누적되면서 소생병을 중심으로 경맥병증이 확충되어 갔다 초기에 사지 원위부와 두면부를 연결했던 선의 경로상의 여러 병증을 포괄하게 되고 마왕퇴의서에서 주로 체표의 병증을 다루던 경맥병증은 체내 구조물의 병증도 포괄하게 된다 그리고 확충되는 경맥병증에 대응하기 위해 경맥의 노선도 이 두 점을 연결했던 선의 경로상의 여러 병증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경맥의 순행노선이 세밀해지고 체내로의 순행노선도 가지게 된다 경맥병증은 족비십일맥구경에서 음양십일맥구경을 거쳐 「영추·경맥」으로 오면서 그 수가 가파르게 늘어나 있고 족비십일맥구경 과 음양십일맥구경은 체표병증 위주이지만 「영추·경맥」에는 체내 병증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1993년에 발굴된 서한 시대의 칠조(漆雕)에는 수태음 수궐음 수소음 수양명 수소양 수태양 족양명 족소양 족태양 독맥 등의 경맥순행노선이 그려져 있는데 상지의 6개 경맥은 흉복강과의 연계를 가지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마왕퇴의서와 영추의 중간과정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림 2)31) 「영추·경맥」에서는 경맥병증의 수가 증가되어 있고 순행경로가 세밀해지고 밖으로는 손발 끝 부위까지 더 연장되었으며 안으로는 체내의 조직기관과의 연관을 가지게 되었고 순행방향이 조정되어서 순환체계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영추·본수(靈樞·本輸)」등의 편은 2종 구경의 구심성 경맥체계를 계승하고 있으며 오수혈(五腧穴) 근결(根結) 표본(標本) 경별(經別) 십오락(十五絡) 기경팔맥(奇經八脈) 등은 구심성 경맥체계의 소산이다 「영추·경맥」의 순환체계 출현에도 불구하고 혈위를 구심성으로 배열하는 체계는 명당공혈침구치요 갑을경 천금익방 외대비요 동인수혈침구도경(銅人腧穴鍼灸圖經) 에까지 이어지다가 성제총록(聖濟總錄)에서 비로소 「영추·경맥」식으로 배열하는 쪽으로 바뀌었고 오늘날의 경혈학에서 말하는 혈위배열 순서와 경맥순행 방향은 성제총록의 영향 아래 있다 하지만 성제총록이 경맥의 태동과 변화에 관한 구심성 체계의 개념과 의의를 충분히 이해하고 「영추·경맥」의 체계를 중심으로 통합하려고 하는 진지한 노력에 의해 이렇게 했는지 아니면 별다른 논리적 근거나 임상적 근거 없이 「영추·경맥」체계대로 혈위를 배열했는지는 알 수 없다
요약하면 경맥개념의 발전 초기에 사지 원위부 맥동처 1곳과 두면/체간의 1곳을 잇는 선이 먼저 그려졌다 완과부의 맥동처를 본맥(本脈)으로 하고 두면이나 구간의 한 부위를 표맥(標脈)으로 하는 구심성 체계였다32) 삼음삼양혈위의 맥동을 살피고 일련의 병증을 그 맥동변화에 따라 범주화하여 경맥병증의 개념이 나오고 경맥병증을 설명하는 체계로서 경맥의 순환노선이 설정되었으며 경맥 순행노선상의 병증에 대해 해당 맥동처에 폄석과 구법을 시술하여 치료를 하는 형태로 소박한 맥진/경맥 개념이 형성되었다 여기에서 영추의 맥진과 12경맥 경맥병증에 대한 침구치료가 형태를 갖추어 나왔던 것이다
이렇게 발전해 가는 과정에는 고대의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추론과 가설이 일부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經’ 개념이 주류를 이루기 전에 ‘脈’의 개념에는 소박한 혈맥, 맥동처라는 의미가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기·편작창공열전(史記·扁鵲倉公列傳)」등 고대문헌의 해부관련 기록을 보면 옛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해부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실제로 혈맥과 신경은 사지에서 기본적으로 경맥처럼 종축방향의 주행을 갖고 있다
