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학 이야기/古醫書 해제

신간보주석문황제내경소문 (新刊補註釋文黃帝內經素問)

지운이 2020. 5. 5. 14:35

신간보주석문황제내경소문 (新刊補註釋文黃帝內經素問)

新刊補註釋文黃帝內經素問. 卷1-12, 運氣論奧 / 李希憲(朝鮮) 監校 木板本
漢陽 : 內醫院, 光海君 7(1615) [後刷]
KOL000057316 古7651-11
12卷14冊, 運氣論奧1冊, 共15冊 : 揷圖, 四周單邊 半郭 20.8 x 16.0 cm, 有界, 10行18字 註雙行, 內向2葉花紋 魚尾; 30.5 x 19.9 cm
序 : 林億
序 : 萬曆四十三年(1613)二月日 內醫院奉敎刊行...李希憲...尹知微


조선 중기에 활동한 문신이자 한의사였던 이희헌(李希憲, 1569-1651)이 교감(校監)하여 간행한 의학서로 중국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대표적인 의서 �황제내경(皇帝內經)�에 대한 주석서(註釋書)이다.


본서를 교감한 이희헌은 본관이 우계(羽溪)이며 자는 가정(可正)이다. 아버지는 대사헌(大司憲)을 지냈던 이감(李戡)이고 어머니는 윤연수(尹延壽)의 딸이다. 정헌대부(正憲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양천현령(陽川縣令), 내의원직장(內醫院直長) 등을 역임하였다. 본서는 그가 내의원직장으로 재직하던 때인 광해군(光海君) 7년(1615) 교감하여 간행한 것이다.


본서의 저본인 �황제내경�은 중국 전설상의 제왕인 황제(皇帝)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의학서로써 중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 매우 오랜 기간 동안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한의학대학에서 �황제내경�을 학습하고 있을 정도이다. 황제의 성은 희(姬), 혹은 공손(公孫)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이름은 헌원 (軒轅)이다. 기원전 2704년경에 태어나 기원전 2697년에 제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신농씨(神農氏)와 더불어 중국 고대 유력 부락의 연맹장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신농씨와 함께 주위의 야만족들을 물리치 고 중원 지역에서 세력을 떨쳐 신적(神的) 지위에까지 오른다. 그는 통치하면서 문자(文字), 음률(音律), 수학(數學), 역법(曆法) 등을 창시하고 배와 수레, 집, 관, 그릇, 활, 화살 등 문명의 이기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두 분야에 걸쳐 중국 문명의 토대를 다진 인물로 평가된다. 이런 업적에 따라 그는 복희씨(伏羲氏), 신농씨와 더불어 삼황(三皇)으로 일컬어진다.


�황제내경�은 이처럼 중국 문명의 개조로 평가받는 황제가 기백(岐伯) 등 6인과 더불어 각종 의학이론에 대해 토론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의학 이론뿐만 아니라 우주관과 인간관까지 포함되어 있어 중국사상의 원류를 파악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각종 의학이론을 문 답과 토론을 통해 밝혀내고 있는 형식을 취하여 내용의 권위를 더하고 있다. 그러나 �황제내경�이 황제가 지은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진한(秦漢)시대에 황제의 이름을 빌어[假託] 저작한 것이라는 주장도 매우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황제내경�의 원저자와 간행연대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한 서지학적 연구가 필요 할 것으로 보인다.


�황제내경�은 본래 전체 18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전반부 9권 81편은 「소문(素問)」, 후반 부 9권 81편은 「영추(靈樞)」로 구분된다. 「소문」은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과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 등 우주론을 근거로 하여 인간의 병의 이치를 따지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을 뿐 실제 인간의 병을 치료하는 구체적 처방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구체적인 치료법은 「영추」에서 제시하고 있다. 「영추」에서 제시하 는 치료법은 침구(鍼灸)와 도인(導引) 등 일종의 물리요법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약재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다.
「소문」에서 제시하는 이론은 크게 천인합일설과 음양오행설, 오운육기론 등으로 구분된다. 천인합일설이란 인간의 본성이 우주의 본성과 일맥상통한다는 자연주의적 입장을 말한다. 고대인들에게 우주는 경외의 대상이자 그 자체로 순선무악한 절대선이었다. 인간의 본성이 우주의 본성과 같다는 것은 곧 인간 또한 우주처럼 절대선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고대 중국인들은 인간 의 질병을 논하기 위해 인간부터 연구한 것이 아니라 우주의 이치부터 논했다. 천인합일설은 이처럼 인간 질병의 근원을 우주의 원리에서 찾고 있는 중국인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음양오행설이란 우주의 운행이 음양과 오행이라는 기(氣)의 작용에 의해 일어난다는 믿음을 말한다. 기는 크게 음과 양으로 나뉜다. 이는 기의 전체적 특질을 설명하는 방식이고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세분화 하면 오행으로 나뉜다. 천인합일설에 의해 인간과 우주의 본성을 하나로 엮은 후 그 구체적 운행은 음양 오행론으로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오행은 서로 상생상극(相生 相剋)의 관계를 맺으며 우주를 운행하게 만든다고 믿었으며 그 원리는 고스란히 인간의 몸에도 적용된다고 믿었다.


