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운육기를 강조하는 龙砂 医学流派
http://www.cntcm.com.cn/xueshu/2016-08/12/content_19501.htm
龙砂医学
2016-08-12
来源:中国中医药报
作者:国家中医药管理局 中医学术流派传承推广基地 办公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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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蘇 江阴 龙山, 砂山지구에서 발원한 용사의학유파는 그 역사적 연원이 오래며, 3성으로 둘러싸여 있고 오랜 역사와 문화, 아름다운 정신, 인재가 모여 있습니다. 그 유파의 풍격이 독특하며 학문적 특성이 뚜렷하여 전승교육에 중점이 두어져 왔다.
【역사 연혁】
송 말과 원 초에, 江阴大学의 학자 陸文圭는 양 송대의 학술 성과를 집대성하여 학계로부터 “东南宗师”로 칭송받았다. 그는 천문·지리·율력·의약·수학 등의 제자백가의 학문을 통달하였고, 송사(宋死) 이후 강음의 동용산 자락의 화서(華書·현재는 '화사')에서 중의학을 비롯한 문화교육에 전념하여 문화 및 의학 인재를 대거 양성하였다(華士一鎭, 남송에서 청말에 이르기까지 진사(進士)가 50여 명이나 된다). 용사 문화구의 형성과 발전에 기여하며 용사의학 출현의 기초를 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龙砂医学은 《黄帝内经》의 오운육기 이론의 임상 운용을 중시하며, 체질을 변별하고 三阴三阳“開闔樞” 이론을 운용하여 经方(고의서의 처방들)의 응용을 지도하고, 肾命이론에 기초하여 膏方养生을 운용하여 미병을 치료하는 것은 이 유파의 3대 주요 학술 특색이다. 용사의학 유파가 근대 중의교육에 기여한 공헌이 두드러진다. 현재 이 유파의 전승 보급 사업의 성과는 뚜렷하며 학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학술적 특징】
《黄帝内经》五运六气이론의 임상 운용을 중시한다
오운육기(五運六氣)를 중시한 것은 용사의학유파의 큰 특징으로, ‘五運六氣’이론에 대한 역대 용사 명의들의 연구와 응용 저술이 많았는데, 명나라 吕夔의《运气发挥》,清代 缪问注姜健所传《三因司天方》,王旭高著《运气证治歌诀》,吴达《医学求是》에 있는 “运气应病说”,薛福辰著《素问运气图说》,高思敬의 《高憩云外科全书十种》의 《运气指掌》등이 있다. 또한 용사의는 특히 运气学说의임상 응용을 중요시하는데, 삼인사천방(三因司天方)으로 내상외감(內傷外感)의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독보적인 묘기이고, 강씨 집안 세의로는 4대 姜健이 대표적이다.
강건과 동시대의 명의 缪问(1737-1803)에 따르면, "吾邑 姜体乾선생은 병을 고치는 데 효험이 있어 이어 그 방이 20여 개에 달했고, 마음을 알긴 어렵다. 그러나 손을 쓸 수 없는 사람에 항상 효과가 있었으나, 그 세부적인 내용은 알기 어렵다. 후에 청에서 벼슬하며 송판 진무택의 《三因司天方》을 내어서, 余始知선생이 썼던 약으로, 내외의 기혈을 묻지 않고, 매 司天方 중에서 数味를 취하거나 全方을 쓴 후에 六经으로 보사의 품을 보충하였다.그래서 그 방은 번잡하나 병 치료에 뛰어난 공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缪问씨는 姜健으로부터 《三因司天方》을 받고 자세한 주석을 달았다. 王旭高는 강건이 전한 《三因司天方》을 《运气证治歌诀》로 엮어 세상에 전했다. 《龙砂八家医案》에는 삼음 사천방을 적용한 귀중한 의안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缪问은 말년에 苏州로 이주하여, 주창했던 《三因司天方》은 소주의 명의 陆九芝의 《世补斋医书》에 그 전문이 실려 높은 평가를 받았다. “龙砂医学”은 소주에서 명성이 높았으며, 소주의 의가에 의해 《龙砂八家医案》으로 편집되었고, 姜、缪 양씨와 관계가 깊다.
