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타협척혈(華佗夾脊穴)의 신경생리/해부학적 음미
화타협척혈이란 척추 정중선 외방 0.5촌, 독맥혈과 방광1선 사이의 혈자리를 말한다. 이 협척혈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 화타였다고 해서 화타협척혈이라고 한다. 후대에 갈홍(葛洪)의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서기 304년)에 화타가 호열자(콜레라?) 환자를 협척혈을 사용하여 처음으로 치료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화타협척혈이라고 정식으로 명명되기 시작한 것은 현대에 와서이다(정단안의 <중국침구학>).
협척혈은 척추 정중선에서 좌우 양쪽으로 반촌(半寸) 옆으로, 흉추 T1~T12, 요추 L1~L5까지 좌우 각 17 개씩 모두 34개이다. 한편 상해한의과대학에서는 경추 C1~C7까지 포함하여 24개씩 48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기에다 천골의 팔료혈 8개까지 합하면 56개가 될 수도 있다. 척수의 각 관절이 중추신경(뇌 및 척수)과 인체 곳곳의 말초신경이 연결되는 관문이라 보면, 경추에서 천골에 이르는 모든 지점이 같은 맥락에 놓여 있어 이들 모두를 협철혈로 봐도 좋을 것이다.
화타협척혈은 척수신경을 직접 자극할 수 있어 침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협척혈 자침의 효과에 대한 연구도 적지 않다. 협척 부위는 척수신경으로 연결되는 감각신경에서 갈라져 나오는 부분(척수신경의 후근後根 : Radix Dorsalis)이 지나는 곳이며 동시에 운동신경의 교통지(交通枝 : Communicating Branches)도 존재하는 곳이다. 자침시 후각(後角 : Dorsal Horn)으로 연결되는 감각신경계 및 운동신경계를 자극함으로써 진통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따라서 침마취에서도 활용된다. 침뜸 자극으로 국소부는 물론 척수 및 뇌중추부에서 통증을 억제하는 신경전달물질(엔돌핀, 엔케팔린 등)이 분비되어 통증을 완화하는 작용을 한다는 사실은 많은 연구에서 확인된 바이다(자세한 것은 관련자료 참조 : 침뜸자극과 신경반사운동)
또한 이 부위에는 척수에서 갈라져 나오는 자율신경(교감신경)의 신경간도 존재하여 이를 매개로 한, 체성신경 자극에 의한 자율신경 반사를 매개로 내부 장기를 조절하는 작용도 있어 침뜸요법에서 활용가치가 높다. 이른바 ‘체성-내장반사’를 활용한 침뜸의 효과를 말하는 것이다. 방광경에 존재하는 배수혈의 효과와 유사한 작용기전이다.
‘체성-내장반사’의 관점이란,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이라는 체성신경에 대한 자극이 척수 및 중추신경을 매개로 하여 내장으로 반사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러한 반사를 침뜸에 활용하려는 관점이다. 물론 그 역의 기전인 ‘내장-체성반사’도 존재하며 이는 주로 진단에 활용된다. 내장의 병변이 이 반사를 매개로 체표로 반응하여 경결이나 압통을 낳기 때문이다. 심장이나 폐에 이상이 있을때 배부의 견갑골 주위에 압통점이 나타나는 예가 대표적이다.
이 ‘체성-내장반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화타협척혈은 부위별로 다양한 치료효과를 생각할 수 있다. 즉 내장으로의 반사경로인 자율신경(교감신경)의 분포를 고려하면, 경흉추에서는 C1-C5(머리, 목), C4-T1(목, 상지), T2-T10(폐, 심장, 위, 십이지장, 간, 담, 췌장), T11-L2(비장, 신장, 비뇨기계통) 그리고 요둔부에서는 L3-L5(허리, 대장, 하지), S1-S4(생식기, 방광, 하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상 협척혈을 통해 오장육부의 모든 장기에 대한 조절자극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침뜸요법에서 그 활용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이들 세부적 치료효과와 관련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다음 기회에..). 한편 S1~S4 사이의 화타협척혈을 상정하자면, 그것은 곧 팔료혈(八髎穴)과 일치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협척혈은 고전에서 정의된 각 배수혈의 치료작용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나, 다만 해부학적인 자율신경 분포를 감안하면 얼마간 차이가 존재하며 신경자극의 관점에서 보자면 협척혈 쪽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신경반사에는 또한 ‘체성-체성반사’도 존재한다. 즉 경항부/견부와 팔/손 사이의 연관, 요부/둔부와 다리/발 사이의 연관 등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이는 경항부/견부의 문제를 팔/손의 혈위를 활용하여 치료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그 역도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요/둔부의 문제를 다리/발의 혈위를 활용하여 치료할 수 있을 것이고, 동시에 그 역의 접근도 가능할 것이다.
