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신편(濟衆新編)
濟衆新編 / 康命吉(朝鮮) 奉命撰 木板本
[發行地不明] : [發行處不明], 正祖 23(1799)
8卷5冊 : 四周雙邊, 半郭 23.5 x 17.0 cm, 10行21字 註雙行, 上2葉花紋魚尾; 27.0 x 21.0 cm
序 : 歲己未(1799)...李秉模 跋 : 己未(1799)...康命吉
<제중신편(濟衆新編)>은 1799년 강명길이 <동의보감(東 醫寶鑑)>을 바탕으로 중요한 내용들을 선별하고 부족한 내용들을 보충하여 만들어낸 종합 의방서이다.
강명길(康命吉, 1737-1801)은 본관이 신천(信川)으로 중인(中人) 출신이다. 그는 의과를 통해 의관에 진출하였고, 내의원 의관으로서 동궁 시절부터 정조(正祖)와 의약에 관해 토론하였다. 그는 남양, 인천, 풍덕, 부평, 이천의 부사와 양주 목사, 고양 삭녕의 군수, 목천 금천의 현감을 지내면서 경기도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그가 주로 경기도 일대의 지방관으로 진출했던 것은 유사시 궁으로 불러 오게 하기 위함으로, 꾸준히 왕실의 신임을 받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정조 18년(1794)에 내의원 수의(首醫)가 되었으며 후에 의관의 몸으로 대부(大夫)의 직위에까지 이르렀다. 정조의 죽음 이후 그 책임을 지고 사형이 주장되었으나, 그 이전에 사망하였다.
<제중신편>은 8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권수에 이병모(李秉模)의 서문(序文)이 있고, 이어 범례(凡例), 총목(總目), 인용제방(引用諸方), 목록(目錄), 본문, 강명길의 발문(跋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권에는 풍(風), 한(寒), 서(暑), 습(濕), 조(燥), 화(火) 등 외감(外感) 질환에 대해 다루었다. 제2권에서는 내상(內傷), 허로(虛勞), 신형(身形), 정(精), 기(氣), 신(神), 혈(血), 몽(夢), 성음(聲音), 언어(言語), 진액(津液), 담음(痰飮) 등 인체 내부의 질환을 다루었다. 제3권에서는 오장(五臟), 육부(六腑), 충(蟲), 소복(小腹), 대복(大腹), 두(頭), 면(面), 안(眼), 이(耳), 비(鼻), 구설 (口舌), 아치(牙齒), 인후(咽喉)를, 제4권에서는 경항(頸項), 배(背), 흉(胸), 유(乳), 복(腹), 제(臍), 요(腰), 협(脇), 피(皮), 맥(脈), 수(手), 족(足), 모발(毛髮), 전음(前陰), 후음(後陰), 곽란(霍亂), 구토(嘔 吐), 해수(咳嗽), 제5권에서는 적취(積聚), 부종(浮腫), 창만(脹滿), 소갈(消渴), 황달(黃疸), 해학(痎瘧), 온역(瘟疫), 사수(邪祟), 옹저(廱疽), 제창(諸瘡), 제상(諸傷), 해독(解毒), 구급(救急), 잡방(雜方)을 통해 인체 각 부위의 질병과 잡병(雜病)의 치료 방법을 제시하였다. 제6권에서는 부인(婦人), 포(胞)를 두어 여성의 질환에 주안점을 두었으며, 제7권에서는 소아(小兒), 두진(痘疹), 마진(麻疹), 양노(養老)를 통해 소아와 노인의 질환을 다루었다. 마지막으로 제8권에서는 약성가(藥性歌)를 두어 본초 지식을 간략하게 제시하였다.
<제중신편>은 <동의보감>이 편찬된 지 약 2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편찬되었다. <동의보감>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충하기 위해 편찬된 <제중신편>은 <동의보감>의 내용을 대폭 삭제하고 필요한 내용을 덧붙였다. 제거된 부분은 생리, 병리, 경락 이론, 운기 등의 내용으로, 주로 의학 이론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이는 인체와 질병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돕기 보다는 질병을 구별하여 시치(施治)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덧붙여진 것은 <동의보감>과 입장을 달리한 의론(醫論)이나 치료 견해 등으로 <동의보감>이후 생겨난 의학계의 경험과 연구성과를 반영한 것들이다. 이들은 경험방(經驗方), 신증의론(新增醫論), 신증처방(新 增處方), 약성가(藥性歌)의 형태로 실려 있다. 특히, 강명길은 노인들을 위한 새로운 처방을 제시하였다. <동의보감>에서 신형(身形) 뒤에 양노(養老)를 덧붙여 언급한 것과는 달리 <제중신편>에서는 양노(養老)를 하나의 편으로 엮고 식치(食治)를 중심으로 내용을 정리하여 노인의학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선두적인 기틀을 마련하였다.
<제중신편>의 또 다른 특징은 약성가(藥性歌)이다. 이 약성가는 <만병회춘(萬病回春)>과 <수세보원(壽世保元)>에 실려 있던 약성가 303수(首)를 기본으로 당시 약재로 활용되던 향약(鄕藥) 83수를 새로 증보한 것이다. 한국 관찬의서(官撰醫書) 가운데 최초의 것으로 <제중신편>의 실용성과 간이성을 단적으로 보 여준다. 이 약성가는 후에 <의종손익>, <방약합편>등에 영향을 주게 된다.
<제중신편>은 <동의보감>이후 200년간 변화한 의료 상황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우선 이 기간 동안 <동의보감>의 의학지식이 충분히 습득되고 이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졌다. 또 과거에 비해 의학지식이 대중화되었으며, 사람들은 이에 대한 이해보다는 활용에 더 큰 관심을 두게 되었다. 지역에서 자생한 의학 지식들이 정리되어 교류되었으며, 일부는 관찬서에 수용될 정도의 권위를 가지기도 하였다. 이런 분위기는 청에 대한 조선사회의 반감이 작용한 면도 있다. 명대(明代) 의학지식의 권위는 그대로 인정하되 청대(淸 代) 의학지식은 크게 환영하지 않았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생적인 의학지식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한편, 노인질환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으며, ‘부인’이나 ‘소아’처럼 하나의 분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노인질환 치료에 일반 성인과는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고양되었기 때문이다.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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