일부 运气를 전하지 않는 의가도 있지만, 다른 논저에서는 언제나 운기사상의 영향을 볼 수 있다. 예컨대 柳宝诒、薛福辰 등은 伏邪理论에 대응한 운기원리를 명백히 밝혔다. 曹颖甫은 만년에 쓴 《经方实验录》서문에서 16세때 부친인 龙砂名医 赵云泉이 운기이론에 의거해 그 부친의 심각한 복사를 치유했던 일을 전문적으로 강술하였고, 《伤寒论》 역주에서 운기학설의 명가 张志聪과 黄元御의 설을 자세히 설명하였으며, 承淡安는《子午流注针法》(子午流注를 五运六气에 응용한 침구학설의 한가지)을 저술하였으며, 또 그의 딸 承为奋는 일본 의사 冈本에게 일어로 된 《运气论奥谚解》를 번역하였다. 章巨膺은 일찍이 《宋以来医学流派和五运六气之关系》라는 글을 발표해, 오운육기 관점에서 각 의가의 학설을 해석하였고, 龙砂문화지역 无锡에서 태어난 邹云翔은 “不讲五运六气学说,就是不了解祖国医学”(오운육기학설을 강하지 않는 것은 조국 의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는 등등, 오운육기 사상의 영향이 용사 의가들에 매우 보편적이었을 알 수 있다.
용사 의가는 오운육기(五運六氣)의 유파적 특색을 중시하여 당대의 의사들 중에서도 두드러졌다. 국의대사 夏桂成 교수는 오운육기이론을 부인과에서 임상적으로 응용하는데 치중하였다. 용사의학유파 전승공작실의 대표적 전승자인 顾植山 교수는 용사의학자 柳宝诒의 四传弟子로 운수학설 중 삼음삼양과 “三年化疫” 등의 중요 이론을 깊이 있게 밝혀냈고, 국가 과학기술의 중요 전문분야인 역병예측 과제 연구에 뛰어나 실적을 올려, 운기학설에 대한 학계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전국 오운육기 연구의 선두주자로 자리잡았다.
经方을 중시,《伤寒论》六经理论과 체질 판별을 결합한 经方의 응용
용사의가 인 柳宝诒、章巨膺 등은 각종 외감병의 변증논치에 伤寒六经 이론을 활용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黄帝内经》释《伤寒论》에 의거해 伤寒论》六经으로 温病을 보았는데, 叶天士、吴鞠通 등이 창립한 위기영혈 및 삼초 변증 이론을 특색으로 하는 温病学说과는 달리, 독특한 유파를 형성하였다.
현대의 계승자 黄煌은 용사 선인들을 계승하여 경방을 자주 쓰고 그 辨体의 특성을 중시하였으며, 체질 판별과 변증을 서로 결합하여 독특한 “黄煌经方”를 만들었다.
현대의 계승자인 顾植山은 三阴三阳“开阖枢” 및 “六经欲解时”이론을 사용하여 6경변증과 경방 운용을 이끌며 경방의 응용 범위를 확장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였다.
肾命理论을 기초로 膏方养生으로 未病을 치료
민간에서 膏滋를 복용하는 민속 풍습은 주로 강남, 소주, 무석, 상호, 저장성 북부에 있었다. 태호 주변의 용사 문화지구에서는 이 膏方이 민속 풍습의 중심이었고, 용사의학유파는 膏滋方를 사용하여 양생하여 미병을 치료하였으며, 강남쪽에서 膏滋方 民俗이 제안되어 널리 추동되었다.
용사고방(龍沙膏方)은 동지일양생(冬至一陽生)의 기화(氣化) 특성에 맞게 약을 처방하여 동지부터 복용할 것을 강조하여, 그 방이 만들어진 사상을 보여준다. 용사의학유파의 현대 전승자들은 용사고방(龍沙膏方)의 학술적 취지를 잘 계승하여 肾命理论에 冬藏精思想을 접목하여 膏滋方을 양생조리로 하여 미병을 치료하고, 膏滋方 제조에 있어서 전통제법의 정예(精藝)를 유지하였으며, 柳宝诒의 “致和堂膏滋药制作技艺”를 전승하여 국가 제3차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작업실에서는 용사 고자방의 독창적 사고와 기본 이론을 발굴·정리하고, 강남의 膏滋 민속 정본청원을 위해 《膏滋方理论考源》《龙砂膏滋说源》 등의 중요한 글을 잇따라 발표했다.
【대표 인물】
용사의가는 전승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학교 교육 이전에 柳宝诒、高思敬、朱少鸿 등은 모두 많은 제자를 모집했고, 柳宝诒은 100 명 이상의 제자를 두었고, 그 중 薛文元、邓养初、金石如 등은 모두 유명한 의학 전문가가 되었다. 上海中医专门学校、中国医学院과 新中国医学院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전에 상하이에서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 있는 3개의 TCM 학교이다. 교장 등 주요인물이 용사의가디다. 上海中医专门学校—曹颖甫,中国医学院—薛文元、郭柏良,新中国医学院—章巨膺.