초기의 경맥개념은 구체적 경험과 추상적 이론이 발전하면서 맥진학과 경맥학이라는 진단과 치료분야로 분화발전되었다 이것은 ‘경(經)’ 이론이 점차 ‘맥(脈)’ 이론을 대체하는 과정이기도 했으며 ‘기(氣)’ 개념이 ‘혈(血)’개념을 대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초기의 ‘맥’이 담고 있던 혈맥이라는 소박한 뜻으로부터 추상적 이론이 뒷받침되는 경맥이라는 개념이 분화되면서 점차 ‘경’이란 말이 많이 쓰이게 되고 맥진학과 경맥학이 서로 분화되어 갔다 생리병리를 설명할 때에도 ‘혈’ 대신 ‘기’가 많이 쓰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경’과 ‘기’라는 추상적 이론의 도움으로 임상현장에서는 구체적 해부조직학적 연계를 입증할 부담을 덜고 보다 자유롭게 신체의 기능적 진찰과정과 치료과정을 설명하고 경험을 축적해가게 되었던 것이다
사기 에 의하면 순우의는 젊어서 공승양경(公乘陽慶)에게 ‘황제편작의 맥서(黃帝扁鵲之脈書)’를 전수받았고 만년에는 고기(高期) 왕우(王禹) 등에게 ‘경맥고하(經脈高下)’를 두신(杜信) 당안(唐安)에게 ‘상하경맥(上下經脈)’을 전수했다33) 편작 만년에 이미 용어가 ‘맥’에서 ‘경맥’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동한의 화상석(畵象石)에 그려 있는 의신(醫神)이34) 한손으로는 환자의 손을 잡고 진맥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침을 하고 있는 모습이나35) 맥진과 자침의 밀접한 연관성을 언급한 영추의 구절은 혈맥 맥진 경맥의 연원이 같다는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면서 보면 그 의미가 더욱 새롭게 느껴진다 36)
3) 혈위의 개념과 역사적 변천
영추에서 혈위는 해부조직학적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정의된다 즉 신체의 반응이 밖으로 표현되고 생체의 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 지점이다37) 혈위의 생물학적 실체 여부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수도 있겠으나 고전 문헌의 혈위와 경락이 반드시 생물학적 실체를 동반할 것이라고 가정해야 하는 이유는 없다 고전문헌에서의 개념으로는 혈위에 정확하게 자침한다는 것은 정확한 해부조직학적 위치에 자입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체의 반응을 유발시켰을 때 정확하게 혈위에 자침했다고 할 수 있다38) 자침시 환자가 느끼는 침감(鍼感)의 경우 침감의 해부조직학적 근원은 다양한 조직에 걸쳐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초기 경맥개념과 연관되는 혈위 개념의 원형은 해부학적 혈관이면서 또한 맥진 부위이고 침구자극을 가하는 부위이기도 했다 경맥과 혈위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명당공혈침구치요 이후 후대로 오면서 역사적으로 혈위의 위치, 주치증, 소속경맥 등에 많은 변화가 관찰된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과정에 있어서 소박한 귀납주의와 같은 최소한의 합리적 논거라도 제시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혈위의 主治症은 역사적으로 변천이 있었다 「영추·경맥」에서는 본래 