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학 이야기/침구처방의 고민

치주질환의 침구접근과 여슬(女膝)혈

지운이 2022. 12. 27. 11:07

치주질환의 침구접근과 여슬(女膝)혈

 

일상생활에서 많은 이들이 수시로 잇몸의 염증으로 고생하는 예를 자주 본다. 치아에 프라그가 점점 늘고 심해지면 치석으로 발전하는 한편, 잇몸에 부종이나 염증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른바 ‘치주염’이라 한다. 잇몸이 가렵기도 하고 발적과 출혈이 나타난다거나 타액 점성의 변화나 구취 등의 증상이 수반된다. 심해지면 잇몸 손상으로 염증이 생기고 통증이 유발된다.

 

오늘날은 치과에서 스케링 치료를 통해 프라그나 치석을 수시로 제거하여 치주염을 예방하도록 한다. 그런대 잇몸에 염증이 심해져 치통으로 발전할 경우, 오늘날과 같은 치과치료의 방법이 없었던 옛날에는 어떻게 대응하였을까?

 

환부를 차갑게 하거나 진통 및 항염 효과가 있는 한방약을 도포한다든가 하면서, 통증을 참아낼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통증이 극도로 심해지면 발치를 할 수 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잇몸이 점점 더 상하게 되고 치아도 하나하나 빠지게 된다. 따라서 치아가 하나씩 사라지는 것이 노화의 대표적인 현상이기도 했다.

 

좀더 적극적으로는 붓거나 농이 생긴 곳을 자침하여 구멍을 내서 농을 배출시켜 진통을 도모하였던 예도 볼 수 있다. 체내에 열독이 머무르며 밖으로(잇몸) 내보내지지 못한 상태라 보았다. 따라서 이를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잇못에 침을 찔어 구멍을 낸다거나 뜸(打膿灸)을 떠서 농을 밖으로 내보내서 진통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현대적 치료에서도 침구치료에는 특별한 방안이 없는 셈이다. 치과치료에서 강조되는, 프라그나 치석을 최소화하는 노력(칫솔질, 잇몸 마사지, 스케링 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미 잇몸이 상하고 통증이 반복되면 통증을 완화하는 일정한 치료가 불가피하지만, 결국은 잇몸이 무너지고 치아가 빠지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그만큼 예방이 중요하다.

 

치주염의 침구접근에 대하여

 

다만 잇몸의 부종이나 염증, 나아가 통증이 수반되는 상황일 경우, 증상이나 통증을 완화하는 치료 접근은 고려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압통부 국소 침구 접근을 생각할 수 있다.

 

*치주질환의 자침기법 예시. 다만 신경블럭을 목표로 하는 경우라면 신경의 해부생리학적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경혈로는, 먼 옛날 ‘치경’(齒經)이라 불리기도 했던 수양명대장경에 치아(통증)를 치료하는 경혈들(예컨대 편력, 온류 등)도 있지만, 가장 효율적인 것은 오히려 아시혈 접근이다. 상치 및 하치의 잇몸의 압통부에 2~3개의 침을 자침하는 방법을 들 수 있다. 침첨이 뺨을 거쳐 잇몸에 이르도록 한다. 아시혈 자침은 해당부의 신경활성과 혈류 개선을 매개로 통증을 완화하고 부종과 염증을 완화한다는 기전이 기대된다.

 

아시혈 자침과 유사한 것으로 하치통에 협거(지창 向) 자침 기법을 들 수 있다. 하악각 부위에서 입가의 지창 방향으로 자침하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아시혈 자침과 상통하는 의미를 가지며, 나아가 하치 잇몸에 분포하는 신경(하치조신경)을 블럭하는 의미도 갖는다. 하치통은 대부분 하치조신경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침뜸요법에 의한 신경블럭은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신경을 차단하여 통증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전달을 매개로 한 인체 고유의 통증억제기구를 작동시켜 통증 완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침술의 통증 완화 작용에 대해서는 다음글을 참조할 수 있다

-침뜸과 통증 치료에 대해서

-침술의 통증 완화 작용

 

상치통 역시 아시혈 접근이 가장 용이한 방편이지만, 상치 잇몸에 분포하는 신경(상악신경, 안와하신경 등)을 블럭하는 자침기법도 고려할 수 있다. 객주인(상관) 조금 앞 지점에서 하방으로 자침(수평자)하는 기법을 들 수 있다. 이 부위는 측두근 기점이기도 하며 측두근 문제로 상치통이 유발되기도 한다는 원리에 따른다. 또한 하관 앞(1cm 정도, ‘하관이동혈’이라고도 함)의 교근 자침(하안각 향 30도로 자침)도 언급되는데, 이는 교근을 지배하는 신경(하악신경 1지인 교근신경)을 블럭하는 의미를 가진다. 교근의 위쪽 부착부에 해당하며, 교근의 아래쪽 부착부는 하치통과 관련된다.

 

치주염과 여슬(女膝)혈

 

한편 치통이나 치은염, 치조농루 등 치주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 특효혈로 ‘여슬’(女膝)이라는 경외기혈을 소개한다. 그 위치는 아킬레스건 종지부의 적백육제의 곳이다(아래 그림). 쎄게 누르면 욱신욱신한 압통을 느끼는 곳이다. 대부분의 기혈이 그렇듯이 그 동의학적 논거는 충분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발뒷꿈치를 뒷쪽에서 보면 잇몸 전면의 모습과 유사한데, 여슬혈이 잇몸에 상당한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도 있다. 또 발꿈치 모양이 여자의 무릎과도 같아서 그렇게 불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슬혈의 위치. 발목 관절을 신전시켜 종골(뒷꿈치뼈) 상부 중앙에서 살짝 위쪽에 오목해지는 부위

 

 

여슬혈 역시 애초 중국에서 건너간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 강호시대 『名家灸選』(浅井惟亨)이라는 책에 그 기록이 보인다고 한다. 骨槽風(=歯槽膿漏)을 치료하는 법으로, 발뒤꿈치 적백육제의 곳에 여슬(女膝)이라는 혈이 있는데, 이곳 좌우에 50장씩 뜸을 뜨면 1개월이면 효과가 있다고 소개하며, 잇몸에 농혈이 찬 환자를 치료한 경험을 언급하였다고 한다. 발목을 후굴하면 아킬레스건 종지부 좌우로 오목점이 생기는데 바로 이곳이 뜸점이다. 50장은 과하고 10~15장 정도 뜨도록 하고 있다.

 

여슬혈은 치조농루 외에도 치은염, 방광염 등에 의한 배뇨통·잔뇨감, 실신이나 정신착란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여슬혈에 관해서는 다음 참조. ‘女膝穴について’, <漢方と鍼>, 第44巻第2号(2020年4月), 北里大学 東洋医学総合研究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