曹颖甫(1868~1937),명가로 柳宝诒와 같은 龍沙지구 周庄镇 출신이다. 조씨는 일찍이 자업을 치렀으나, 1904년 청나라 정부가 과거를 없앤 후, 조씨는 문신을 버리고 의술을 행하다가 1919년 上海悬壶应诊으로 정식으로 개업했다. 조는 丁甘仁이 설립한 상하이 중의전문학교에서 오랫동안 교무장을 지냈다.
薛文元(1867~1937),名蕃으로,柳宝诒의 직계 제자로 의명을 높였으며, 상하이(上海)시의 국의공회와 전국 의약단체총연합회 발기인, 沪埠의 명의 정감인(丁甘仁), 하응당(夏應堂) 등이 형으로 예우하였다. 설문원은 1931년 겨울 상하이(上海) 中国医学院이 설립된지 얼마 되지 않아 폐교 직전까지 갔는데, 上海 국의공회(國醫公會)의 학장으로 파견하자, 이를 통해 학교를 유례없는 안정과 번영을 가져왔고, 설립 규모와 사회적 지위, 교원자력 등이 당시 국내 다른 중의학교보다 많아 '최고의 국의대학'으로 불렸다.
章巨膺(1899~1972) ,柳宝诒의 再传弟子인데, 1929년 徐衡之、陆渊雷 등과 함께 上海国医学院을 설립하고, 1933년 恽铁樵를 도와 中医函授事务所를 개설하여 교무(交務)를 주관하고, 《铁樵医学月刊》을 주필하였다. 恽 사망 후 그 일을 홀로 맡았다. 1936년 上海中国医学院、上海新中国医学院을 맡고,겸하여 新中国医学院 교장으로 초빙되었다. 1956년 程门雪 등과 함께 上海中医学院 설립 명을 받고 교장을 역임하였다.
承淡安 承淡安(1899~1957),龙砂 华士镇 출신으로,근현대의 저명한 침구학자이자 中医 教育家이다. 承씨는 龙砂世医로 어려서 아버지에게 공부하고 후에 같은 읍의 명의 龜簡莊에게 내·외·아과를 배웠고 특히 침술이 뛰어났다. 승담안은 침구 보급 사업을 위해 1928년 쑤저우(蘇州)·우시(無錫) 등에 침구교육 연구기관을 설립하여 항전 기간에도 사천(四川)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학교를 설립하고, 20년간 학생 수만 명을 양성하여 국내외에 널리 퍼졌다. 1954년 江蘇省 中医进修学校(南京中医药大学의 전신)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이 학교 교사반은 전국 중의원에 우수 교사를 파견해 중의계의 '황푸(黃浦)군관학교'로 불린다.
顾植山 2012년 국가 용사의학유파 전승공작실 건설사업이 시작된 이래, 학술정련과 인재양성, 전승보급 등에서 용사의학유파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전국 중의계에 영향도 커졌다.
대표적 전승인 顾植山 교수는 5운6기를 중시하는 유파의 특색을 심층적으로 발굴하여 정련하고 창조적으로 발휘하였다. 예를 들면, 삼음삼양개합추(三陰三陽“开阖枢”)의 사상으로 《상한론》의 六经欲解时를 밝히고 六经欲解时이론의 임상 응용을 강조하였다. 또 厥阴病欲解时를 판별함에 오매환(五梅丸)을 쓴 독특한 경험으로 뛰어난 임상적 치료 효과를 거두었다. 최근 많은 용사 전승자들이 삼인사천방(三因司天方)의 임상 응용에 대한 시범적인 효과로 이미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오운육기병기(五運六氣病機)의 경전명방(經典名方)을 활용하여 《상한론》의 “柴桂干姜汤”, 《金匮要略》의 “薯蓣丸” “温经汤”,李东垣의 “清暑益气汤”,王清任의 “血府逐瘀汤” 등 전통 방약의 임상 범위를 크게 확대하였다.
黄煌 대표 전승인인 黄煌 교수는 용사의가 경방(經方)을 중시하고 체형을 변별하는 기초 위에 방증·약증·방인·약인의 관점에서 경방(經方)을 임상적으로 응용한 경험을 총결산하여 구성한 “黄煌经方”이 많은 주목을 받아 국가한의약관리국이 추천하는 기층 중의약에 적합한 기술이 되었다.
(담당 편집자 : 高继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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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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