수양경(手陽經)의 주치증에 부증(腑症)이 없었다 하지만 갑을경 판본의 수삼리(手三里) 주치증에는 ‘장이 아프고 때로 냉한 증상(腸痛時寒)’이 들어가 있다 이것은 족삼리(足三里)의 주치증을 참고하여 대응되는 위치에 있는 수삼리의 주치증이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다39) 그리고 새로운 문헌이 작성될 때 단순한 착오에 의해 잘못 기재된 사례가 이후 시대의 문헌에서 계속 무비판적으로 답습되는 예들이 있다 예를 들면 천금방에서 여구(蠡溝) 혈위의 주치증을 소부(少府)에 잘못 기재한 것이 후대에 침구대성(鍼灸大成) 등에 그대로 답습되어 갔고40) 갑을경 판본에서 소해(小海)를 소해(少海)로 잘못 기재하여 왕유일(王維一)의 동인수혈침구도경 등 후대 문헌에 그대로 인용되어 갔고 왕도(王燾)가 외대비요를 편찬할 때 천용(天容)의 주치증을 부백(浮白)에 잘못 기재한 것도 왕유일의 동인수혈침구도경 등 후대 문헌에 그대로 인용되어 갔다41)
경맥의 순행노선도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었다 예를 들면 등과 허리의 방광경 노선이 내외측 2선으로 된 것은 명대의 일이다. 주굉(朱肱)의 활인서(活人書) 송대 판본에는 1개선으로 설명되어 있고 원대 판본에도 나타나지 않다가 명대 판본에 이르러서야 내외측 2선이 보인다42) 혈위의 위치와 소속경맥에도 시대에 따른 변화가 있었다43) 예를 들면 신정(神庭 GV4)은 명당공혈침구치요 에서는 “코 수직선상의 발제선상 위치(在髮際 直鼻)”라 하였고 비급천금요방(備急千金要方) 천금익방 외대비요도 마찬가지이지만 동인수혈침구도경에서는 특별한 설명 없이 “코 수직선상의 발제 상방 5분 위치(在入髮際五分 直鼻)”로 바뀌었으며 후대 문헌은 동인수혈침구도경의 예를 따랐다 견정(肩井 GB21)의 귀경(歸經)은 “수태양(手太陽脈氣所發)” ( 황제내경태소(黃帝內經太素) ) “양유맥 족소양(陽維 又足少陽)”( 의심방(醫心方) ) “수족소양 양유맥(手足少陽 陽維之會)”( 명당공혈침구치요 외대비요 동인수혈침구도경 성제총록 침구대성 ) 등의 차이를 보인다 조해(照海 KI6)는 명당공혈침구치요 에는 “음교맥(陰蹻脈所生)”으로 되어 있고 외대비요 동인수혈침구도경 성제총록 도 마찬가지이며 보제방(普濟方) 침구대성 에서는 “족소음(足少陰腎之經)”으로 되어 있다 페수(肺兪 BL13)는 「소문·혈기형지편(素問·血氣形志篇)」에서는 “페의 수혈(肺之兪)”이라 했고 명당공혈침구치요에는 별다른 경맥소속이 없으며 동인수혈침구도경 성제총록 에서는 “족태양(足太陽脈氣所發)”이라고 했다
적어도 초기 경맥개념이 설정된 이후에는 경맥 개념과 혈위 개념이 발전되는 과정이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을 것이다 경맥병증이 설정되고 확충되는 과정은 경맥의 순행노선이 정밀해지고 그 노선상에 여러 혈위가 고안되는 과정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행되었을 것이다 즉 혈위에 대한 구체적인 임상경험에 의해 경맥과 혈위를 이론적으로 설정했던 내용이 재검토되는 이론과 임상의 상호영향 속에 완과부와 두면 구간부를 연결했던 초기의 경맥, 혈위개념은 보다 완정한 경맥과 혈위체계로 형성되어갔을 것이고 그 결과 명당공혈침구치요의 경맥과 혈위체계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형성된 이후의 계승발전 과정에서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은 오류가 끼어들어가고 근거 없는 수정이 가해진 부분을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경맥과 혈위체계의 형성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경맥과 