오운육기론이란 사람의 오장육부(五藏六腑)를 오운육기(五運六氣)에 대비(對比)시켜서 인체의 변화과정 을 파악하고자 하는 동양 전통의 의학적 관점을 말한다. 오운(五運)이란 목, 화, 토, 금, 수 등 다섯 가지 성질을 의미하며 육기(六氣)란 풍(風), 화(火), 서(署), 습(濕), 조(燥), 한(寒)의 여섯 가지 성질을 의미한다. 오운과 육기 모두 자연현상 전체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설명방식이다. 이러한 자연현상의 설명틀을 인간의 오장육부에 적용시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운기론이다. 인간의 오장(五臟)이란 폐장(肺臟), 심장(心臟), 비장(脾臟), 간장(肝臟), 신장(腎臟)을 가리킨다. 육부(六腑)란 삼초(三焦), 위(胃), 대장(大腸), 소장(小腸), 담(膽), 방광(膀胱)을 가리킨다. 운기론은 일종의 체질론으로써 이제마(李濟馬)의 사상체질론 (四象體質論)은 오운육기 체질론의 한 변형태로 평가된다.


오운육기(五運六氣) 체질의학은 한의학의 원전(原典)인 �황제내경(黃帝內經)�및 �주역(周易)�등의 동양 고전을 바탕으로 체계화한 이론이다. 인간의 신체적 특징을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여 유형별 증상과 치료 방법 등을 논하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체질은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유형에 속한 인간들에게는 다른 유형의 인간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의 진단과 처방이 제시된다. 똑같은 증상을 보이더라도 체질에 따라 서로 다른 진단과 처방이 내려지게 된다. 이러한 체질은 선천적이어서 평생 잘 변하지 않기 때문에 체질을 잘 파악할 경우 그에 알맞은 대응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체질은 어릴 때부터 드러나지 않고 성장하면서 점차 드러나 성인이 되면 완성된다. 이러한 입장은 철저히 동 양의 인성론(人性論)과 우주론(宇宙論)에 근거한 것이다.


본서는 이렇듯 동아시아인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 �황제내경�의 내용에 세밀한 주석을 더하여 간행한 의학서이다. 표제(表題)는 ‘소문(素問)’이며 판심제(版心題)는 ‘내경(內經)’이다. 초권제(卷初題)는 ‘소문입식운기론오(素問入式運氣論奧)’인데 이 부분에서 운기론에 대한 각종 도해들이 곁들여져서 오운육기론 을 집중적으로 논하고 있다. 권두에 중국 송(宋)대에 활동했던 임억(林億)이 지은 서문이 실려 있으며 이 어서 당(唐)대에 활동했던 손조(孫兆)가 보응(寶應) 원년(762) 지은 서문이 실려 있다. 「소문」은 모두 12 권 14책이며 여기에 「운기론오」 1책이 더해져 총 1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황제내경�은 동아시아 의학사의 기념비적인 저술이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그 이론적 타당성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현재 한의대에서도 정규 과정에서 �황제내경�을 학습하고 있기는 하나 그 내용이 실제 의학적인 면보다는 철학적인 면이 많아 한의학계 내부에서도 그 내용의 수용 여부에 대해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대한 면밀한 과학적, 철학적 연구가 절실히 요청된다.


본서는 이처럼 문제작인 �황제내경�가운데 이론적 측면을 다룬 「소문」에 대한 주석서로써 조선시대 내내 중요하게 간주되었다. 내용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사료적 가치만으로도 충분히 중요하다고 평가된다. (채석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