목에서 팔을 거쳐 팔/손에 이르는 신경(요골신경, 정중신경, 척골신경 등)이 목의 척수(C4~T1)로부터 유래하여 손끝에 이르기까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감안하면 지극히 자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요부의 척수로부터 유래하는 좌골신경이 대퇴를 거쳐 오금을 지나면서 경골신경과 비골신경으로 갈라져 하지를 거쳐 발끝까지 이르는 경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신경해부학적 관점은 팔/손이나 다리/발의 경혈(팔꿈치 아래로 손끝까지의 경혈 및 슬관절 이하 발끝까지의 경혈)을 이용하는 침법, 이른바 오행침의 침구기전을 이해하는 훌륭한 논거이기도 하다. 이들 신경의 연결선상에서 직접적으로 서로 연관될 뿐만 아니라, 팔/손에서 목의 척수로 전도되는 자극 정보 및 다리/발에서 요부 척수로 전도되는 자극정보는, 척수의 반사궁이나 뇌로 전도되는 과정에서 타 신경(자율신경 등)과 뒤섞이기도 하여, 앞에서 설명한 '체성-내장반사'의 경로를 따르는 작용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즉 이 체성-내장반사의 기전을 통해 팔/손 및 다리/발의 경혈 자극은 자율신경을 매개로 오장육부의 작용을 조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손/발의 경혈을 자극하여 오장육부까지도 조절/치료하는 침뜸시술의 묘리란 바로 이러한 신경반사기전을 통해 이루어지는 자극-반응의 경로와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러한 신경의 여행 경로에는 혈관(동맥)도 동행한다. 그리고 이들 신경이 척수로 들고 나는 지점이 바로 화타협척혈이다. 물론 동의학에서는 이러한 연관이 이루어지는 경로로 경락(경맥)을 상정하고 있지만..
한편 협척혈 자침은 척추를 지탱하는 근육을 다루는데도 유용할 수 있다. 척추를 지탱하는 근육은 겉보기 보다는 매우 많은 근육이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
직접적으로 척추 각각을 이어주며 지탱해 주는 근육으로 회선근, 다열근, 반극근 등 이른바 단배근군이 있는데, 척추가 틀어지거나 하면 바로 이들 근에 직접적인 이상이 생기게 된다. 척추에 이상이 있을 경우, 당장 디스크를 고민하기 앞서 이들 근을 바로 잡는 것이 우선인데, 이 경우 협척혈은 이들 근을 직접 자극할 수 있는 유용한 혈자리가 된다. 그리고 이들 근육 위로 척추와 늑골을 함께 잡아주는 척추기립근이 존재한다. 이 역시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요추로 오면 근의 구성은 한층 복잡해진다. 요추는 상체 전체를 지탱하는 만큼 보다 강한 근의 틀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척추 각각을 잇는 단배근군과 척추기립근이 존재하는 한편, 요추 안쪽에 요추와 장골/대퇴골를 잇는 대요근이라는 굵은 근이 있어 요추를 바로 세워주는 역할을 한다. 이 근은 요추를 바로 세우는 핵심적인 근일 뿐 아니라, 허리와 장골의 연동된 운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대요근은 요추에서 나오는 요신경과 엇갈리기 때문에 이 대요근에 이상이 생기면 신경이 눌려질 가능성이 높은 부위이기도 하다. 다만 요추 안쪽에 자리하고 있어 침구접근에는 상당한 기술이 요구된다. 이에 더하여 12늑골과 장골을 잇는 요방형근도 요추를 지탱하는데 관여한다. 장골~늑골간을 아래 위로 연결하여 허리의 좌우/상하 굴신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는데, 상하를 잇는 이 근도 동시에 요추 각각의 횡돌기로 연결되어 있어 척추를 좌우에서 바로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 천골의 S1~S4부위 다열근의 관련통은 천골/미골 부근의 감각과민 증상, 즉 천골통 또는 미골통으로 나타나며 이 역시 화타협척혈(이 경우는 팔료혈)을 주목해야 한다.