혈위 개념은 관찰을 통해 축적되어 왔고 임상을 통해 끊임없이 검증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므로 역사적으로 오류와 근거 없이 수정된 내용이 보인다고 해서 허상의 개념이라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락과 혈위 개념이 형성되고 변천될 때 혈위의 개념은 임상현장에서의 기능적 개념 즉 인체의 생리병리적 변화가 맥박의 변화로 관찰될 수 있는 지점 혹은 어떤 방향으로 인체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굳이 경맥과 혈위의 생물학적 실체 즉 경락과 혈위의 개념에 필요충분조건으로서 상응하는 해부조직학적 실체를 가정할 이유가 없다 해부조직학적 기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최종결과로서 맥동과 같은 어떤 관찰가능한 변화가 체표에 나타나고 체표에 대한 자극이 신체 기능의 변화를 유도하게 되어도 경맥과 혈위의 개념에서 전혀 어긋나지 않는다
3 결론
이상으로 마왕퇴의서 등 고문헌을 토대로 경맥의 형성과정과 혈위의 본래 개념에 대해 살펴보았다 침자감전이나 내경반관 어느 것이 단초가 되었든 경맥은 사지 원위부의 박동처인 근본(根本) 부위와 두면/체간의 결표(結標) 부위 두 지점을 잇는 노선이 체표를 따라 먼저 그려졌고 이 때 혈관과 신경 등이 종축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것 등의 소박한 해부학적 지식이 참고가 되었을 것이며 후에 혈위의 주치병증이 확충되면서 경맥의 순행노선이 연장되고 세밀해지고 내장 조직기관에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경맥 상호간의 관계도 밀접하게 설정되었다 경맥 순행노선 상에 보다 많은 혈위를 정하게 되었을 것이다 혈위와 경맥 개념의 생성발전과 정의를 살펴보면 단일한 별개의 해부조직학적 실체에 상응하기 보다는 중간기전은 어떠하든 환자의 체표면 관찰소견에 대한 경험과 체표의 특정 지점에 자극을 가했을 때 나타나는 환자 병증의 변화에 대한 임상적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개념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경맥과 혈위의 개념은 명당공혈침구치요에 나타난 원형적 경맥과 혈위의 개념에서 많은 첨삭과 변화를 거친 결과물이지만 그 첨삭과 변화과정에 충분한 근거가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경맥과 혈위의 원형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명당공혈침구치요를 침구학에서의 일종의 공지의 이론적 전제로 간주하되, 이 원형적 개념을 비롯하여 경맥과 혈위에 관한 오늘날의 지식은 임상현장에서의 관찰과 시술에 참고할 수 있는 경험적 참조체계(empirical reference system)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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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周一謀 고대 중국의학의 재발견 서울 법인문화사 2000 p 30-79
2) 周一謀 上揭書
3) 黃帝曰 刺之有道乎? 岐伯答曰 刺此者 必中氣穴 無中肉節 中氣穴則針游于巷 中肉節則皮膚痛 (「靈樞·邪氣臟腑病形」)
4) 氣上而不下 則視有過之脈 當環而灸之 氣出膝與肘之脈而砭之 ( 脈法 )
5) 緩帶 披髮 大杖 重履而步 ( 陰陽十一脈灸經 )
6) 提挈天地 把握陰陽 呼吸精氣 獨立守神 肌肉若一 恬淡虛無 眞氣從之 精神內守 病安從來 (「素問·上古天眞論」)
7) 內景隨道 惟反觀者能照察之 ( 奇經八脈考 )
8) 최용태 외 침구학(상·하) 서울 집문당 1988 p 175-80
9) 앨런 F 차머스 현대의 과학철학 서울 서광사 1985
10) 고형균 인창식 침구의학의 뿌리 서울 경희대학교 출판국 2004
11) 環灸에서의 環에 대해서는 ①배꼽 ②環跳穴부위 ③이상이 있는 맥 부위 등의 견해가 있다
12) 足泰(太)陽脈 出外踝婁中~ 其病 病足小指廢 ~ ●諸病此物者 皆久(灸)泰(太)陽(脈) ( 足臂十一脈灸經 )
13) 少陰眽(脈) 繫於內踝外廉~ 【是動則病】~ 是少【陰】眽(脈)主【治】 其【所産病】~ 爲十病 【少】陰之眽(脈) 【久(灸)則强食産肉 緩帶】 皮(被)髮 大丈(杖) 重履而步 久(灸)幾息則病已矣 ( 陰陽十一脈灸經 )
14)【氣】上而不下 【則視有】過之脈 當環而久(灸)之 病甚陽上于環二寸而益爲一久(灸) 氣朮月谷(膝)與肘之脉而[砭之] 用砭啓脈必如式 ( 脈法 )
15) 穨(㿗) 先上卵 引下其皮 以砭穿其【隋脽】旁 □□汁及膏□ 撓以醇□ 有(又)久(灸)其痏 勿令風及 易瘳 而久(灸)其泰(太)陰 泰(太)陽□□ 【●】令 ( 五十二病方 )
16) 男陰卵大㿗病 灸足太陽五十壯 三報之 又灸足太陰五十壯 ( 千金要方·권24 ) 合陽 中郄 主㿗疝崩中 商丘主陰股內痛氣癰 狐疝主上下引小腹痛 不可俯仰 ( 千金要方·권30 )
17) 黃龍祥 從《五十二病方》“灸其泰陰 泰陽”談起 中醫雜誌1994 35(3) 152-3
18) 黃龍祥 上揭書
19) 인창식 강미경 이상훈 외 敦煌醫書에 나타난 三陰三陽穴位에 대한 고찰 대한침구학회지 2002 19(4) 42-8
20) 簡子疾 五日不知人 大夫皆懼 于是召扁鵲 扁鵲入視病 出 董安于問扁鵲 扁鵲曰 血脈治也 而何怪 ∼ 至今天下言脈者 由扁鵲也 (「史記·扁鵲倉公列傳」)
21) 臣意診其脈 切其太陰之口 濕然風氣也 ~ 灸其足少陽脈口~ 又灸其少陰脈~ 齊北宮司空命婦出於病 衆醫皆以爲風入中 病主在肺 刺其足少陽脈 ~ 切其脈大而實 其來難 是蹶陰之動也 ~ 蹶陰有過則脈結動 動則腹腫 臣意卽灸其足蹶陰之脈 左右各一所 ~ 齊中大夫病齲齒 臣意灸其左大陽明脈 ~ 刺足陽明脈 左右各三所 (「史記·扁鵲倉公列傳」)
22) 위쯔한 외 황제내경의 기원 서울 일중사 2003 p 71-2
23)【夫脈固有動者 骭】之少陰 臂之太陰 少陰 氏主【動 疾】則【病】 此【所以論有過之脈也 其餘謹視當脈之過】(張家山漢簡 脈書 )
24) 相脈【之道】 左□□□走而案之 右【手直踝而簟之 它脈】盈 此獨虛 則主病 它脈汨 此獨□ 則主【病】 它脈【靜 此獨動 則主病】 (張家山漢簡 脈書 )
25) 劉士敬 朱倩 “相脈之道”考析 中華醫史雜誌1997 27(4) 198-200
26) 韓健平 出土古脈書與三部九候說 中華醫史雜誌1997 27(1) 36-40
27) 關曉光 白善吉 馬王堆醫書脈診水平初探 江蘇中醫1995 16 558-9
28) 少陰脈~ 是少【陰】脈主【治】 其【所産病】~舌坼 嗌乾 上氣 噎 嗌中痛 ( 陰陽十一脈灸經 ) 嗌乾 口中熱如膠 取足少陰 ( 靈樞·雜病 ) 消癉 善噫 氣走喉咽而不能言 手足淸 溺黃 大便難 嗌中腫痛 唾血 口中熱 唾如膠 太谿主之 ( 甲乙經·권11 )
29) 臂陽明脈~ 【其】病病齒【痛】 ( 足臂十一脈灸經 ) 齒脈)~ 是【動】則病 齒痛 䪼腫 是齒脈主治 其所産病 齒痛 䪼腫 ( 陰陽十一脈灸經 ) 齒齲 刺手陽明 ( 素問·繆刺論 ) 齒齲痛 合谷主之 ( 甲乙經·권12 )
30) 閻慶軍 針灸敎學釋疑一則 中國針灸1994 (3) 50-2 顧一煌 “是動病”與“所生病”析 江蘇中醫1998 19(4) 7
31) 梁繁榮 謝克慶 和中俊 何志國 從西漢人體經脈漆雕看早期經絡學說 中國針灸1996 (4) 222-5
32) 朱兵 針灸的科學基礎 靑島 靑島出版社 1998 p 525-48
33) 齊北王遣太醫高期 王禹學 臣意敎以經脈高下及奇絡結 當論兪所居 及其當上下出入邪正逆順以宜鑱石 定砭灸處 歲餘 (「史記·扁鵲倉公列傳」)
34) 扁鵲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35) 劉敦愿 漢畵象石上的鍼灸圖 文物1972 (6) 47-51