한편 척추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는 복부 근육도 작용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복횡근이다. 그런데 흉추 및 요추(C2-L5)의 다열근에 손상이 일어나면, 이 복횡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복부에 관련통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도 유의하여야 한다. 고래로부터 요통을 치료하는데 천추 대횡 대맥 경문이라든가 귀래 오추 등 복횡근 상의 혈자리들이 활용되어 왔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이처럼 화타협척혈은 직접적으로 척추(경추-흉추-요추)의 이상을 바로 잡는 혈자리로써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또한 신경반사를 매개로 내장기의 조절에도 유의미한 혈자리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경추나 요추에서 볼 수 있는 각종 근골격계 질환은 물론이고, 내장기의 작용을 조절하는데 유용하며, 나아가 오장육부를 원활히 하는 전신조정 접근에서도 중시할 필요가 있는 혈자리라는 점을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배부 방광1선에 있는 이른바 '배수혈'은 각각의 주요 장기의 이름을 갖는데, 각 혈위를 자율신경의 분포와 관련하여 새롭게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각각의 장부명(배유혈명)과 실제의 신경분포를 비교해 보면 다소간 차이도 존재하는 만큼 혈위명(장부명으로 표기되는)과 무관하게 이들 신경분포를 고려한 침구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독맥, 협척혈, 방광경1선 및 방광경2선이 모두 유사한 연관 하에 놓여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일본의 사와다(澤田健 1877~1938)는 독맥에 이어 이들 라인을 각각 방광1선, 2선, 3선으로 지칭하며 이 4개의 라인이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것으로 보는 한편, 독맥 쪽일수록 급성의 병에, 방광경2선(사와다의 3선) 쪽일수록 만성병과 연관이 깊다고도 말한다.(사와다의 침구세계 참조)
배부의 혈위 자극은 반드시 침뜸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둥근 밀대를 등에 깔고 밀대를 굴려주거나 협척혈을 마사지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자극을 주는 것만으로도 침뜸에서 활용하는 전신조정의 효과를 얼마간 기대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는 이러한 물리적 요법을 활용할 것을 추천해 본다. 물론 척추를 지탱해 주는 근을 단련하는 운동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을테고...
(*芝雲 씀)
*참조
화타협척혈 활용에서 자침의 기술..
화타협척혈 활용에서 자침의 기술 협척혈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글에서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앞의 화타협척혈의 과학적 음미 참조). 우리의 시각대로 모든 경맥이 척수신경 줄
hooclim.tistory.com
*책 소개ᆢ
코로나19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 중국에서 전개되었던 동의학 요법의 활약과 그 성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아래의 책을 소개합니다
https://hooclim.tistory.com/4934
책 소개 : 코로나19와 동의학 그리고 침뜸요법
코로나19를 동의학 약물과 침뜸요법으로 치료한다! 과연 가능할까? 여기 그 현장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난해 중국에서 숨가쁘게 전개되었던 동의학에 기반한 코로나19 치료 임상과 그 효과에
hooclim.tistory.com
'동의학 이야기 > 과학적 침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手三陽經과 ‘六府下合穴’ (0) | 2018.10.25 |
---|---|
자율신경과 면역반응 (0) | 2018.04.26 |
신경학적 관점으로 본 경락 (0) | 2018.02.01 |
침뜸과 통증치료에 대해서.. (0) | 2017.12.14 |
침뜸은 왜 면역력을 높여주는가?(松本仁幸) (0) | 2017.04.21 |