36) 凡將用鍼 必先診脈 視氣之劇易 乃可以治也 (「靈樞·九鍼十二原」) 經脈十二者 伏行分肉之間 深而不見~ 脈之卒然動者 皆邪氣居之 留于本末 ~ 經脈者 常不可見也 其虛實也以氣口知之 脈之見者皆絡脈也 (「靈樞·經脈」)
37) 節之交 三百六十五會 知其要者 一言而終 不知其要 流散無窮所言節者 神氣之所遊行出入也 非皮肉筋骨也(「靈樞·九鍼十二原」)
38) 刺之而氣不至 無問其數 刺之而氣至 乃去之 勿復鍼 ~ 爲刺之要 氣至而有效 (「靈樞·九鍼十二原」)
39) 李鼎 從同名穴看經穴的發展過程 上海中醫藥雜誌1997b (5) 38-9
40) 李鼎 少府和蠡溝的主治症何以會混同 上海中醫藥雜誌1997a (9) 36-7
41) 黃龍祥 針灸古籍中腧穴主治錯誤擧例 中醫雜誌1987 (9) 692-3
42) 朱兵 針灸的科學基礎 靑島 靑島出版社 1998 p 525-48
43) 고형균 인창식(2004) 上揭書 王德深 中國針灸穴位通鑑 靑島 靑島出版社 1994 p 284-6 1410 1645
44) 인창식 강미경 이상훈 외(2002) 上揭書
45) 朱兵(1998) 上揭書
46) 朱兵(1998) 上揭書
그림 1 돈황의서(敦煌醫書 S6168)의 수양명(手陽明) 혈위(상 발굴 그림, 하 필화본)44)
그림 2 서한칠조(西漢漆雕)의 경맥노선45)
그림 3 활인서(活人書)의 경맥도 차례로 송대 원대 명대의 판본46)
= ABSTRACT =
What's the Original Concept of Meridian and Acupuncture Point
in Oriental Medicine?
- A Perspective of Medical History
YIN Chang-Shik*․KOH Hyeong-Gyun**
Meridian and acupuncture point (MAP) is a core theory of acupuncture and essential building blocks
of oriental medicine There still continue theoretic or experimental arguments and controversies on the
origination or original concept of MAP without any definite approval or disapproval of a hypothesis
The theory of MAP is an historic product and has never been outside of historic influences This
study discusses the original concept of meridian and acupuncture point theory and its historical
evolution based on the review of classic literatures on meridian including the mawangdui medical texts
of Han dynasty The concept of MAP served as a empirical reference system in clinical settings
irrespective of the anatomical entity of MAP
Key WordsːMeridian Acupuncture Acupuncture point Mawangdui medical texts Medical history
* Department of Acupuncture CHA Biomedical Center College of Medicine Pochon CHA University
** Department of Acupuncture College of Korean Medicine Kyung Hee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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